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런 나라도 가봤어?”
“안 가본 데가 어디니?”
어느 순간부터 이런 말들을 듣게 되었다. 나도 문득 내가 어디를 갔었나 궁금해져서 기억을 짜내며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방문한 곳을 세어보니 총 54개국, 이 중 절반 가까이는 재방문한 곳이다.
내 생에 첫 해외여행은 중학생 때 가족과 함께 간 서유럽 여행이었다. 여권에 첫 입국 도장이 찍힌 곳이 런던. 특별한 이유는 생각 나지 않으나 어린 나이에도 파리, 로마를 제치고 런던이 그렇게 좋았다. 커서 런던에 다시 가겠다고 마음먹었고, 결국 대학생 시절 어학연수로 다시 런던을 오게 되었다. 1년 가까이 머물면서도 런던에 대한 인상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런던을 떠나기 싫어 눈물이 났다. 타지에서의 좋았던 기억들 때문인지 런던뿐만 아니라 이 곳 저 곳 열심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 나니 특히 먼 나라 여행이 쉽지 않았다.
“여행 많이도 다녔네. 휴가도 잘 쓰고, 회사가 자유로운 분위기인가 봐.”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다. 나의 회사는 연차 소진은 커녕 하루 쉬는 것도 곱지 않게 보았다. 오히려 연차를 다 못 쓰고 8일 남짓이나 남겼던 해에도 휴가 많이 쓴다고 한 마디 들었다. 그렇게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고도 떠났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업무 방해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먼데까지 갔니? 휴가가 짧아서 못 가겠던데.”
역시 많이 듣는 소리이다. 평일 5일 연차에 주말껴서 가더라도 왕복 이동시간에 벌써 이틀은 빠진다. 특히 유럽같이 지척에 여러나라가 모여있으면 그 많은 선택지 중 너무나도 한정적인 결정을 해야해서 아쉬움이 더 크다. 하지만 이것 저것 따지다 보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평생 못 떠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럽 정도의 장거리 국가 기준, 이동시간 제외하고 현지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최소 5일만 되면 떠난다. 비행기 티켓 값 대비 비경제적일 수는 있으나 나 자신의 리프레쉬를 위해서라면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휴가 한 번에 500만원은 넘게 들지 않았니?”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로 7박 여행을 떠났을 때 들었던 소리다. 결론적으로 총 여행경비는 백만 원 대였다. 예약을 늦게 해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매하지도 못했다. 생소한 나라여서 여행경비가 많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나본데 사실 이 곳은 물가도 싸고 맘만 먹었으면 항공료와 식비 등을 더 아껴서 더 적게 들 수도 있었다. 사실 경비는 맘 먹기 나름이다. 정보 검색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수록, 숙소와 교통편 등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수록 예산은 줄일 수 있다.
이런 저런 고민들을 뒤로 하고 떠난 여행은 많은 힘이 되었다. 떠나기 전부터 이미 하루 하루가 기다려지는 활력을 주었다. 먼 타국에 혼자 남겨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를 주었다.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열심히 걸어 다니며 캐리어를 번쩍번쩍 들기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헬스장을 찾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 관심사가 늘면서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늘어났다. 해외정보를 찾아보다 알게 된 해외아동 후원 봉사단체에서 영어번역 봉사를 하게 되었다. 유재석이 진행하던 여행자 특집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방청 기회도 얻었다. 정보 서칭 능력도 늘어서 맛집에 관해서는 주변인들이 나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냥 지나쳤을 영화나 책들도 제목에 내가 다녀온 도시들의 이름만 포함되면 호기심이 생겨 찾아보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는 내 발로 한 여행이라도 시공간적 한계가 있고 모호한 느낌일 수 있다, 여기에 내가 보고 듣고 읽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이 쌓여서 내 여행경험이 완성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쓴 여행기를 읽으면서 정보도 얻고 잊어버릴 수도 있었던 추억도 되새겨본다. 누군가에게도 나의 글이 그들의 여행경험을 완성시켜 나가는데 작은 요소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