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하찮은 복수 시리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아라."
"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갈 때 항상 부모님께 들었던 인사말이다. 암암리에 친구들과는 다툼 없이 사이좋게 지내야지. 어른들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나한테 그런 생각이 내재되어 자랐겠지. 모가 나지 않은 성격이 좋은 거니까.
모 나지 않은 성격. 둥글둥글하게 주변과 잘 어울리고 어느 집단에 가도 화합이 잘되며 적당히 잘 맞추는 성격 탓에 살면서 싸움이나 다툼이 잦은 편은 아니었다. 잦은 편이 아니라 거의 없다시피 하다.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초등 저학년 때 잠깐 남자애들하고 싸운 기억 외엔 크게 다툰 일이 손에 꼽는다.
아이가 저학년 때 애들끼리 학교에서 장난친 것으로 죽자 사자 달려드는 쌈닭한테도 당신은 모가 그렇게 고상하냐는 말을 들었으니까. 그래 적어도 난 너보다는 고상하지. 그렇고 말고요.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지만 실은 혹여나 내 아이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어 조심스러워 싸우자고 덤벼드는 사람에게 조차도 쉽게 화내기가 힘들다. 욕해가며 머리채 휘어잡고 니깡내깡 이게 안된다.
나도 미친년처럼 눈 돌아서 한번 해보고 싶은데 마음에서는 천불이 나지만 남한테 이렇게 해 본 적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까 욕을 해줬어야 한다며 절치부심, 울화통이 터져 밤에 잘 때 이불킥 하지 말고 그 쌈닭처럼 나도 내질르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다시 태어나야겠지 싶다. 그러며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넌 참 좋겠다. 니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아서.
진심으로 좋겠다. 나는 그게 하고 싶어도 안되니까. 돌려 까기 하는 게 아니라 진심 부럽다. 얼굴이나 외모야 성형으로 바꿀 수 있지만 성격은 어떻게 바꾸고 싶어도 잘 안된다. 타인들과 나이스하게 잘 지내는 것은 쉽지만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못 견디겠다.
어렴풋 기억에 의하면 중학생시절에 누군가와 적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평온한 일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깨부수고 싶고 누군가와 노려보는 사이가 되어보고 싶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받는 미움이 받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우리 반에 나를 싫어하거나 내가 싫어하는 적대감을 갖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전학 와서 적응이 필요하거나 무리에서 소외된 친구들에게도 친절했으니까.
마음속으로는 호인 연기 그만하고 싸울 대상을 찾아보라고 하고 겉으로는 사람들과 매우 잘 지내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미움받을 용기도 없으면서 미움을 받고 싶어 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내가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며 사춘기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미움받으며 격렬하게 살아도 보고 싶지만 정작 미움받는 게 두려워 미리 노력하며 지냈던 것이다.
이런 나랑 똑 닮은 내 친구와 같이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금요일마다 한주를 마무리하며 간식 타임을 갖는데 그날도 아이 둘 인 선생님이 피자를 드시고 싶어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독 피자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좀 더 가볍게 먹고 싶었지만 자기주장 못 펴고 대세에 따랐다. 친구를 슬쩍 보니 먹는 둥 마는 둥 시원찮다. 퇴근하는 길에 왜 이리 조금 먹냐고 했더니 피자가 싫었단다. 야 너도? 나도. 미치겠다. 빵 터져서 우리 왜 이렇게 매번 간식하나 먹고 싶은 것 말도 못 하고 스몰마인드냐며 좀 대범해지자고 서로를 토닥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 보다 어릴 때는 너무 색깔이 강한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고 이기적으로 보였었다. 주변사람 배려 안 하고 자기주장만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주장 펴고 미움 좀 받아도 툭 털어버리는 대범함을 갖고 싶어 노력 중이다. 주변에 맞추기만 하며 참고 살다가는 내가 소진돼서 없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이야기도 하며 미움도 한 스푼 얻고 뻔뻔하지만 당당하게 살아봐야지. 내지르며 싸우는 것은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영역 같아서 안될 것 같다. 노선을 변경해서 웃으며 엿먹이는 연습 중이다. 일명 빙썅모드(빙그레썅년). 이건 적성에 맞을 것 같다. 순간적인 재치가 있고 순발력이 강하니 웃으며 엿 먹이는 것은 재밌어 보인다. 남편을 대상으로 연습 많이 해야지, 분명 재밌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