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방향 자체가 틀렸더군요(1-2)

망친 기획, 하나 _ '원주 거돈사지 전시관'

by 불꽃지

당선안은 어땠을까?


실제로 당선안은 딱 A안과 B안의 중간에 있었다

‘전시관과 홍보관의 기능을 겸하면서, 거돈사지 유적이 지닌 감성을 전시장에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방향을 제시했을 뿐, 특별히 두드러진 점은 없었다.


그래서 의아했다.

오히려 A안은 유물 전시가 더 체계적이었고, B안은 전시 연출이 훨씬 돋보였다.

전시 기법만 놓고 보자면 당선안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그 안을 선택했다. 왜였을까.



완공된 거돈사지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그 이유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원주 거돈사지 전시관 입구



거돈사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폐사지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한다.

당선안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거돈사지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던지는가, 그것을 본질로 삼은 것이다. 폐사지의 가치는 ‘공허가 주는 감성’이며, 그 공허! ‘있었는데 없었습니다.‘를 어떻게 느끼게 할까가 출발선이었다.


그리고 주어진 여건, 즉 ‘폐교’라는 장소 또한 주목했다.

폐교 역시 ‘사라진 것들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컨셉은 두 장소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다.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관람객의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장치로 답을 찾은 것이다.


나는 당선작의 제안서를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완공된 결과물이 말하고 있었다.

첫 번째, 마치 작은 옛 학교에 온 것 마냥 신발을 벗고 전시관에 들어하게 한다.
두 번째, 슬리퍼로 갈아 신는 순간, 벽면 가득 청소하는 아이들의 일러스트가 펼쳐진다.
귀여운 그림 외에는 그 어떤 문구도 없다.
세 번째, 관람객은 전시관으로 들어선다.
끝이다.


본질은 이렇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관람객은 신발을 갈아 신으며 시간과 공간의 전이를 느끼는 것’.

그 느낌이 거돈사지의 ‘인상’이 되길 꾀한다.

물론 폐교와 거돈사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관람객에게는 같은 결을 지닌 감성의 기억 언어로 환기된다.


그 순간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대체 뭘 생각하면서 일했던 건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믿고 제안서를 맡겨주신 분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A안과 B안, 왜 실패했을까?

상황을 정리해보자. 심사장에서 이 두 제안서 PT 분위기는 어땠을까?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예측해 보았다.

A안 제안서은 심심하다.

'내가 뭘 봤더라?’ A안의 전략은 제안서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심사위원의 뇌리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게 문제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전시관 구축 사업이라는 것은 본 사업이 시작된 배경이고 요구이지 방향성은 아니다. 폐인은 기획 방향을 사업 추진의 필요성에서 시작한데 있었고, 그저 일만 열심히 했다. 안타깝게도 A안의 전시세부계획은 당선안과 매우 유사하다 못해 오히려 더 구체적이다. 제안서만 잘 채웠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당선이 될거라 생각하고 원주시청 문화유산과 담당자를 겨냥해 그들이 일하기 좋게 자세한 제안서를 썼다. 심사는 심사위원이 하는데 말이다. 경험이 많은 자가 관성으로 ‘일만 하면’ 이렇게 된다.


반면, B안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열정이 과했다. 이 PT를 들은 심사위원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사업명이 뭐더라, ’전시관‘ 아니었나?’ 이 계획에는 전시물을 디스플레이할 곳이 없다. 즉, 출토 유물 전시라는 사업목적을 충족하지 못한다.

제안요청서(RFP,Request For Proposal)를 보자. 사업목적을 ‘보존을 위한 전시공간’과 ‘가치 확산의 홍보공간’이라고 분명하게 제시했다. 그러나 B안은 ‘창의적이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전시설계’라는 문구에 집중하여, 기획을 홍보 공간으로만 한정되었다. 전시 디스플레이를 버리고 홍보를 위한 첨단영상으로 모든 공간을 채운 것은 모험이었다.


RFP

1. 사업 목적

가. 거돈사지 전시관은 원주 거돈사지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홍보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를 통해 원주시민의 문화향유권 신장과 자긍심을 고취하고, 원주시의 인지도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
지하기 위한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함
나. 추진방향은 기본적으로 홍보와 전시공간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운영해 나가며, 거돈사지의 홍보와 함께 관련된 인물/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다양한 스토리라인을 개발하고,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개발과 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축하고자 함
다. 거돈사지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창의적이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전시설계·전시물 제작 설치를 통해 원주의 관광명소로 활용하고자 함






이전 05화경험의 덫(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