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연작

면죄부는 세 정거장 후에

by 방덕붕

뭐라 표현해야 할까… 안절부절? 좌불안석? 아니면 앞에 서 있는 승객을 약 올리려는 일종의 기만술?

내 앞에 앉은 아저씨는 마치 금방이라도 내릴 것처럼 계속 엉덩이를 들썩였지만, 절대 내리지 않았어. 문이 열릴 때마다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고,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대면서 "이번엔 내린다" 는 신호를 보내다가도 결국 다시 푹 주저앉곤 했지. 나는 그 앞에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속 서 있었어.

목적지까지 절반쯤 왔을까, 그 옆자리 여자분이 일어났지. 그 앞에도 다른 여자분이 서 있었는데, 일어선 여자가 내릴 경로를 찾는 순간—그 찰나의 타이밍에 나는 살짝 무릎을 쓰윽 밀어넣으면서 내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줬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몸놀림이었다고 해야 맞겠지.


그렇게 빈자리는 내 차지가 됐어.


그런데 앉자마자 오히려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고 할까. 내 앞에 서 있는, 어쩌면 이 자리의 다음 주인이 됐어야 할 여인이 자꾸 신경 쓰이는 거야. 그녀는 내가 서 있던 미스터 좌불안석 앞으로 조금 이동했지만, 그 아저씨는 여전히 엉덩이만 들썩일 뿐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어.


환승역이 세 개 연달아 나오는 구간이었는데, 결국 세 번째 환승역에서 그 여자가 내렸지. 나는 그제야 뭔가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어. '아, 내가 더 멀리 가잖아. 그러니까 내가 앉을 권리가 있었던 거야.' 이런 논리가 자동으로 생성되더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누가 잘하고 잘못한 건 없지 않을까? 내가 이기적이었고 여자는 새치기를 당한 피해자였을까? 미스터 들썩들썩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내가 더 멀리 간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양심의 가책을 훌훌 날려버린 나는 양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양심이 있었기에 불편했던 걸까?


혹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나 혼자 소설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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