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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Nov 20. 2021

러시아의 두 얼굴

 아나스타샤, KGB, 시베리아, 보드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뭔가 비밀스럽고 음침하면서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그 역사와 문화, 예술이 주는 느낌 때문에 항상 러시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결국 러시아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길 동안 지하철을 탔다. 러시아는 지하철 플랫폼이 유난히 깊다. 한참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그리고 열차가 도착했는데 창문도 없는 시꺼멓고 두꺼운 벽 같은 문이 턱 열린다. 지하철이 아니라 어디 갇히는 듯한 느낌이다. 지하철을 탔는데 일제히 낯선 동양인인 우리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그 크고 깜빡이지도 않는 눈으로 다들 우리를 쳐다본다. 더 이상 피할 곳 없는 지하철 안에서 시선을 받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이 압도당하는 느낌을 도시 전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모스크바의 건물들은 공산주의 특유의 건축양식으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바랜듯한 회색빛을 띤다. 건물 앞에 서있으면 이 거대한 콘크리트가 주는 중압감으로 깔려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다. 건물 못지않게 러시아 사람들도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현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곳은 길 한 번 물어봐도 그냥 쌩하고 지나간다.

압도적인 규모의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

 


 그나마 붉은 광장 쪽으로 오니 생기가 돈다. 알록달록한 양파 모양 지붕으로 유명한 성 바실리 성당은 화려하고 이국적이다. 광장의 또 다른 편에는 벽돌빛이 눈에 띄는 국립 역사박물관과 내부가 특히 아름다운 굼 백화점이 있다. 백화점 조차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낮에는 그 다채로운 색감이 주는 화려함을 느낄 수 있고 밤에 와도 조명이 공간을 가득 채워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붉은광장의 성 바실리 성당과 국립역사박물관

 


  볼쇼이 대극장이 오프시즌이라 대극장 옆의 RAMT에서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 관람했다. 호두까기 인형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깜짝 놀란 건 그 꼬마 아이들조차도 턱시도에 드레스를 차려입고 왔다는 것이고, 더 놀라운 것은 누구 하나 공연장에서 뛰거나 소리치지 않고 정말 점잖게 공연을 관람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문화를 접해서 익숙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래서 러시아가 문화 강국인가 보다.




 내가 생각했던 러시아의 이미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모스크바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면 도착한다. 거리에 발을 내딛자마자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회색빛이 말끔히 빠지고 활기차다. 거리 곳곳에 흐르는 강물로 여유로움이 느껴지고 건물들은 전부 화려한 귀족 저택 같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해 있어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도시 전체가 아름다워서 그런지 특별한 목적지 없이 번화가인 넵스키대로를 따라 걷다 중간중간 골목으로 빠지기도 하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민트와 화이트가 조화된 파스텔톤의 외관으로 동화 속에 나오는 궁전 같이 예뻤다. 내부 역시 화려하고 규모가 엄청나다.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어 지원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 편하게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설명을 듣다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이 큰 미술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근교인 페테르고프의 여름궁전은 특이하게도 배를 타고 갈 수 있다. 해안가에 접해있어서 선착장에 내리면 바로 궁전이다. 수많은 분수대에 둘러싸인 황금색의 화려한 궁전이 압권이다. 궁전 자체도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궁전을 둘러싼 잘 가꿔진 숲을 걸으며 상쾌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페테르고프 여름궁전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두 도시가 아니라 두 나라를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러시아만의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모스크바였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여행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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