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이 유전되는 집에서 자랐다

by 티보치나

어릴 적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빠가 집에 없던 날이었다.

엄마는 방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배가 고팠고, 화장실도 급했다.

문을 열었다.

거실을 지나 안방 앞에 섰을 때,

안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살짝 열린 틈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고,

그 사람은 할머니 밑에서 일하던 삼촌 중 한 명.

평소에도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 장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내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달려 나와서, 왜 방에서 나왔냐고

옷걸이 설치할 때 쓰는 쇠 봉으로 나를 마구 때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방으로 밀려 들어갔다.

며칠 뒤, 엄마가 나를 안방으로 불렀다.

눈이 풀려 있었고, 수면제에 취한 얼굴이었다.

엄마는 나를 화장대 앞에 앉히고 뒤에서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쟤 좀 집에서 나가라고 해라

계속 엄마옆에서 귀찮게 한다

빨리 좀 내쫓아라."

엄마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뒤를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또 한 번은 화장실에서였다.

급하게 나를 불러 세우더니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 누구야!

우리 집에서 나가라고 해!'

엄마는 두 손으로 공기를 밀어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쫓아내려는 사람처럼.

그 시절 엄마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우울증 약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고,

배변도 가리지 못했다.

살은 급격히 불어났고, 온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엄마는 계속 구토를 했다.

약을 줄여보기도 하고, 증량을 해보기도 하고,

입원을 해봐도 상태는 더 나빠졌다.



결국 외삼촌이 무당을 불렀다.

나는 열두 살 쯤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고

나는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여기 여자 아이가 하나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

근데... 생긴 게 이상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다.

너를 보는데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며칠 뒤 아빠가 자주 가던 뒷고기집으로 나를 불렀다.

술에 취해있었다. 아빠는 말했다.


"원래 너한테 언니가 하나 있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몰라.

엄마가 낳고 나서 며칠 안 돼서 다른 데로 보냈거든."


그리고 울었다.

나는 이유를 물었지만 아빠는 술이취해서 대답하지 못했고, 다음 날 아빠는 그 이야기를 한 기억조차 없었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남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이상하고 낯설었다.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죽은 뒤에야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는 왜 죽었을까.

무엇이 그렇게까지 엄마를 몰아붙였을까,

생각을 거듭하다가 나는 문득 그 아이를 떠올렸다.

엄마가 허공을 보며 쫓아내라고 했던 그 아이의 존재.

어쩌면 엄마 옆에 계속 붙어있었던 건 아닐까.

엄마를 끝까지 괴롭힌 건 그 아이였 던 건 아닐까.

그래서 엄마가 미쳐버린 건 아닐까.

그 생각은 논리가 아니라, 공포에 가까웠다.

지금까지의 의료기록서, 진료서들이다.

기록을 보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이 지역에 와서 다닌 첫 병원에서 나는

하루에 마흔두 알의 약을 먹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우울증이 아니라 양극성장애라는 것을.

약은 나를 가라앉히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과열시켰다.

수면제를 스무 알 넘게 먹어도 잠은 오지 않았고,

나느24시간 흥분상태였다.

손이 멈추지 않았고, 계속 무언가를 해야 했다.

밤새 다이어리를 꾸미고,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집을 쓸고 닦고 또 닦았다.

특히 화장실.

하루종일이 아니라 정말로 하루를 넘겨가며.

밖으로는 백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완전히 꺼졌다.

며칠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물 한 모금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침대에 누워서 자해가 시작된다.

홀로 묵묵히 다이어리 꾸미기 할 때 종이로 가위질하는 것처럼

쓰윽쓰윽

쓰윽



종이를 자르듯 내 피부를 긋는 일.

살아있다는 감각이 오직 거기에서만 느껴졌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비누를 떨어뜨렸는데

비누는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잡히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서 도망치듯.

나는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나를 떠나고 있다는 것.

내 손에서 '도망쳐' 사라지는 비누를 손으로 좇으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밀었고,

그 후 절망과 비애가 뒤섞인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나 자신을 홀로 남겨둔 채 멀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기억도,

감정도..



결국 남는 건 나 혼자뿐이라는 것.

그때 나는 생각했다.

죽음 말고는 되돌릴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또 다른 날에는 이 모든 고통이

내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버티기 위해 스스로를 더 깊이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밀물처럼 밀려오는 이 감각이

언젠가 나를 완전히 삼켜버릴 텐데,'


나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있다.

자살시도는 보통 수면제를 먹기 전인데

에너지가 넘치고 흥분도가 높을 때 더 심했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고,

침대에만 누워있을 때는 그저 할 수 있는 건

목이 너무 마를 때 물 한 모금 정도 마시기,

손목에 피투성이 되어있는 걸 보면서

희열 느끼기.

더 아프게, 더 세게 긋고.

수면제를 먹으면 어떤 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정말 잘잔다. 하지만 어떤 날은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며칠 전엔 커다란 트럭에 내 몸을 날려서

빛을 받으며 허공에 떠오르며 내 몸에 힘이 빠져 물컹물컹한 고깃덩어리처럼 변해버린,

그대로 절단기에 들어가듯 커다란 트럭 아래로 빨려 들어간 내 모습이 나왔다.

수면제가 잘 드는 날이면 이틀은 잠만 자는데,

하루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싶어 보니

사흘이 지나있었다. 그리고 이불은 축축했다.




그 순간 나는 죽음 외에는 달리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더 확신이 들었다

또 어떤 날은 나만이 이 세상 모든 나쁜 일들을

앉았다는 듯 나만이 피해자인양 자기 연민을 가지고

자학하는 것만 같아서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고통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라고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나는 나의 상상력으로 내가 겪는 고통을 부풀리고

있지 않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이 없으니까

라는 생각도 한다.

대낮에 서른두 알의 수면제를 먹는다

항우울제는 안 먹어본 게 없는 거 같다


큐로켈, 루나팜, 뉴프람, 트리티코정, 삼진디아제팜,

아쿠다, 환인클로제팜, 환인탄산리튬, 라제팜, 보령부스파, 아티반,

푸로작, 미르탁스, 쎄로켈, 라믹탈 등등..


희망도 무덤도 안 보이는 무색의 시간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반혼수상태가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하지?

생각이 나뉜다. 뭔가가 밀물처럼 밀려와서

결국 나를 익사시키거나 쓸려갈거같은데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