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지 않아도 자라나는 존재에 대하여
수업이 끝나갈 때쯤 선생님이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자유반'과 '회원반'이 모두 모여 '타이중 공원 태극권 연구소'라고 적힌 빨간색 현수막 뒤에 섰다. 다 모이니 열다섯 명쯤 되었다. 선생님이 휴대폰 카메라에 타이머를 맞추고 왔다 갔다 하며 여러 장 찍었다. 나는 브이도 해 보고, 엄지도 올려 보고, 손바닥을 펼쳐보기도 하며 포즈를 바꿨다. 입가에는 내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뗬다. 이렇게 열심히 찍었지만 왜 찍는지는 몰랐다. 한 어르신에게 슬쩍 물어봤는데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한 결과로 인해 지금까지도 모른다. 어쩌면 철마다 찍는 기념사진일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다가, 문득 내가 정말 이곳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 '타이중시 태극권 협회'의 회원증을 받았다. 명함 크기의 회원증 안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신분증 번호, 가입일이 적혀 있었다. 색깔은 막 심은 어린 나무처럼 연한 연둣빛이었다.
대만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대만 사람들 대화에 끼지 못한다. 말은 빠르고, 모르는 단어도 많고, 사자성어도 넘쳐난다. 대화 내용의 절반 이상은 한 귀로 들어와 다 귀로 흘러나간다. 알아듣는 척하며 적당히 웃고 넘기는 표정 연기만큼은 웬만한 배우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지인들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맥주 한잔 할 동네 친구도 없고, 가족은 일 년에 한 번이나 만나는 이런 삶은 불편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 자초한 삶이기도 하다. 이방인으로 사는 것에는 큰 해방감이 있다. 옷으로 표현하자면, 무거운데 따뜻하지도 않은 싸구려 코트를 입고 팔짱을 끼고 몸은 잔뜩 움츠리는 것과 정반대쪽에 있는 기분이다. 가볍지만 소재가 좋은 고급 원단의 블라우스를 입고 살랑살랑 발길 닿는대로 걷는 기분이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는 직원이 120명쯤 되는 큰 출판사였다. 사람이 많다 보니 나와 나이가 비슷한 20대 후반 여자 직원이 많았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팀장님이 옆 팀에 나와 동갑인 여자 직원이 있다고 하면서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금세 점심 자리가 만들어졌다. 나와 팀장님, 그리고 옆 팀의 팀장님과 그 동갑 직원까지, 우리 네 사람은 이탈리안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마치 어른들이 주선한 소개팅 자리 같았다. 팀장님은 내가 회사 안에서 친구를 사귀면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듯했다. 하지만 나는 내 맞은편에 앉은 그녀에게 어떤 관심도 느끼지 못했다.
대면대면하게 구는 나와는 달리, 회사 내 20대 후반 여자 직원들은 친구처럼 지냈다. 퇴근 후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는 것은 기본.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홈파티를 하기도 했다. 연애 얘기를 나누다가 남자를 소개해주기도 했고, 그렇게 결혼까지 간 커플도 몇 있다. 하지만 그 모임 안에 보통 나는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고 거짓으로 웃고 반응하는 것은 에너지를 주걱으로 퍼내는 것처럼 피곤했다. 원래도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닌데, 회사에 워낙 모임이 많다 보니 나의 '아싸력'이 더 두드러졌다. 나는 아싸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전엔 자주 등장하지 않던 '외로움'이 마음속 메인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잦아졌다.
일할 때는 내 '자리'가 있고 몰두할 일이 있으니까 괜찮았다. 하지만 워크숍이나 전체 회식 같은 자리에서는 나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어정쩡하게 있는 게 싫어서 그대로 공기 사이로 증발되거나 벽지로 스며들어 꽃 한 송이가 되고 싶었다.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디를 가도 겉돌기만 해서 차라리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한 적 없어요?” 그런 곳이 있다면 나도 그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곳에서의 외로움은 적어도 '정상'이니까 슬퍼할 일이 아니었다. 만 서른, 연고 하나 없는 대만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유는 어쩌면 외로워서였다.
대만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한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목소리'다. 편의점과 식당에서 몇 마디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내 목소리를 들을 일이 없었다. 어쩌다 누군가와 통화하면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점점 흐려지는 목소리만큼, 나라는 존재도 희미해져 갔다.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아무도 몰라주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밖으로 나왔다. 언어부터 익히자는 마음으로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지금은 대만에 직장도 있고 소속된 협회도 있다. 사람들과 함께여서 좋은 순간도 있지만, 때로는 또다시 도망가고 싶어진다. 나는 소속되고 싶은 사람일까,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일까. 알 수가 없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글을 올리다가도, 누군가 알아보는 건 또 부담스럽다고 느낀다. 모순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넌 뿌리 없는 인간 같아.” 그 말은 억울했다. 내게도 뿌리는 있다. 뿌리가 꼭 땅에 박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어떤 식물은 땅에 뿌리내리지만, 어떤 식물은 물 위에 떠서 자라니까.
우리 집 식물들을 보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수생식물은 잘 크고 있는데 흙 속 식물은 죽거나 죽어가고 있네... 내 기운 탓이려나.'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하지만 유명해지고 싶다.
주목받는 것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어디엔가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