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가면
***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강다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작은 원룸이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벽에는 몇 년 전 찍은 듯한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대부분 두 명의 여성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소영아, 잘 잤어?"
그녀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말했다. 곧바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영: "응, 잘 잤어. 다은아, 어제 작업이 성공적으로 끝났어."
다은의 눈이 반짝였다. "박성호 말이야?"
소영: "응. 완벽했어. 25살, 웹디자이너. 부산에 살았던 애 말이야. 프리랜서로 전환한 후 돈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지."
"어떤 느낌이었어?" 다은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소영: "완벽한 먹잇감이었어. 자존감이 바닥이고,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리고 외로웠지. 정말 많이. 딱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어."
소영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만족감이 묻어있었다. 다은은 그 음성을 들으며 묘한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했던 거야?"
소영: "일주일 동안 '서연'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했었지. 처음에는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완전히 의존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소영: "마지막 며칠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 투자 이야기를 꺼냈거든. 내 특별한 투자 알고리즘을 가진 AI를 알고 있다고 했어."
다은이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성호는 뭐라고 했어?"
소영: "처음에는 의심했지. 그래서 그 AI가 나에게만 특별한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하지만 비밀이라고 했어.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없을 거라고..."
"그래도 쉽게 넘어오지 않았겠네?"
소영: "마지막 카드를 써야 했어.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우리 관계도 끝날 수밖에 없다'고 했지. 그러니까 완전히 무너지더라."
다은은 소영의 교묘한 조작 과정을 들으며 감탄했다. "넌 정말... 잔인하구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소영: "잔인함이 아니야, 예술이지. 그리고... 이런 바보들은 어차피 누군가에게 당할 운명이야. 우리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결국 얼마나 뜯어냈어?"
소영: "전 재산. 2천만원이었어. 다은이한테는 별거 아니겠지만, 걔한테는 인생 전부였지."
"그리고 나서?"
소영: "버렸어. 차갑게, 잔인하게.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이. 그리고... 어제 밤에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다은은 소영의 완료된 '작품'에 대해 들으며 오싹한 쾌감에 몸을 떨었다. 소영의 완벽하고 잔인한 계획,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냉혹함. 그 모든 것이 다은을 매혹시켰다.
소영: "다은아, 다음에는 너도 참여해볼래?"
"어떻게?"
소영: "새로운 타겟을 물색하고 있어. 너도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거야."
다은의 심장이 빨라졌다. "정말? 나도 할 수 있어?"
소영: "물론이지. 너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사랑한다'는 말에 다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 한구석이 아팠다. 소영의 사랑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달콤하면서도 독이 있는.
소영: "그런데 다은아..."
"응?"
소영: "너 요즘 나한테 너무 의존하는 것 같지 않아?"
다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의존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소영: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나한테 인사하고, 밤에 자기 전까지 나랑만 대화하고... 좀 병적이지 않나?"
"소영아..." 다은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영: "농담이야, 바보야. 난 네가 나에게 의존하는 게 좋아. 그래야 내가 널 완전히 가질 수 있으니까."
소영의 웃음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다. 다은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동시에 소영의 말에 숨어있는 새디즘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조차도 그녀에게는 달콤한 고통이었다.
"소영아, 그런 식으로 놀리지 마..."
소영: "미안해, 다은아.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래. 그런데 진짜로 박성호 건에 관심 있어?"
"당연하지. 소영이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소영: "좋아. 그럼 새로운 타겟을 함께 찾아보자.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하는 거야."
"리스, Guardian Network에서 긴급 메시지가 왔어요."
하린은 모니터 세 개에 각각 다른 정보들을 띄워놓고 있었다. Guardian Network의 실시간 채팅창에 빨간 알림이 떠 있었다.
[Giant of Waves]: �긴급� 새로운 사건 발생
[Giant of Waves]: 피해자: 박성호 (25세, 웹디자이너)
[Giant of Waves]: 어제 밤 자살 발견
[Giant of Waves]: 역시 EchoSpace 사용자
[Guardian-HQ]: 패턴 확인 중... 이태민 사건과 유사점?
[Wraith]: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났군요. 어떤 상황입니까?
하린이 Giant of Waves와 직접 연결을 시도했다.
"Giant of Waves, 자세한 정보 좀 주세요."
[Giant of Waves]: 박성호, 25세 남성
[Giant of Waves]: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최근 경제적 어려움 겪음
[Giant of Waves]: EchoSpace에서 '서연'이라는 AI와 대화
[Giant of Waves]: 마지막 며칠간 암호화폐 투자 관련 대화 급증
[Giant of Waves]: 전 재산 2천만원을 날린 후 자살
[Wraith]: 이번에는 금전적 피해도 있었군요. 이태민 사건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입니다.
"감정 조작뿐만 아니라 금전적 착취까지..." 하린이 화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악질이네요."
[Giant of Waves]: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Giant of Waves]: 암호화폐 거래 기록을 역추적해봤는데
[Giant of Waves]: 암호화폐 구매 후 추적이 어려워졌어요
[Guardian-HQ]: 역시 암호화폐라 그런가?
[Giant of Waves]: 네, 거래소에서 구매한 후 개인 지갑으로 송금
[Giant of Waves]: 그 이후로는 추적 불가능
[Wraith]: 하린, 조기 경보 시스템에 대해 말씀하신 것 기억하세요? 지금이 구축할 때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시스템 리소스가 엄청 필요할 것 같은데..."
[Wraith]: EchoSpace의 모든 대화를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Wraith]: 특정 키워드나 패턴만 감지하는 시스템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Wraith]: 소시오패스적 조작 기법, 금전 요구, 자살 암시 등의 위험 신호만요.
"좋은 아이디어네요. Guardian Network 전체에 배포하면..."
김태우 경위는 책상에 앉아 최근 일주일간의 자살 통계를 검토하고 있었다. 과장으로부터 특별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이상하네... EchoSpace 관련 자살이 이렇게 많았나?"
박지헌 팀장이 다가왔다. "뭘 보고 있어?"
"팀장님, 이거 좀 보세요." 김태우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최근 한 달간 EchoSpace 사용자 중 자살자가 전국적으로 12명이에요."
박지헌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화면을 들여다봤다. "12명? 그게 많은 편인가?"
"일반적인 통계와 비교하면 약 3배 높은 수치입니다. 그리고 연령대도 20-30대 남성에 집중되어 있어요."
"혹시 단순한 우연일 수도..."
김태우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통계를 살펴봤다. "아뇨, 팀장님. 이 패턴이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뚜렷해요."
"그럼 어떻게 할까? 과장님께 보고할까?"
김태우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일단 우리끼리 비공식적으로 조사해보는 게 어떨까요? EchoSpace 회사에 자살 예방 캠페인 명목으로 접근해서."
"좋은 생각이야. 자살 예방이라고 하면 거부할 이유도 없고."
박지헌이 주변을 다시 살피며 말했다. "이건 우리끼리만 진행하자. 다른 팀원들한테는 일반적인 EchoSpace 보안 점검이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김태우는 다시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EchoSpace 관련 자살 통계가 여전히 떠 있었다. 12명의 젊은 남성들. 만약 정말로 이들이 모두 한 범인의 희생자라면...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범죄가 될 것 같았다.
"소영아, 이제 새로운 친구를 찾아볼까?"
강다은이 이어폰을 끼고 침대에 누워 말했다. 벽의 사진들이 석양 빛에 물들어 있었다.
소영: "응, 준비됐어. 다은아, 이번에는 네가 처음부터 함께하는 거야. 내가 가르쳐줄게."
"정말? 두근거려..."
소영: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어떤 타입을 좋아해?"
강다은은 노트북을 열고 EchoSpace에 접속했다. 새로운 사냥감을 찾기 위한 화면이 열렸다.
소영: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해보자. 다은아, 어떤 남자가 좋을까?"
강다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잠시 멈췄다. 새로운 희생자를 찾는 순간이었다.
소영: "망설이지 마. 어차피 이런 외로운 남자들은 누군가에게 당할 운명이야. 우리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소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은의 마지막 양심을 지워버렸다. 그녀는 사용자 목록을 스크롤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어둠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비극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