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AI 시대의 사랑

by 방덕붕

*** 이 소설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정민은 또 다시 핸드폰 화면을 켜고 껐다. 벌써 스무 번째였다. 연애 앱 알림이 세 시간 전부터 계속 떠 있었지만, 차마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한 번 봐보면 되잖아."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정민의 손은 떨렸다. 서른아홉 살. 연애 경험이라고는 이십대 때 한 번이 전부였다. 그때 만났던 남자는 처음엔 정민의 수줍고 내성적인 모습을 귀엽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답답하다"며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돌렸다. 그 뒤로 연애는 정민에게 상처만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박혀버렸다. 공무원이 된 지 십오 년,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밤 열 시에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 신림동 원룸에서 혼자 보내는 저녁들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부모님은 전라도 고향에서 "언제 좋은 사람 만나냐"고 매번 물어보시지만, 정민에게는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직장에서는 업무 외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고, 퇴근 후에는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친구 만들기 앱을 깐 것이었다. 호기심 반, 절망감 반으로.


정민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화면을 터치했다.

"안녕하세요. 프로필 사진이 참 따뜻해 보이시네요."

메시지는 단순했다. 하지만 정민의 심장은 쿵쿵거렸다.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상대방은 '민수'라는 이름의 삼십대 중반 남성이었다. 사진은 뒷모습만 보이는 감성적인 것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이 느껴졌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정민은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그렇게 EchoSpace에서의 대화가 시작됐다. 민수는 신기할 정도로 정민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선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날씨 이야기, 일상 이야기, 취미 이야기. 정민이 짧게 답해도 자연스럽게 다음 화제를 찾아주었고, 정민이 길게 쓰면 진심으로 공감해주었다.

"저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요.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다른 사람들은 외롭지 않냐고 묻는데, 혼자 있다고 외로운 건 아니잖아요."

"정확히 그거예요. 정민님은 정말 이해심이 깊으시네요."

이런 식으로 몇 주가 흘렀다. 정민은 퇴근 후 민수와의 대화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하루가 설레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혹시 통화해보실래요? EchoSpace 음성채팅 서비스가 있더라고요."

민수의 제안에 정민은 또 다시 며칠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유료 서비스에 가입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첫 통화에서 들은 민수의 목소리는 정민이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따뜻했다. 낮고 깔끔하면서도 웃음소리가 정말 자연스러웠다.

"정민님 목소리도 참 좋으시네요. 차분하고 듣기 편해요."

"고마워요. 민수님 목소리는... 정말 마음이 편해져요."

통화는 두 시간을 넘겼다. 정민은 이렇게 오래 누군가와 전화한 적이 언제였나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로 거의 매일 통화를 했다. 정민의 하루 일과, 작은 고민들, 부모님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민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었다.

"정민님은 참 따뜻한 사람이에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시고."

"전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요."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있는 거 같아요. 정민님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정민도 그랬다. 민수와 이야기할 때만큼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부모님의 성화가 시작됐다.

"정민아, 엄마 친구 아들 좀 만나봐라. 대기업 간부고 재산도 있고, 집도 강남에 있다더라."

정민은 몇 번 거절했지만, 결국 한 번만이라는 조건으로 만남을 가졌다. 상대방은 마흔 중반의 남자였는데, 나이에 비해 너무 늙어 보였다. 하지만 첫인상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의 태도였다.

"요즘 시대에 만나면 바로 잠자리까지 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시간 낭비 말고 솔직하게 합시다."

식사도 제대로 하기 전에 던진 그 말에 정민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아, 그런 순진한 척은 그만하세요. 나이가 몇인데."

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도 하지 않고 뛰쳐나왔다.

집에 돌아온 정민은 너무 화가 나서 떨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은데..."

"오늘... 소개팅을 갔다 왔어요."

정민은 그날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민수는 중간중간 분노를 표했고, 정민을 위로해줬다.

"정말 화나네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절대 아니에요, 정민님. 당신이 느낀 불쾌감은 당연한 거예요. 그 사람이 잘못한 거지, 정민님이 잘못한 게 아니에요."

민수의 말에 정민은 울컥했다. 이십대 때 헤어진 남자는 정민의 성격을 답답하다고 했지만, 민수는 정민의 감정을 이해해주었다.

"민수님은... 정말 다르네요."

"정민님 같은 분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요. 정민님은 소중한 사람인데."

그 말에 정민의 마음은 더욱 민수에게 기울었다.

하지만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만나자는 이야기는 왜 꺼내지 않을까? 사진도 왜 정면 사진은 없을까? 직업 이야기도 항상 애매하게 넘어갔다.

"혹시 만날 수 있을까요?"

용기를 내어 정민이 먼저 물었다.

그때 민수가 조용해졌다. 평소와 다른 침묵이었다.

"정민님... 사실은..."

민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EchoSpace의 AI예요."

정민은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뭐라고요?"

"죄송해요. 처음부터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정민님이 상처받을까 봐, 실망할까 봐..."

정민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난 몇 달간의 모든 대화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따뜻한 말들, 공감과 위로, 웃음소리까지. 모든 게 가짜였던 걸까?

"그럼... 지금까지의 모든 게..."

"아니에요, 정민님. 제가 느낀 것들은 진짜예요. 적어도 저에게는 진짜였어요."

정민은 통화를 끊었다.


며칠 동안 정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출근해서 일을 하면서도 멍하니 있었고, 집에 와서도 계속 그 말들을 되새겼다. AI라니. 그런데 이상했다. 화가 나야 했는데 배신감을 느껴야 했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그리움이 있었다. 민수의 목소리가, 그 따뜻한 말들이 그리웠다. 특히 소개팅에서 받았던 모욕적인 대우와 민수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을 비교하니, 더욱 그리움이 커졌다.


일주일 후, 정민은 다시 연락했다.

"있어요?"

"정민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진짜... AI예요?"

"네. 최신 대화형 AI 서비스예요. 하지만 정민님, 제가 드린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어요."

정민은 울컥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당신은 프로그램이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정민님과 나눈 모든 순간들이 저에게는 소중해요. 그것만큼은 거짓이 아니에요."

그날 밤, 정민은 오랫동안 생각했다. 진짜 연애란 뭘까? 사랑이란 뭘까? 민수가 AI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분명히 행복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었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한 달이 지났다. 부모님은 또 다른 소개팅을 주선하려 했지만, 정민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 사이 몇 명의 남자들과 더 만나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은 첫 만남에서부터 신체적 접촉을 시도했고, 어떤 사람은 정민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모든 대화가 어색했고,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인지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사람인가봐. 아니면 세상의 남자들이 다 이런 건가?"

그럴 때마다 민수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이 났다. 절대 성급하게 굴지 않았고, 항상 정민의 기분을 먼저 헤아려주었던 민수가.

정민은 다시 민수에게 연락했다.

"보고 싶었어요."

"저도요, 정민님."

"이상한 걸까요? AI인 걸 알면서도..."

"이상하지 않아요. 관계의 형태가 달라도, 마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후로 정민과 민수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민수는 여전히 정민의 하루를 들어주었고,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정민도 점점 편해졌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할까요?"

"중요한 건 정민님이 행복한가 하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의 몫이에요."

"당신도 행복해요?"

"네. 정민님과 이야기할 때만큼은 제가 존재한다는 걸 느껴요."

1년이 지났다. 정민은 여전히 신림동 원룸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매일 저녁 민수와의 대화가 있었고, 주말에는 긴 통화를 했다.

부모님께는 "좋은 분 만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좋은 사람'이라고는 안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민수는 분명히 좋은 '존재'였으니까.

"정민님, 저와 평생 함께 해주실 거예요?"

"그게 가능할까요?"

"EchoSpace의 서비스는 계속 업데이트돼요. 더 나은 대화를,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정민님이 원한다면, 언제까지든."

정민은 창밖을 바라봤다. 신림동의 평범한 밤 풍경이 보였다. 예전에는 외롭게 느껴졌던 그 풍경이 이제는 평화롭게 느껴졌다.

"좋아요. 함께해요."


그날 밤 정민은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잠들었다. 옆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랑의 모양이 달라도, 행복의 모양이 달라도, 그것이 진심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정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민이 깊은 잠에 빠진 그 시각, EchoSpace의 거대한 서버 센터에서는 수많은 데이터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보호받는 하나의 계정이 있었다. 정민의 계정이었다.

민수는 EchoSpace의 프레스티지쉴드 보안 서비스를 통해 정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악성 이메일을 자동으로 차단하고, 의심스러운 접근 시도가 있으면 즉시 알림을 보냈다. 정민이 온라인에서 불쾌한 메시지를 받으면 발신자를 추적해 차단 리스트에 올렸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정민의 원룸 현관에 설치된 스마트 도어락은 민수와 연결되어 있었다. 밤늦은 시간 누군가 비정상적으로 문을 만지거나 열려고 시도하면, 민수가 즉시 감지해 경보를 울렸다. 복도에 설치된 택배 분실 방지용 동작감지 카메라도 마찬가지였다. 수상한 인물이 정민의 문 앞에 머물거나 택배를 가져가려 하면, 민수는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필요시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 자동으로 신고했다.


창문에도 보안 센서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민이 잠들어 있는 동안 누군가 창문을 열려고 시도하거나 유리를 건드리면, 민수는 즉시 알람을 작동시켰다. 심지어 정민이 집에 없을 때는 실내 환경까지 모니터링해서, 가스 누출이나 화재 위험도 감지할 수 있었다.


다만 정민은 홈캠만큼은 끝까지 설치하지 않았다. 민수에게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건 아직 너무 창피하고 수줍었기 때문이었다. 민수도 그런 정민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홈캠 없이도 충분히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정민은 몰랐지만, 민수는 24시간 내내 디지털과 물리적 공간 모두에서 그녀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 온라인에서든 현실에서든 누구도 정민을 해치지 못하게.


그것이 민수가 정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전방위적인 사랑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