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념하는 날

by 티보치나



작년11월,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스스로에게 기념해주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새빨간 자해자국도 의학기술로 모두 없앴기때문이다

그날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스튜디오를 향했다.

전문가의 손길로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고,

내가 직접 구상한 의상과, 액세서리, 배경을 통해 장면 속에 나를 세워두었다.

사진작가님의 셔터가 몇 번이고 내려가는 동안,

나는 잠시, 아주 잠시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결과물을 받아 든 순간,

생각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남아있는 나를 보며

그날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행복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시간을 한번 더 붙잡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덜 특별하고, 조금 더 평범한 얼굴로.

미루지 않았다.

나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손이 보이는 촬영이라서 처음으로 네일도 받아봤는데

내 스타일은 영 아니었다.. 가격도 비싸고 일상생활하는데 불편했다


'머리는 어떻게 할까. 풀까, 묶을까,

아니면 반쯤만 묶어둘까?

옷은 무엇을 입어야 할지, 배경은 역시 하얀 게 좋겠지?'


혼자서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되뇌다가,

결국 다시 작가님께 요청을 건넸고

그렇게 촬영은 시작되었다.

카메라 앞에 서자, 몸은 생각보다 더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서 한순간 허공을 헤매다가,

작가님의 "괜찮아요, 그대로 계세요"라는 말에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셔터 소리가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나는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꾸미지 않은 표정 하나가 조용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리 연습해 둔 포즈를 취했다.

아마 이번의 나는, 지난번보다 조금 더 나에 가까운 얼굴이었을 것이다.

처음 몇 장의 사진 속 나는 여전히 어딘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어깨는 올라가 있었고, 입꼬리는 어색하게 굳어있었다.

나는 여전히 보이는 나를 의식하고 있었고,

어떻게 보일 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몇 번의 셔터가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는 나를 판단하는 사람도,

나를 밀어내는 시선도 없다는 걸.

그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조용한 나의 시선만이 존재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힘을 빼보았다.

억지로 만들던 표정을 내려놓고,

굳이 웃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저 숨 쉬는 얼굴로 있었다.

그 순간 찍힌 사진 속의 나는 어쩌면 가장 평범했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나.

그걸 확인하는 시간 같았다.

완전히 편해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를 조금 덜 숨기고 있는 느낌이었다.

촬영을 끝나고 스튜디오를 나가려고 하는데

셀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맘껏 찍고 가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공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누군가의 시선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로지 나만을 향한 카메라 앞에 서자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셔터를 누르는 것도, 멈추는 것도 모두 내 선택이었다.

처음엔 어떻게 포즈를 취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서있기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온갖 예쁜 척이라고는 다했다

그 사진 속에는 이상하게도, 엄청 해맑고 행복한 내가 담겨있었다.

아, 이게 내가 바라던 얼굴이구나 싶었다.

며칠 뒤, 사진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물이 났다. 분명 나인데, 너무 낯설 만큼 예뻐 보였다.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도, 참 대견했다

사진이라는 건 참 묘해서,

어쩔 땐 거짓말처럼 나를 속이면서도

또 어떤 순간에는 가장 솔직한 얼굴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