누군가가 쓸어준 바닥 위에서

태극권과 함께 떠올린 오래된 편지

by 티아

7시 20분. 공원에 도착해서 보니 선생님이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계셨다.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오래 막내의 자리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덤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눈치와 일머리, 그리고 가벼운 엉덩이다. 나는 재빨리 다른 빗자루가 있는지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근처 큰 나무 뒤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빗자루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빗자루는 길고 가늘고 탄성이 있는 나뭇가지를 엮어 놓은 모습이었다. 산속의 절에서나 쓸 법할 구식 빗자루였다. 절에서는 아침에 나뭇잎을 쓸면서 마음속 잡념도 쓸어낸다지. 선생님을 따라 빗자루를 쓸면서 잠시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든 생각. '나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쓸어준 바닥 위에서 태극권을 춰 왔구나....' 그동안 수련하는 곳만 유독 바닥이 깨끗하다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바닥을 쓸면서, 아주 오래전 잊고 지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숙사에서 살았다. 4인 1실이었다. 기숙사는 잠을 자고 쉬는 곳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곳 같았다. 이제 막 16살이 된 아이들은 경쟁에 몰려 체할 듯이 공부했다. 우리 대부분은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밖에서 사는 것이었고 자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세끼 식사는 급식실에서 해결했고,, 빨래는 일주일치를 모아다가 주말마다 집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방 청소만은 스스로 해야 했다. 사감 선생님은 한 번씩 기숙사 방을 돌면서 청소가 잘 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청소가 필요한 방은 방송을 통해 공지했다. 스피커를 통해 지저분한 방 호수가 울려 퍼졌는데, 늘 나오는 호수가 비슷했다.


우리 방은 일 년 내내 한 번도 불리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물건을 어지럽히지 않고, 쓰면 바로 제자리에 놓고,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지만 않으면 특별히 쓸고 닦지 않아도 방은 원래 깨끗하게 유지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즉, 나는 일 년 동안 단 한 번도 청소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방이 청결을 유지하는 비결은 어지럽히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면 그 위로 따뜻한 입김이 스치고 지나가는 겨울이 되었을 때쯤, 같은 방을 쓰는 친구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정갈한 분홍색 봉투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내가 평생 동안 잊지 못할 나의 죄가 적혀 있었다. 친구는 그동안 자기 혼자서 바닥을 쓸고 닦았다고 했다. 너무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친구의 감정이 너무도 포근했다는 점이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나를 미워할 법도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잘못한 건 나였지만 도리어 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 편지를 떠올리면 야단맞았다는 감정보다는 달콤하다는 감정이 들 정도다.


쓴 물건을 그때그때 제자리에 두어도, 더러운 건 그때그때 닦아도, 방은 더러워진다는 사실은 한참 뒤, 대학 때 하숙을 하면서 깨달았다. 옷에서 떨어지는 먼지, 창문으로 들어오는 먼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서 따라오는 먼지가 회색 솜뭉치가 되어 굴러다니는 것을 직접 보고 난 뒤에야 깔끔한 성격과 상관없이 사람이 사는 공간은 주기적으로 쓸고 닦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도 나는 그 편지를 떠올렸다.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 일 년 동안 타인의 배려 위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해 줬다. 아니, 나는 늘 누군가의 배려 위에 살고 있었다.


태극권 선생님이 말했다. "추울 때는 사람들이 좀 늦게 와요. 여름에는 좀 더 일찍 오고요." 그렇구나. 겨울에는 해가 늦게 뜨고 여름에는 해가 빨리 뜨니까, 거기에 생체리듬을 맞추는구나.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하지 않았다. 추우나 더우나 출근 시간은 똑같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태극권 수업도 계절에 상관없이 늘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다.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내가 일등으로 도착하는 날은 사라졌고, 나는 계속 다른 사람이 쓸어준 깨끗한 바닥 위에서 태극권을 추고 있다. 이래서는 염치가 없다. 내일은 10분이라도 일찍 일어나서 바닥을 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불평불만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미 너무 많은 배려를 받으며 살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