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으려고 했는데, 또 살아남았다

by 티보치나



삶이란 건 매일이 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해가 뜨면 시작되고, 자정이 되면 끝나는

'오늘'이라는 시간.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고

무엇 하나 온전한 축복이 되어주지 않는다.

폭력적인 계절들이

내 손목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엄마 아빠가 죽고,

J가 떠난 뒤에도 나는 애도기간을 가지지 않았다.

울 시간도, 무너질 시간도 없이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래서였을까,

뒤늦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웠다.


며칠 전, 나는 K와 함께 일기장을 태웠다.

그곳에서의 기억들을 지우기 위해서.

종이가 타들어가는 냄새,

검게 말려 올라가는 페이지들.

나는 그걸 보면서 기쁨의 어떤 눈물이 나왔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정말로 끝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걸 그 순간만큼은

느끼지 못했다. 불은 종이만 태웠고,

그 안에 적혀있던 시간들은

내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워버린 게 아니라, 형태만 바꿔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남겨둔 그 세 권은 지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결국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

나중의 글이 될 거라는 예감 때문에

끝내 태우지 못했다.

나는 모두 태우려고, 지우려고 했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쓰기 위해 남겨두었다.




정신 차려보니 급실이다.


'어떻게 된 거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4시간에 한 번씩 내 생사여부를 확인하는 곳에서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이상감지를 느끼고

집으로 찾아온 모양이

나를 확인하러 온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도어록을 부수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날, 나는 번개탄 다섯 개를 피우고

수면제를 쏟아 넣고 싸구려 와인을 들이켜고 잠들었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죽으려고 했는데, 또 살아남았다.

그래서 더 괴롭다

이날 의료사고가 있었다.

다른 환자에게 들어가야 할 링거가

내 몸에 꽂히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몸이 뒤집히듯 아팠다.


"죽을 거 같아요 저 이상해요 지금."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간호사가 뭔가를 확인해 보더니 곧 의사가 들어왔고, 나는 마취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나는 알았다.

'아, 이건 사고구나.'

나는 보호자가 없는 기초수급자다.

병원은 그 사건 이후 혹시나 문제가 될까 싶어서

나를 VIP1인실로 옮겼다. 조용히.

내가 기초수급자, 보호자가 없는 줄 알고.


그 방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모든 것이 갖춰진 방이었다.

나는 참, 별의별 경험을 다한다 싶었다.

이게 삶인가? 벌인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나는 사실 그곳을 떠나 정말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정상적인 연애, 새로운 일,

취미, 여행..

다이어리에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놀이공원 가보기,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기,

혼자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마셔보기.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그런 평범하지 않은 것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매일밤 사람들을 죽였다.

J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아빠.

글 속에서 수없이 죽였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아빠는 죽어버렸다.

엄마가 죽고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순간 알았다. 나는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나는 앞으로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

이미 끝난 것들의 뒤에 남아 있는 사람처럼 살게 되었다.

나는 살아있는 쪽이 아니라, 남겨진 쪽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빠를 죽인 건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쓴 글들이,

내가 품은 분노가.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살인자라고.

나는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죽고 싶은 사람이다.

잠드는 것도 고통이고,

눈을 뜨는 것도 고통이다.

밤은 무섭고,

아침은 더 끔찍하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렵다.

세상은 온통 검은색이다.

그런데도 나는 죽지 않는다.

이 몸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래서 묻는다.

나는 정말 죽고 싶은 걸까

아니면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죽고 싶은 걸까.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다.

대답을 아는 것보다 그 상태로 남아있는 시간이 더 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죽지 못한 채

사는 법도 모른 채

그 사이 어딘가에 오래 머무른다.



나는 약간의 신앙이 있다.

그래서 가끔 성경을 펼친다.

"하나님,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대답은 없다.

나는 안다.

나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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