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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May 30. 2020

호의와 호객행위의 사이에서

 여행 중 겪게 되는 언짢은 감정의 대부분 호객행위에서 비롯된다.

 나의 첫 아프리카 여행지는 모로코였다. 영국 어학연수에서 만난 일본인 클래스메이트 언니와 동행했다. 하필 일본인과 다니는데 현지인들이 우리만 보면 “곤니찌와”라고 하니 자존심이 살짝 상했던 기억도 난다.

 이 곳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쫓아다니며 가이드비를 요구하는 호객행위가 많았다. 문제는 진짜 유명하거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기는 우리 동네 목욕탕” “여기는 동네 사람들이 사는 집” 정도의 설명이 다였던 것이다.


 메크네스 근교에 위치한 고대 로마 유적지, 볼루빌리스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역시나 초라한 행색의 아저씨가 쫓아다니며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필요 없다고 들은 체 만 체 했는데도 우리 곁을 맴돌며 설명을 이어갔다. 유적지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이 아저씨가 또 돈을 요구하겠지? 어떻게 떼어내지?’ 속으로 생각하며 단호하게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돈을 요구할 줄 알았던 아저씨는 이상하게도 돈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그냥 잘 가라고 했다. 나는 웬일이래? 하면서 그냥 떠나는데 동행한 언니가 돌아가더니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왔다. 알고 보니 악수하면서 슬쩍 돈을 건네주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 자신이 너무 옹졸하게 느껴졌다. 이 아저씨의 진짜 의도가 뭐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마지막 순간, 억지로 돈을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지면서 가슴이 아팠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근교에는 역사 교과서 첫 페이지에 등장하던 선사시대 암각화가 보존되어 있는 고부스탄이란 곳이 있다.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아 당일치기 투어를 신청했는데 우리 가이드가 좀 이상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가이드들은 뭔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설명을 해주는데 우리 가이드의 설명은 “이 건 소를 그린 거야. 이건 개야.” 다음 암각화로 이동해서도 “이건 버팔로, 저건 사람인데 남자야.” 정도의 수준이었다. 투어업체에게 속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시간이 되자 가이드가 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이미 가이드를 불신하던 탓에 본인 아는 식당으로 데려가 바가지를 씌우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우리는 점심을 싸왔으니 공원 같은 곳에 데려다 주면 알아서 먹겠다고 답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가이드가 어떤 행동을 할지 불안했다. 가이드는 본인도 식사를 할 겸 자기 집에 가자고 했고 한참을 달려 어떤 가정집에 도착했다.


 경계심을 갖고 문을 들어서는 순간 어머니와 할머니로 보이는 분들이 나오더니 마당 테이블에 자리를 마련해주셨다. 뒤 뜰에서 채소를 따고 닭장에서 달걀을 가지고 나 분주하게 움직이시더니 끊임없이 테이블로 음식을 가져다 주시는 것이었다. 이 지역 과일이니 맛보라며 손질해주시고 식량 창고에서 아버지가 아낀다는 홈메이드 보드카도 꺼내주시며 끊임없이 챙겨주셨다. 떠날 때까지도 초콜렛을 한 움큼 집어서 가져가라고 내 손에 쥐어 주시는데 감동해서 눈물 날 뻔했다.


 가이드에게 틱틱댔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제서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원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방학이라 아르바이트로 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전문성은 떨어졌던 듯 하다. 유창한 해설은 들을 수 없었지만 처음 보는 타지 사람들에게도 순수한 호의를 베풀어주신 어머니와 할머니 덕분에 따뜻한 추억이 생겼다.


 호의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물론 나쁜 마음을 먹고 여행객에게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를 경계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때 내가 그들에게 세웠던 날카로운 날은 미안함과 후회로 나를 찔렀다. 낯선 타지 사람에게도 호의를 베풀어준 분들을 생각하면 적어도 처음부터 부정적인 편견을 갖지는 말아야겠다. 둥글 둥글한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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