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 걱정 말아요 그대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
떠난이들을 마음 편히 보내주고,
지금 드는 고민과 상념들을 회피하지 않고 머리 아프게 고민할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직 내 삶은 무겁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언제까지 기초수급자로 살 수 없으니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할지 막막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무던히 계속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을 키워야겠다.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음을 알고
꿋꿋이 버티는 정신력을 다듬자
내일 해야 할 일을 다이어리에 적는다.
귀찮고, 피곤하더라도 일기도 한줄이라도
항상 적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해냈을 때,
예쁜 색볼펜으로 칠할 때 그 뿌듯함 성취감..
거기서 나오는 자존감. 그것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내 자존감을 만든다.
내가 겪고 나서 느낀 바,
상처는 절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상처는 그저 아물기 마련이다.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픔을 바로잡기 늦은 날은 없다.
아프면 그대로 아파하면 된다.
대신 내 몸을 다치게 하진말자.
그리우면 그리운 데로,
화나면 '내가 지금 화가 많이 나있구나.. 왜 화가 났지?'하며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 본다.
그러다 공황이 시작되면, PTSD가 오면
또 좌절하기도 한다. 약물오남용을 해버릴 때도 있다.
수차례 반복한 끝에, 깨달은 것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이다.
겪었던 고통을 없던 걸로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내가 고통이 찾아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거 같다.
그걸 모르면, 알면서도 어두운 동굴 속으로 몸을 웅크려버라면 나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계속 자해하고, 자살시도하고
입원하고, 또 자살시도하고.. 그걸 즐기고.
속수무책 당한다.
자살유가족은 자살생존자로 불린다.
그 이유는 자살 유가족의 자살위험은 일반 유가족보다 약 3배가 높다.
배우자는 약 5배, 자녀, 부모는 3-4배 같은 성별 가족일수록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살아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도 죽음을 몇 번이고 경험하며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연달아 겪어가면서 몇 년 동안
하염없이 방황했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안에서 잠시 벗어나
뒤만 보고 앞을 보던 걸음을 멈추고,
오롯이 나를 생각하며 현재를 살고 있다.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요즘
점점 건강을 찾아가는 지금에서야
문득 한살이라도 젊을 때,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뜻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사진 콘셉트도 내가 정하고, 의상, 헤어, 액세서리, 화장 등등 내가 정했다.
강렬한 레드 배경은 나를 더 돋보이기 위해 정했다. 내 몸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그 리듬에 맞춰사는 것.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고
오롯이 나답게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작년 생일엔 병원에서 지냈다 이번 생일엔
꽤 많은 지인들이 선물도 보내주고, 축하도 많이 받았다. '생일 축하해!'
생일의 의미는 단순히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날”을 넘어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삶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
내 삶의 시작을 기념..
생일은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그 사람의 존재와 삶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는 10대 때부터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기대를 하면 늘 실망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 생일쯤 되면
나 혼자 의미가 깊어진다.
'1년을 어째 어째 잘 생존했구나'
내 존재의 가치와 축하를 받은 올해 생일은 특별했다.
단순히 한 살 더 먹는 날이 아니라,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는 날이었다.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날이었다.
이번 생일엔 새삼 '나는 어떤 삶을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많이 던졌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는 순간 시작되지만,
그 의미는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삶의 이유를 모른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을 인식할 수 있었던
그 순간부터 삶의 의미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사람들은 나이 들기 싫어한다.
나는 정반대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내 인생이 피고 있는 거 같다.
그래프로 따진다면 20대엔 쭈욱 내려갔다가,
30대가 되어서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나마
올라가고 있다.
예전엔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기분대로 하루를 보냈다. 누워있기만 하고,
충동적인 행동도 하고. 요즘은 틈만 나면 독서하고, 필사하고 최근엔 글쓰기공부도 시작했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인 거 같다.
내가 노래를 꿈꿔왔을 때처럼.
삶은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이이다.
내년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젊음은 잠깐일 뿐, 삶은 계속된다. 내년에도,
그 후 내년에도 나는 이제
병원에서 지내지 않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