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덫(1-1)

망친 기획, 하나 _ '원주 거돈사지 전시관'

by 불꽃지


image02.png 원주 거돈사지 유적지 3층석탑 l 원주 거돈사지 전시관 전경(폐교)



겉으로 보기에는 폐허,

조용히 거닐다보면 묻혀 있던 역사가 조용히 말을 거는 ‘시간이 멈춘 곳’, 폐사지이다.

거돈사는 신라후기에 창건되어 고려시대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조선 초까지 존속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고찰이다. 폐사지로 남아있던 거돈사지터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이다. 발굴조사 이후 거돈사지는 인근의 법천사지, 흥법사지와 함께 국내 폐사지 여행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원주시는 거돈사지(대한민국 사적 제168호)를 비롯하여 남한강변을 따라 남아있는 옛 절터, 3곳을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거돈사지 전시관 건립 사업’이 시작되었다. 전시관은 인근 폐교된 정산초등학교를 활용한다. 발굴유물을 전시하고, 거돈사의 가치를 알리는 공간을 만드는 목적이다. 폐교라는 공간의 한계, 거돈사지와의 이동거리 문제, 그리고 아직 거돈사지 원형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 국보로 지정된 거돈사지 출토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망친 기획, 하나

본질 문제

애초에 방향 자체가 틀렸더군요



유적지 박물관은 전시 목적과 대상이 명확한 사업이다. 유물 선정과 발굴 조사 결과 같은 연구 기반의 내용이 중심이 되며, 기획자의 창의력이나 스토리텔링보다 학예사의 판단과 연구 결과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이 프로젝트 역시 그러했다.

대상지는 교실이 세 칸뿐인 폐교 분교 건물이었고, 전시면적은 최대한 확보해도 65평 남짓에 불과했다. 예산도 5억 원이 채 안 되는 소규모 사업이었다. 한마디로, 힘 빼고 가볍게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당선 가능성 또한 높게 판단되는 상황이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비딩 경쟁에 대한 노력은 살짝 빗겨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놀랍게도 이렇게 작은 사업에 8개 업체가 투찰했고, 더 충격적인 사실은 8등이 우리었다. 8개의 회사가 입찰에 참가하는 초유의 사태였고, 당시 회사 상황, 인력 문제 등등....온갖 피치 못할 사정을 줄줄 늘어놓을수록 나의 변명은 구차했다. 깔끔하게 인정해서 이건 기획자가 망친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이 사례를 이 책의 첫 번째 실패담으로 꺼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작은 사업이, 관성대로 일하던 나의 태도에 제동을 걸어준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입찰 후, 다른 업체의 제안서를 보면서 나는 비로소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이 사업이 요구하는 바를 내가 제대로 생각해봤나?”


그 작은 전시는 나에게 기획의 본질은 얼마나 쉽게 놓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경험이 많다는 것이 덫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당시 제안서의 주요 페이지 구성과 논리 전개 일부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부끄러운 과오를 들추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직접 수행한 전시계획 프로젝트 가운데 <실패한 제안서>를 선정했다.
-해당 프로젝트 입찰Bidding에 참가한 <경쟁사 제안서>를 제시했다.
-<2개의 제안서를 비교·분석>하여 실패요인을 프로젝트 진행 단계별로 파악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기획의 절대적 오답>을 식별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A안 : 직접 수행한 전시계획 제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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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안 : 동일 프로젝트의 경쟁사 제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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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은 B안일까?

애석하게 이 또한 선택되지 않았다.


B안 제안서의 첫인상은 매우 참신했다. 전략도 명확했다. ‘가장 화려했던 고려시대의 거돈사를 예술적 표현과 첨단 영상기술로 되살릴 것이다.’라는 논리는 제안서 전체에 잘 표현되어 있었고, 꽃을 매개로 스토리텔링한 점, 바닥 매입연출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점 모두 좋았다. 아마 B안이 그날 심사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제안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떨어졌을까?


실제로 당선안은 딱 A안과 B안의 중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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