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무너지면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들

by 티보치나

나는 요즘 집이 흐트러져 있으면 견딜 수가 없다.

약간의 강박처럼, 혹은 애착에 가까운 집착처럼

나는 내 공간을 붙잡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인데도 바닥을 닦고,

물건의 위치를 바꾸고,

내 취향의 소품들을 하나씩 들여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내가 조금 덜 무너지기 위해 필요한 자리다. 작은 것들이 바뀌자, 내가 머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공간에서 조금 더 나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물건의 위치를 바꾸고, 알리나 테무, 소품샵에서

내 스타일의 예쁜 소품들도 사서 꾸민다.

저 귀염뽀짝한 곰돌이 인형들은

나의 어마어마한 인형 뽑기 실력으로 뽑은 것 들이다 나는 인형 뽑기를 하더라도 짱구 이런 건 안 뽑는다

내 스타일의 인형만 쏙 선택해서 뽑는다

나름 인형 뽑기 신이다 지금은 안 하지만 엣헴.

거실 한쪽에는 LP장이 있다.

LP가 많지는 않다. 50장 조금 넘게 있는 거 같다

CD가 조금 많다. 정말 좋아하는 음악만 남겨두었다.

LP를 듣는 일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에 가깝다.

조심스럽게 꺼내 들고,

천천히 올리고,

바늘을 얹고,


지지직 -


그 소리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이미 음악은 시작된다.

나는 그 느린 과정을 좋아한다.

쉽게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 것들이 있다.

오래 남는 것들은, 대개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 LP장에는 가볍게 고른 음악이 없다.

나는 자우림 김윤아 광팬이기 때문에

자우림앨범, 김윤아 앨범

LP, CD들은 모두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나는 Whiney Houston을 정말 좋아했다. 신이 인간에게 '듣는 기쁨'을 주기 위해 그녀를 내려보냈다가, 너무 질투가 나서

다시 데려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노래는 언제나 상처받은 영혼의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녀는, The Beatles를 넘어서는

기록을 가진 유일한 목소리였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이름을 말한다.

대학 입시곡도 그녀의 노래였다.

<I have nothing>

그 노래를 나는 아마 천 번은 넘게 불렀을 것이다.


안방에는 한 장의 액자가 놓여있다.

테무에서 구매한 것이다. 보자마자 바로 샀다 이상하게, 내 모습과 닮아 보여서.

그 옆에는 늘 시집이 놓여있다.

자기 전 의식처럼 나는 시를 한편씩 읽는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인은

이현호, 박준, 안도현, 기형도, 천양희, 정민희.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나는 향이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

PTSD 때문인지 냄새에 굉장히 예민하다.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인센스에 불을 붙인다.

혹은 캔들을 켜둔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공기를 바꾸고,

그제야 나는 이곳이 내 자리라는 걸 느낀다.

향은 보이지 않지만, 가장 먼저 나를 붙잡아준다

공기가 바뀌면, 나의 위치도 함께 고쳐지는 느낌이다.



나는 가볍고 귀여운 것보다 시간이 쌓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빈티지 엔틱 이런 것들.

조금 낡고, 조금 깊은 것들.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나를 더 오래 붙잡아둔다.

그래서 나는 새것보다는

이미 한 번의 시간을 지나온 것들에

더 오래 시간이 머문다.

어딘가에 닳은 흔적이 있고,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결이 남아 있는 것들.

그것들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씩 부서지고,

조금씩 닳아가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는 걸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그게 좋다.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이,

그런 소품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심이 된다.

사라지지 않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매일 기록을 한다.

이것을 빈티지저널이라고 한다.

빈티지(vintage): 오래된, 낡은 듯한, 클래식한 감성

저널(journal): 일기·기록장


낡은 종이, 크라프트지, 커피 염색 종이,

레트로 스티커, 우표, 영수증, 티켓, 스티커, 색종이,

물감, 도장 등으로 만든다.

나는 그것을 할 때마다 글로는 남기지 못했던 감정들이 다른 방식으로 흘러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형태를 얻는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이렇게 붙이고 남겨야 된다.

그 감정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언어는 의미를 정리하지만,

이건 의미가 되기 전의 것들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방식에 가깝다.

며칠째 문장이 나오지 않는 날, 또 우울에 가까워진다. 손을 움직이려면 이유가 필요하다.

그럴 때에는 억지로 쓰지 않는다.

대신 붙인다.

말로는 붙잡히지 않던 것들이 종이 위에서는 이상하게 형태를 갖춘다.

말은 언제나 감정을 늦게 따라오지만,

이건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닿는 방식이다.

무언가를 자르고, 붙이고, 겹쳐놓는 그 과정 속에서

어디에 쌓여있었는지 모를 감정들이

조금씩 자리를 찾아간다.

설명되지 못한 감정들은 이곳에서야 비로소 형태를 갖지 않은 채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행위를 할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저 손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나는 잠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여기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낡은 종이, 찢어진 조각들, 버려졌던 것들을 모아서

다시 한 페이지를 만드는 일.


글쓰기가 나를 설명하려는 방식이라면,

이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다.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그대로 머물 수 있는 자리.

나는 그 안에서 조금 덜 무너지며 버틴다.

지금의 나는 그 방식에 더 가깝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보다

남아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쪽.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한 장이 붙고 나면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다.

인센스를 켜고,

LP를 꺼내 조용히 바늘을 올리고,

익숙한 음악이 천천히 공간을 채우고,

나는 그 소리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꾸민다.

그 순간만큼은 평화를 느낀다.

때는 평온에 가까운 감각이 스친다

나는 그걸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지 않도록 조금 더 오래 머물러본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이렇게 사소하고

반복되는 순간들이라는 것을.

천천히 손끝으로 만지고, 눈으로 고르고,

조용히 머물러보는 시간들 -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이어 붙인다.

나는 오늘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이 작은 것들에 기대어 여기까지 온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한 장을 완성하고 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조금은 덜 무거워진 상태가 된다.

이것은 완성되었으니까.

돌이켜보면 그건 취미라기보다는

내가 끊어지지 않기 위해 내가 만든 방식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 취미를 사랑하게 되었다.


올해 읽을 책들을 따로 골라,

그것들만 모아두는 책장을 샀다.

반드시 읽게 될 책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책들, 그리고 아직 펼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 한편에 들어와 있는 책.

그 책장에는 늘 미루어두었던 시간과,

곧 마주하게 될 문장들이 함께 꽂혀 있다.

나는 그저 그 앞에 서서 아무 책도 꺼내지 않는다.

그저 훑어보는 날이 많다. 읽지 않은 채로,

그저 바라본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으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그래서 나는 문장 하나를 이해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천천히 - 내가 읽힐 수 있는 문장들이 있는 책들로 천천히 시작한다.

지금의 나는 아직 문장들에 닿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건, 문장을 넘기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인 것 같다.

2026년이 되고서, 총 3권을 읽었다.

임경선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배수아 <뱀과 물>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죽음의 수용소는 이미 한번 완독 한 적이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몇 해가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 책을 펼쳤다. 여전히 깊게 남아있는 내용들이 다시 한번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이런저런 과정이 쌓이면서,

나는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내가 머무는 시간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여전히 무너질 수 있었고, 여전히 잠 못 이루는 밤이었고, 여전히 불안정했지만

그 사이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나는 그걸 '괜찮다'라고 느꼈다.

그 작은 것들이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아직 약물에 기댔고, PTSD는 어느 순간 갑자기 오고, 사회공포증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를 완전히 끊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예전의 나는 하루가 통째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눈을 뜨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그 끝에서 무너졌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다르다.

내가 키워야 하는 식물들,

공백이 없으면 안 되는 내 몇 줄의 기록의 일기,

어제 꾸며놓은 빈티지저널 옆에

스티커 하나를 더 붙여놓고 싶은 마음,

자기 전 한 편의 시를 읽는 마음의 여유.

그건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하루를 완전히 비워두지 않게 만드는 것들이다.

나는 그걸 하려고 조금 더 버텼고,

조금 더 늦게 무너졌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다 보니까 완전히 무너지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 사이에 아주 미세한 틈 같은 게 생겼다. 나는 그 틈에서 숨을 쉬었다. 그 작은 것들이 내 하루를 전부 무너지지 않게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걸 놓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너지는 날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아무리 식물에 물을 주고, 기록을 남기고, 하루를 조심스럽게 이어가도

어느 날은 아무 이유 없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럴 때는 그 작은 것들조차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물은 며칠간 안 줘도 되지 않았고,

다이어리는 비워둬도 됐고,

책은 던져졌다. 집은 다시 어지러워져 있었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

대신, 다음날이 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물을 주고, 한 줄을 적고, 하나를 붙였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하게 이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끊어지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어제 무너졌어도, 오늘 다시 하나를 하면

그걸로 이어진 거다.

그렇게 나는 계속 같은 것들을 반복했다.


나는 사라지지 않는 법을 택했다.

마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무너질 것이고, 여전히 불안정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

예전에는 그 사실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죽지 않았다는 상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의 무게가 조금 달라졌다.

살아있다는 건

이렇게 하루를 끊어지지 않게 이어 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다시 작은 것들을 붙잡는 일이라는 걸.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나는 어딘가가 달라져있다.

나는 이제 살아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조금은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전히 불안정하고,

여전히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는 달라졌다.

나는 이제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무너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이어지는 삶.


그 차이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조금 덜 두려워졌다.

살아있다는 건 대단한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다시 아주 작은 것들을 붙잡는 일이라는 걸

나는 조금씩 배워 가고 있다.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폐쇄병동에 있지 않다.

나는 안전한 나의 집에 있다.

나는 살아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이렇게 살 것이다.


무너지고,

다시 붙이고,

다시 읽고,

또 무너지고,

또 읽으면서.

그래도 나는 오늘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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