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가족, 아빠에게

by 티보치나

엄마가 죽고 나서 아빠는 급격히 정신이 이상해졌다

아빠는 메시지를 하루에 수십 통씩 보내곤 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냉장고를 열고 밥을 먹고 있다느니, 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린다느니 거실에서 자고 있는데

베란다에서 할머니랑 엄마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느니 별의별 소리를 다했다.

나는 걱정반 분노반으로 본가에 아빠를 보러 갔다.

나처럼 아빠를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리러 가서

치료를 받게 하려고 했다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경악했다

집은 쓰레기더미였다.

엄마가 죽은 지 겨우 4개월째되었을쯤이었다.

아빠는 여태껏 제대로 된 식사는 못 챙겨드신 거 같았다. 대부분 간식,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웠는지 과자봉지나 인스턴트 비닐들로 어지럽혀있었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세탁은 한 번도 안 했는지

눅눅하고 땀에 절은 냄새가 퍼져있었다.

제일문제는 베란다 창문이 크게 깨져있는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베란다 창문이 왜 이렇게 크게 깨져있냐고

아빠한테 여쭤봤으나 모른다고 하면서 횡설수설

이상한 말만 하면서, 피자가 먹고 싶다 하셨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억지로 앉혀서 계속 물었다.

작게 깨진 건 몰라도, 아파트 베란다 창문이

엄청 크게 깨져있는데 이게 작은 일이냐며

얼른 얘기해라고 소리쳤는데 아빠는 배고프다며 피자를 사달라고 했다. 일단 알겠다 하고 피자를 시키려 하는데 밖에서 먹고 싶단다.

일단 아빠를 배불리 먹이고 얘길 해야 할 거 같아서 나갈 준비를 했다. 근데 아빠신발을 봤는데 엄마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사이즈도 안 맞는 엄마 슬리퍼를.


'아빠, 왜 엄마 슬리퍼를 신고 있어?'


'신을게 이거밖에 없다 버릴 거 다 버렸는데

어찌 이게 딸려있네.'


'아빠 신발은?'


'신을 신발이 없다.'



신발장을 열어봤다. 아빠신발은 정말로

작업용 신발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운동화도, 슬리퍼도 한 켤레도 없었다.


'생전에 네 엄마가 다 사준 건데

아빠가 다 버렸다

근데 이거를 못 버렸다

그래도 신을 건 있어야 할거 아니가.'


가뜩이나 집상태를 보고 화도 나고 아빠를 이렇게 혼자 외롭게 놔둔 거 같은 마음에

죄송한 마음도 들고 미칠 거 같았는데,

사이즈도 안 맞는 죽은 엄마 슬리퍼를 신고 있는 아빠를 보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 신발부터 사러 가자고 했고, 나이키에 가서 운동화 2켤레, 슬리퍼 2켤레, 양말을 사드렸다.

새운동화를 신겨드리고, 슬리퍼를 버리려고 했는데

막상 버리려고 하니까 망설여졌다.

엄마가 죽고 나서, 나는 미련 없이 엄마의 비싼 옷, 비싼 신발 모두 처분하고 버렸다.

그런데 그 슬리퍼가 마음에 걸렸다.

눈물이 나왔다.


'oo야 슬리퍼 그거 너 신어라.'


아빠가 그 슬리퍼, 나보고 신어라고 한다.

엄마가 오랫동안 신은 그 슬리퍼,

본인도 못 버리고 불편하게 신던 그 슬리퍼를

나보고 신어란다. 무슨 뜻으로 말한 건가.

아빠는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계속 나를 힘들게 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괴롭게 하고, 울분을 터뜨리게 만든다.

뭐라고도 할 수가 없다

아빠는 아빠가 하는 행동, 말이 잘못된 것을 모르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불편하겠지, 상처받겠지 라는 생각을

못하고 행동하고 말한다. 그래서 더더욱 힘들다.

나는 결국 슬리퍼를 버리지 못한 채

나이키에서 새 종이백을 한 장 더 받은 뒤

넣어서 가지고 나왔다.


"아빠, 이제 발 좀 편해요?"

"어~ 편~하다 날아갈 거 같다."

"마음도 편해?"

"어~ 편~하다 그 슬리퍼는

이제 네가 신으면 되겠네! 허허허 "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빠를 보고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여러 브랜드를 가서 옷을 사드리고

피자를 먹으러 갔다. 아빠는 맛있게 드셨다.

나는 베란다 깨진 것을 몇 번이고 물었지만

아빠는 모른다고만 대답하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오토바이를 새로 장만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15,000,000 원주고

새 오토바이를 장만했다

아빠 다시 오토바이 탈거다"


뭐? 천오백만 원? 아빠.. 제발...

우리 수준에 무슨 천오백만 원 오토바이야..

난 그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었지만 아빠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본인말만 했다.

아빠는 소싯적 경북 모터사이클회장이셨다.

잘 나가는 오토바이 협회회장이었고,

내가 어릴 적엔 나를 검은색 두건을 씌우고

오토바이 뒤에 나를 태우곤 전국팔도를

돌아다니신 아주 멋쟁이 아빠셨다.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자, 오토바이 3대를

다 팔고는 다시는 안 타셨고,

오토바이라곤 시장에서 장사할 때 타시는

뽈뽈이가 다였다.


"아빠는.. 바람맞으면서 오토바이 타면

기분 안 좋은 게 싹~없어진다 아니가 허허허"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는 J에게, J가족들에게 의지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가족이라곤 이제 아빠뿐이었으니까 아빠..

아빠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바로 그 마음을 접었다.


'그래, 아빠 하고 싶은 거 해 아빠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했다. 아빠는 엄마 죽었을 때

특수청소업체에 맡겨야 했을 자살현장청소를

아끼겠다고 나에게 시킨 사람이다.

나에게 평생 못 잊을 PTSD를 안게 해 준 사람인데, 원망하진 않는다.

그냥 아빠만 보면 불쌍하다. 어른으로서 너무 힘이 없고 너무 못 배웠고, 지혜가 부족했고 그래서 자식한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아빠라는 게,

근데 본인이 그렇다는 거조차도 모르는 아빠가 불쌍했다. 그렇게 신나게 오토바이 자랑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아빠한테


'나, J가족들한테 이런 대접받고 살고 있어,

나 힘들게 살고 있어'를 얘기할까.

그저 아빠 얘기만 들어줬다.

아빠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피자를 다 먹고 집으로 들어와서 나는 하루 종일

집을 치웠다. 아빠는 멍하니 TV만 쳐다봤다

티브이를 시청하는 게 아니라

그냥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는 거 같았다.

이제 가려는데, 하루만 자고 가라고 하는 거, J가족들이 싫어한다고 가야 한다 하고

인사하고 나왔다. 예전엔 항상 내가 택시 타는 거까지 배웅해 주고 두 손 들고 인사해 주던 아빠였는데.

그럼 조심히 가라 하고 담배를 태우며

티브이만 쳐다봤다.

마음이 많이 안 좋았지만 나는 가야 했다.

J어머님의 전화가 수십 통씩 와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빠한테 포옹을 해줬다.

순간 스쳐간 기억이 났다.


엄마가 생각이 났다. 엄마는 정말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었는데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보러 왔을 때 주차장에서 보란 듯이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흐릿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나는 아빠를 다시 한번 안아주고,


'베란다 창문은 내가 알아보고 고치는 사람 불러줄게

연락할게 아빠 밥 잘 챙겨 먹어.'


하고 집을 나갔다.

아빠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깨진 베란다 창으로 온몸을 던졌다.



짓이겨진 입술을 깨물고 나는 울었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

키우던 화분도 죽어버렸다

근데 여전히 내 삶은 지속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여전하게 살고 있다

고비는 매 순간 찾아온다

언젠가 나도 끝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현재 살아야 하는 마음이 너무

끔찍한 거 있지. 신은 대체 뭘 하나.


"이 세상에서 인간은 못이되든지

망치가 되든지 둘 중 하나다."

라고 롱펠로가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못이구나.


누가 날 구해주길 바라던 때가 있었다.

난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이상하지 않다고.

얼마든지 화내도 좋고,

얼마든지 울어도 좋다고

나를 쓰다듬으며 토닥여주길

간절히 바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자살하고

반년이 채 안되어 아빠가 또 자살한 뒤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 내 삶은 이렇게 정해져 있는 거구나.'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지는구나.'

'내가 내 가족들을 다 외로움으로, 죽음으로

몰아갔구나.'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잊힐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나의 그 언젠가 는 언제일까

불행의 연속이다. 나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는

내가 끔찍이도 싫다.

조금씩 이 서러운 세상에서 나를 지우다가

내가 살았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나날들.

엄마죽음 이후로, 더욱더 큰 절망감에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스스로 죽고 싶어 하길 바란다.


J에게도, J가족들에게 내가 재수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파혼소식을 들었다. 내 몸에 소금을 뿌렸다.


J, 나는 네가 꼭 너와 꼭 닮은

사람을 만나 내가 겪었던 아픔과 불행을

느껴보길 바란다.

아빠까지 돌아가신 후 J, 그리고 너의 가족

당신들의 그 태도는 너로 인해 느낀 내 고통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내가 어떠한 심정이었는지

네가 겪어보길 진심으로 소원하고 바란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절망감에 하루에도 몇 번씩

너 스스로 죽고 싶어 하길 바란다.




아빠에게

아빠, 나는 실패한 것 같아. 그냥 내가 못난 사람 같아.

엄마가 떠난 뒤에 나는 슬퍼할 틈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졌어.

그게 더 이상해서, 더 아팠어요.

아빠, 엄마는 왜 그렇게 가버렸을까요. 마지막 순간에,

나는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그 생각이 나를 계속 붙잡아요.

그래도 나, 시장바닥에서 고생하던 아빠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어

그런데 노력이라는 게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건지 모르겠어.

아빠가 시켰던 청소도 이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머릿속에선 자꾸 아빠의

못난 모습들만 남아. 그래서일까, 아빠 장례식 날, 나는 울지도 못했어.

그게 더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요. 나는 태어나서 제대로 해낸 게 하나도 없는 사람 같아요.

J를 만나고, 그 가족들 속에 들어가면 나는 조금은 사람답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어요. 나는 그 안에서도 여전히 혼자였어.

너무 외로워요, 아빠.

사는 게 너무 창피해.

나는 엄망마빠보다도 더 가난해질 것 같아요.

그렇게 살게 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아빠, 나는 아무것도 못했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이에요.

그 생각이 계속 나를 무너뜨려요.

어쩌다 보니 나는 벌써 서른이야

그런데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J를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게 사랑이라고 믿기에도

너무 많이 지쳐있어요.

나는 그냥, 사랍답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나는 지금 무서울 만큼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무너지고 있어요.

엄마가 떠난 뒤부터였을까요,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을까요.

나는 지금 가장 먼저 무너질지도 모르는 자리 위에 서있는 기분이에요.

보이는 것들은 전부 껍데기뿐이고, 그 안에 있는 나는 어디에도 없어요.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요. 여기가 바닥일까요.

아니면 더 아래가 남아있는 걸까.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고작 그런 일로 무너지냐고 웃을지도 모르겠죠.

그런데 나는 압니다.

나는 지금 나를 구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걸.

나를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걸.

그래서 더 서러워요. 아직 젊은 나이에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고통을 내가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아는데, 지금의 나는 정말로 그래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엄마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아빠, 도와줘 제발.

신이 있다면 제발, 이 고통이 여기서 멈추게 해 주세요.

이전 11화죽고 싶었던 내가, 다시 나를 살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