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 오래 눌러 두었던 말들이, 천천히 종이 위로 떠오른다. 말해지지 못한 것들이,
늦게 도착한 피처럼
문장 속으로 번진다.
지우려 했던 시간들이 문장으로 다시 돌아온다.
오래 눌려 있던 기억들이 천천히 스며 나와,
마침내 한 줄의 말이 된다
견디지 못한 마음이, 결국 언어의 형태로 흘러내린다
악몽은 나를 짓누르는 공포가 아니라,
나를 부수는 곳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곳이었다.
악몽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쳤다.
나의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만드는 가장 깊은 원천이 되었다.
사람의 고통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의 침묵을 가볍게 지나치지 않는다. 웃음 뒤의 균열을 보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의 고통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다만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왜 이런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무엇을 위해 견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깨달았다.
지옥은 나를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했다는 것을.
사람은 평온 속에서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가장 깊은 균열 속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중심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그 지옥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깊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악몽이 없었다면,
타인의 눈물 앞에서 이렇게 조용히 고개를 숙일 줄도 몰랐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이
나를 더 깊은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자존감은 일상에서, 꾸준함, 성실함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매일 반복되는 작고 조용한 선택들이,
내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남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나를 천천히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들이 나를 천천히 빚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별것 아닌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보려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조용히 물을 한잔 마시고,
창문을 열어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잠시 느끼고,
흐트러진 침대정리를 하고,
라디오를 켜고,
그날의 기분을 짧게라도 일기에 쓴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지만 이 작은 반복들이
나를 다시 이곳에 붙잡아둔다.
예전의 나는 특별한 날이 와야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사람은 대단한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 날들을 견디고, 이어가면서
조금씩 살아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을 대단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끊어지지 않게 지나가게 한다.
그게 지금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방식이다.
그리고
그거면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