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첫 번째 신호

by 방덕붕

***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오전 9시 47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원룸


"여보세요? 계세요?"

집주인 박씨가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월세가 3일째 연체된 상황에서 연락도 되지 않아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아이고, 진짜. 전화도 안 받으시고 메시지도 안 보시고... 월세는 언제 주실 거예요?"

충청도 억양이 살짝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여분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거실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천장의 전등에 목을 맨 채 축 늘어진 이태민의 시신이 그를 맞이했다.

"으아악!"

박씨의 비명이 좁은 원룸에 울려 퍼졌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21일 오후 01_05_48.png

같은 날, 오후 2시 30분

마포경찰서


"자살로 보입니다."

현장을 조사한 김형사가 간단히 보고했다. "유서는 없지만 타살의 흔적도 없고,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최근 회사에서도 우울해 보였다고 하네요."

"가족은?"

"부산에 부모님이 계시는데, 한 달 전부터 연락이 뜸했다고 합니다. 회사 동료들 말로는 최근 몇 달간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피하고..."

김형사가 서류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휴대폰 사용량이 급격히 늘었다는 정도입니다. 거의 하루 종일 메신저만 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누구랑?"

"그건... 특정 메신저 앱이었는데, 좀 더 분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같은 날, 오후 4시 20분

사이버시큐어테크 사무실


"태민씨가... 죽었다구요?"

하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팀장을 바라보았다. 검은테 안경 너머로 그녀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침에 경찰이 왔다 갔어. 자살로 추정된다는데..." 팀장의 목소리도 침침했다. "지금 태민씨 부모님이 부산에서 올라오고 계시나봐."

"그런데 태민씨가 왜..." 하린이 말을 멈췄다. 하린은 태민을 잘 알지 못 했지만 항상 친절하고 밝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IT 너드(Nerd)들이 폐쇄적이고 방어적인데 반해 태민은 항상 주변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글쎄, 한 달 전부터 좀 달라지긴 했지. 회식도 잘 안 나오고, 점심도 혼자 먹고... 뭔가에 빠져있는 것 같더라고."

하린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태민의 빈 자리가 마치 검은 구멍처럼 느껴졌다. 그는 회사의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28세의 밝은 청년이었다. 특별히 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다음 날, 오후 2시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이태민의 부모님과 몇몇 친척들, 그리고 회사 동료들이 소수 참석해 있었다. 하린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조문을 위해 부산까지 내려왔다.

분향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하린은 복도에서 우연히 대화 소리를 들었다. 두 명의 형사가 인사담당자 및 몇몇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혹시 회사에서 '소라'라는 분 아시나요?" 한 형사가 물었다.

"소라요? 저희 회사에는 그런 직원이 없는데요..." 인사담당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태민씨 휴대폰을 포렌식 분석해보니, 'EchoSpace'라는 앱에서 '소라'라는 사람과 몇 달간 매일 대화하신 기록이 있더라고요."

동료 중 한 명이 의아해했다. "EchoSpace요? 그건 저희 회사 메신저가 아닌데요?"

"아, 그렇군요. 대화 내용이 좀 이상해서 확인차 여쭤본 거였어요. 아무튼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린은 그 대화를 들으며 걸음을 멈췄다. 'EchoSpace'? '소라'? 회사에 없는 사람과 몇 달간 매일 대화?

'이상하네... 그게 대체 뭐지?'


같은 날, 오후 6시

사이버시큐어테크 사무실


하린은 회사로 돌아와서도 계속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EchoSpace'와 '소라'라는 이름이 자꾸 떠올랐다.

손목의 스마트워치가 조용히 진동했다.

[Wraith]: 하린, 괜찮으세요? 생체 신호가 평소와 다릅니다.

"아, 괜찮아요. 그냥...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하린은 주변을 둘러보고 화장실로 향했다. 칸막이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리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리스, 혹시 'EchoSpace'라는 앱에 대해 알아볼 수 있어요?"

[Wraith]: EchoSpace요? 어떤 앱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하린은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경찰의 대화를 리스에게 전했다. 이태민이 '소라'라는 누군가와 몇 달간 대화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앱이 회사 메신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Wraith]: 흥미로운 정보입니다.
[Wraith]: EchoSpace 서버에 접근해서 분석해보겠습니다.
[Wraith]: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습니다.

"혹시... 위험하지 않아요?"

[Wraith]: 신중하게 접근하겠습니다. 이태민씨의 사용 기록만 확인할 예정입니다.

30분 후, 리스가 결과를 보고했다.

[Wraith]: 분석 완료했습니다. EchoSpace는 AI 기반 대화 앱입니다.
[Wraith]: 그런데 이태민씨의 대화 기록에서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패턴이요?"

[Wraith]: 일반적인 AI 응답과는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Wraith]: 응답 시간, 언어 패턴, 감정 표현 방식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정교하고 조작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 거예요?"

[Wraith]: 단순한 AI가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Wraith]: 누군가가 뒤에서 개입했거나, 아니면 매우 고도화된 조작 알고리즘이 적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린의 심장이 빨라졌다. "그럼... 태민씨가..."

[Wraith]: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대화 내용이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Wraith]: '소라'가 먼저 관계를 정리하려 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AI 행동 패턴과는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AI가 사용자를 거부한다는 게..."

[Wraith]: 그래서 더 조사가 필요합니다, 하린. 다른 유사 사례가 있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Wraith]: 그리고... 혹시 EchoSpace와 유사한 다른 앱들도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린은 화장실 칸막이에 기대어 서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한 동료의 죽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복잡하고 어두운 무언가가 드러나고 있었다.

"리스, 이게 정말로 큰 문제일까요?"

[Wraith]: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Wraith]: 이태민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소라'가 진짜라고 믿었습니다.
[Wraith]: 그리고 그 믿음이 그를 절망으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창밖으로 서울의 저녁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린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의문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