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시계를 봤어. 8시 12분. 딱히 지하철 시간을 맞춰서 나온 건 아니라서 여유가 있었는데 퍼뜩 8시 13분 급행열차가 생각이 난 거야.
종종걸음으로 개찰구 앞에 쯤 오니까 전광판에는 13분 차가 안보이더라구. 그런데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어!
개찰구를 찍고 에스컬레이터로 뛰어내려 갔지. 플랫폼에 급행이 이미 서 있더라고.
'으아아아아아아~~~' 속으로 제발 가지 말라고 소리치며 종종걸음으로 뛰었어. 뛰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열차에 올라타니까 좌석은 당연히 없었고,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어. 그런데 열차는 2분쯤 뒤에 출발하더라.
아마도 열차가 조금 일찍 와서 오래 정차했던 것 같아. 그러면 뛸 필요 없었는데.
목적지 역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사람들이 하나둘씩 출입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 어떤 사람은 문 앞 한가운데를 선점하려고 나와 내 앞사람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더라고. 뭔가 엄청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어차피 종착역이라 다 내릴 텐데 뭐가 그렇게 급할까?'
문이 열렸어. 그 사람은 제일 먼저 나가서 개찰구로 향했지. 나는 천천히 뒤따라갔고. 개찰구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사람이 많아서인지 그 사람은 멀리 못 갔더라구. 에스컬레이터를 내려 걷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폰을 보면서 느릿느릿 걷기 시작하는 거야.
뒤에서 사람들이 오는데도 신경 안 쓰고, 점점 내 진로 쪽으로 기울어 걸으며 가로막더라고. 내 진행 속도와 그 사람과 벽 사이 틈이 별로 남지 않았기 때문에 주머니에 손을 넣은 팔로 살짝 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어. 당최 그 사람의 의도가 뭐였는지 알 수가 없는 거야. 급했던 걸까? 급한 게 아니라, 그냥 남보다 앞서는 게 급했던 건 아닐까?
다른 지하철로 갈아타려고 플랫폼에 내려왔어. 목적지 방향 열차기 곧 온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씩 오늘 일들과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사람들을 보니 다들 어딘가로 향하고 있더라고. 급하게. 아니면 급한 척. 어딘가 헤매고 있는 듯? 사람이 드문 출입구 쪽을 찾고 있는 듯, 나도 아까 그랬고.
생각해 보니 다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상황에 익숙해진 것 같아.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작되는 경쟁. 일상적이지 않게 발생하는 사고로 인해 내 목적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 경쟁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 남들은 다 뛰는데 나만 안 뛰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누가 진짜 급한지, 누가 그냥 앞서고 싶은 건지 구분도 안 돼.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스마트폰 속의 세상에 빠져있는 동안은 주변이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뗐을 때는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고...
능력주의 사회가 이런 거 아닐까? 희소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경쟁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2분 뒤에 출발한다는 걸 알았으면 뛰지 않았을 텐데, 그 정보가 없으니까 불안해서 뛰는 거잖아. 다음 기회가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없으니까.
지하철은 가고 오고 또 오는데. 3분마다. 급행도 2분을 기다렸는데.
혹시 우리 사회도 그런 건 아닐까? 사실은 자리가 있는데, 기회가 있는데, 없다고 믿게 만들어서 모두를 조급하게 만드는 거. 그래야 경쟁하니까. 그래야 뛰니까.
2분 뒤에 출발할 줄 알았으면 천천히 갔을 거야. 뛰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