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여름, 모기와 나의 공존일기
태극권을 하는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는 계절이 지나자 곧바로 모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 어르신이 집에서 가져온 모기향을 태웠고, 풀 냄새와 나무 냄새 사이로 모기향 연기가 스며들었다. 나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집에 있는 모기약을 하나씩 가방에 챙기고 보니, 총 세 종류가 담겼다. 하나는 롤 타입 오일, 나머지 두 개는 스프레이였다. 스프레이인 이유가 있다. 대만 모기가 대만 제품엔 이미 면역이 생겼을까 봐, 후기가 좋은 프랑스 제품을 따로 구비해 놓은 것이다. 게다가 이 대만 제품은 냄새가 고약하다. 하루는 팔에 잔뜩 뿌리고 갔더니, 한 어르신이 “한약 먹고 왔어?”라고 하셨다. 꼭 그 말 때문은 아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기약을 포기했다. 아무리 모기약을 뿌려도 모기는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모기약을 샤워하듯 뿌릴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내 코도 남의 코도 괴롭다. 그냥 긴팔, 긴바지를 입는 게 가장 낫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어르신 중에는 나처럼 긴팔을 입거나 팔에 토시를 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다. 공간이 넓으니까 모기향 하나 태우는 것으로는 어림없는데, 어르신들은 모기에 익숙해지셨거나 거의 물리지 않는 모양이다. 어르신들의 바지를 볼 때마다 살짝 오싹하다. 오른쪽 다리에 다섯 마리, 왼쪽 다리에 다섯 마리. 모기가 피를 찾아 날아다니고 있다. 내 다리에도 그만큼의 모기가 있을 것 같아서 한 번씩 다리를 턴다.
모기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물리면 가렵고, 심하면 진물과 흉터가 생긴다. 처음 대만에 왔을 때는 반응이 심해서 팔과 다리가 마치 피부병처럼 얼룩덜룩한 자국이 생겼었다. 대만 사람들이 ‘팥빙수’라고 부르는 피부였다. 밤중에 귓가를 때리는 그 소리도 끔찍하다. 잡을 때까지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라리아, 뎅기열 등 질병을 옮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생태계 안에서 모기도 나름의 역할을 하겠지만. 과학자들은 모기가 없어져도 몇 주, 몇 달 만에 다른 곤충들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과학자들마저도 모기의 쓸모없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몇몇 어르신들은 모기를 손바닥으로 탁탁 때려죽인다.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걸 일부러 잡지는 않지만, 몸에 앉아 있는 건 살려두지 않는다. 다리 위에 앉아 있는 것만 대충 손바닥으로 때려도 여러 마리를 죽일 수 있다. 나를 포함한 몇몇은 손으로 휙휙 저어 날려 보내는 편이다. 또 다른 몇몇은 모기가 있든 없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긴팔, 긴 바지, 목이 긴 양말까지 신어도 매번 모기에 물려서 돌아온다. 손가락 마디는 샤오헤이원(검은깨처럼 작은 흡혈 파리)에 물려서 퉁퉁 붓고, 목, 이마, 볼 같은 스프레이 사각지대도 자주 물린다. 엉덩이와 허벅지도 물리는데, 모기가 얇은 여름 바지를 뚫고 들어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배를 물렸다. 샤오헤이원이 티셔츠 속으로 들어와 배꼽 옆을 두 번 문 듯하다. 취향이 독특한 뱀파이어가 목 대신 배를 문 것처럼 빨간 흉터가 두 개 생겼다.
산속에 사는 스님들은 모기향을 피우지도, 모기를 잡지도 않는다고 한다. 스님들은 모기가 밉지 않을까? 자기 피를 빨아먹은 그놈을 손바닥으로 ‘팍!’ 하고 내리쳐서 피가 무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쾌감을 모르시는 걸까?
하지만 세상은 결국 음양의 운동이고, ‘좋다’ ‘나쁘다’는 인간의 감상일 뿐이다. 그러니까 모기가 백해무익하다는 것도 인간의 판단이다. 내가 모기에 물린 곳을 박박 긁으며 괴로워하는 것은 ‘모기에 물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나쁜 일을 당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짜증, ‘모기 같은 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분노, ‘손가락까지 꼼꼼히 오일을 발랐어야 했는데’, ‘목이랑 발목까지 스프레이를 뿌릴 걸’이라는 후회, ‘젊은 나만 물리잖아’ 하는 억울함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짜증을 내면 내 몸에서 나오는 열과 진동 때문에 모기들이 더 달려든다.
최근에 친구가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친구는 이런 상상을 했다. 그 도둑놈이 훔친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로 죽으면, 그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나는 그런 상상을 왜 하느냐고 물었다. 친구가 말했다.
“그놈이 죽어 버리면 죗값을 치르지 못하잖아.”
나는 물었다.
“무슨 죗값?”
친구가 말했다.
“그놈과 나 사이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잖아.”
나는 말했다.
“그놈과 너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 작년에 너 고모 덕에 치앙마이 여행 공짜로 다녀왔잖아. 그럼 고모와도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좋은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쁜 일은 해결해야 해?”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전거가 없어진 건 괜찮아. 정말 화가 나는 건 도둑을 맞았다는 거야. 그 자식이 내 자전거를 훔쳐갔다는 거.”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세상은 복잡하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건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그러니 한 단면만 보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다. 나쁘다고 여긴 일이 결국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고, 좋다고 여긴 일이 나를 해칠 수도 있다. 어쩌면 친구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덕분에 자기 물건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모기는 나의 막힌 혈 자리를 뚫어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해충에 대응하는 마음가짐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음, 인정한다. 혈 자리를 뚫어준다는 건 좀 과한 상상이다. 하지만 최소한 모기는 나의 마음공부 파트너가 되어 주고 있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백해무익하다고, 심지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던 사람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 사라졌지만, 그들로 인해 생긴 상처는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빨아도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 잉크 자국처럼. 그때 그저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이야’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더라면 적어도 내 생각이 만들어낸 두 번째, 세 번째 상처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