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선에서 만난 여름의 리듬
시간은 어느덧 모기마저도 사라지는 뜨거운 여름이 되었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고, 나뭇가지와 잎들이 서로 얽혀 큰 그늘을 만들어주고는 있지만, 확실히 전보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많이 난다. 나무 냄새, 풀 냄새보다 옆 사람의 땀 냄새가 먼저 코에 닿고, 간간히 들리던 새 소리도 사라진 듯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힘이 넘쳐 보이는 것은 청설모들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혈관처럼 얽혀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청설모 두 마리가 민첩하게 달리고 있었다.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듯 한 마리 뒤에 한 마리가 바짝 따라 붙고 있다. 더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을 접고 아침에 공원을 나가는 것은 매일 결심이 필요하지만,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태극권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선생님이 우리 모두에게 태극선(太極扇)을 연습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각자 가방이 놓인 곳으로 돌아가 빨간색 부채를 꺼냈다. 그 모습을 그저 보고만 있는 내게 선생님은 여분의 부채를 빌려주셨다. 자유반에는 당신 키보다 긴 곤봉을 들고 태극곤(太極棍)을 연습하는 어르신이 있다. 곤봉을 사선으로 들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원형을 그리며 한 보 한 보 걸으신다. 그 분을 보면서 태극권에 여러 도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중 부채가 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바로 참여하게 될 줄이야.
부채를 이리저리 펴 보며 구경하고 하던 순간, “땅땅땅땅땅” 하는 독특한 리듬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 태극권을 배웠을 때처럼, 몸보다 빠른 눈으로 주변 선배들을 훑으며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추려고 해봤지만 스텝이 자꾸 꼬였다. 태극선은 태극권보다 동작이 훨씬 빠르고 역동적이었다. 부채를 세게 펼칠 때 ‘촥’ 하고 나는 소리, 부채를 위로 올리고 내릴 때마다 만들어지는 바람이 마치 아이스커피 잔 속에서 얼음이 ‘딸깍’하고 부딪히는 소리처럼 시원했다.
배경 노래도 독특했다. 일반적인 태극권은 정해진 주제곡이 없어서 가사 없는 느릿 중화풍 음악에 맞춰 하거나 심지어 무음으로 해도 된다. 하지만 52식 태극 공부선(太極功夫扇)에는 테마송이 있었다! 이 점이 꽤 신선했다. 심지어 가사도 있고, “하!” 하고 기합을 넣는 구간도 있었다. 계속 듣다 보니 ‘장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렸다. 장군에 대한 이야기일까? 하고 추측해봤지만 별로 맞을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내 귀에는 대부분이 “강장 공장 공장장”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김에 한번 가사를 찾아보니 역시 내 추측은 틀렸다. 가사는 "누울 때는 활처럼, 설 때는 소나무처럼"과 같이 무술 동작의 자세를 묘사하는 시적인 구절들이었다.
52식 태극공부선이 궁금하다면, 이 영상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