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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Aug 08. 2024

혹시 띠부띠부띠부실?

초등학생이면 어쩌지.

우리 아들 뱃살 1등 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포켓몬 빵이다. 코로나시절 움직임도 적은데 빵까지 먹어대서 배둘레햄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허리가 푸짐해졌다. 포켓몬빵이 배둘레햄 만들 정도로 기똥차게 맛있냐? 그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편의점 빵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들의 환심을 산 것은 그 안에 함께 들어있는 랜덤 띠부실이다. 띠부실은 띠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라는 의미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띠부실은 포켓몬 만화에서 나오는 온갖 종류의 포켓몬 캐릭터들이 기본형에서부터 진화형까지 스티커 형태로 제작되어 있고 왼쪽 상단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포켓몬 띠부실을 번호대로 모으는 것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었다. 자주 나오지 않는 캐릭터인 뮤와 뮤츠가 나오는 날이면 그날은 그 집 잔칫날이다. 한 때 당근에서는 뮤와 뮤츠 띠부실이 5만 원 상당으로 거래되어 있으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뮤나 뮤츠 띠부실을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간직했고 때때로 학교에 갖고 와 자랑하면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잠깐 유행하다 말겠지 싶었던 포켓몬 빵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삼립에서는 일부러 생산 개수를 제한한 것인지 빵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급기야 인터넷상에서 누리꾼들 사이에 어떤 편의점의 탑차가 몇 시에 하차하는지 시간대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편의점에서 줄을 서기도 했고 포켓몬빵이 부족하게 입고되는 날이면 그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기도 했다.


띠부실의 인기가 치솟자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가담하여 너도나도 띠부실 모으기 시작했고 인기가 덜 한 편의점에서 포켓몬빵을 사재기한 후 웃돈을 받고 파는 중간 판매자들이 생기기도 했다. 원하는 사람에게 아무에게나 팔 던 포켓몬 빵은 귀한 대접을 받아 1인 1개로 제한하는 곳이 생겼고 아이가 아닌 어른이 사는 경우에는 편의점 주인들이 팔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누가 봐도 본인이 먹을 것 같은 우리 아들은 편의점 아주머니의 총애를 받아서 한 개 숨겨두셨다가 아이가 가면 꺼내주시곤 하셨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지만 저희아들 매번 예뻐해주시는 세븐일레븐 점주님 너무 감사해요.) 포빵(포켓몬빵의 줄임말)이 권력인 시기에 편의점 주인의 힘은 군주 느낌 이상 이었을 것이다. 한 번은 아이와 함께 편의점에 갔는데 어찌나 예의 바르게 인사하던지 내 아들이 맞나 싶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러며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눈도장을 찍고 일단 편의점을 한 바퀴 돌며 빵 코너를 확인한다. 왜 바로 물어보지 않냐고 했더니 그러면 예의에 어긋나서 안된다며 본인만의 방법을 설명해 줬다. 빵 코너에 당연히 없는 포켓몬빵을 아쉬워하며 카운터로 간다. 이때 다른 손님이 계산을 하고 있으면 눈치껏 기다린다고 했다. 대단하다. 그 열정... 손님이 없을 때 재빨리 카운터로 가서 "혹시 사장님 포켓몬빵 있을까요?" 이렇게 공손한 태도와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아래서랍에서 조심스레 포빵을 꺼내어 아이에게 건네면 그걸 소중한 금은보화처럼 두 손으로 받았다. 와... 저 빵이 뭐길래 우리 애를 저렇게 간절하게 변화시키나 싶었다. 나중에 아이돌 덕질할 때 저런 눈빛으로 간절하게 할 테지?


포빵을 1년 넘게 먹으며 띠부실을 모았더니 중복되는 것들이 많이 생겼다. 게다가 그때 즈음 남편이 포켓몬의 본고장 일본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일본 리미티드 에디션 포켓몬빵을 구해왔었다. 그 안에 있는 띠부실은 무려 야광 핼러윈 띠부실이다. 한국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것들이라 띠부실 콜렉터들에게는 인기최고이었을 것이다.


아이친구 엄마들이 집에 남아도는 띠부실을 팔거나 혹은 교환하려고 당근을 이용하는 것을 봤다. 우리 집에 남아도는 띠부실을 팔까 생각해 봤지만 혹시나 초등학생이 나올까 봐 주저했다. 어른이 초등학생에게 띠부실을 파는 게 너무 창피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집에는 띠부실이 쌓여갔다. 우리 집 아이는 빵만 관심 있고 띠부실은 팔아도 된다고 했다. 옆집 엄마가 그냥 우편함에 넣어두면 찾아간다고 꿀팁을 전수해 줘서 용기를 내봤다.


온갖 잡동사니는 다 팔아봤지만 띠부실 파는 것은 왠지 창피했는데 비대면이면 문제가 해결된다. 한 참 몸값이 높을 때 팔았으면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주춤대는 사이에 띠부실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일본에서 건너온 한정판 핼러윈 띠부실을 팔기로 했다. 글을 올리자 바로 반응이 왔다. 옆집 엄마가 조언해 준 데로 비대면으로 우편함에 넣겠다고 했다. 멀리서 온다며 나보고 역으로 나와줄 수 없냐고 부탁해서 정말 너무 창피하고 싫은데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가는 동안 혹시 초등학생이면 어쩌지? 돈을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별에 별 걱정을 다하며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띠부실 거래를 위해 역으로 나왔다.


당최 당근할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 보통은 당근 하려는 사람들의 특징은 혼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당근 할 물건을 갖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도통 모르겠다.

"혹시 어디 계시나요?"

"저 벤치에 앉아있어요. 파란 가방요."


파란 가방;;; 초등학생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성인 여성분이었다. 잔돈도 센스 있게 챙겨 오셔서 바로 띠부실 확인하고 돈 받고 쿨거래를 마무리했다.




스티커 팔아서 8천 원이나 돈을 버니 용기가 생겼다. 집에 있는 띠부실 다 팔자! 어차피 우리 아들은 빵만 먹고 스티커는 몇 번 만지작 거리다가 만다. 띠부실 거래내역을 찾아보니 사람들이 미개봉을 더 선호했다. 그걸 인지 한 후로는 아들이 빵을 먹고 나면 스티커를 뜯지 않고 보관했다. 띠부실 뒷면에 후레시를 켜면 빛이 통과되며 캐릭터의 실루엣과 넘버가 얼추 보인다. 그걸 확인해서 포스트잇에 붙여 보관하기 시작했다. 단돈 500원에 올리니 정말 잘 팔렸다. 창피할 것도 없고 그냥 우편함에 두면 알아서 거기에 500원을 두고 띠부실을 가져갔다. 나중에는 500짜리가 우편함에 굴러 다닌다고 구매자가 알려줘서 동전을 수거해 온 적도 있다. 한국사람들 정직하고 착하다.



이게 뭐라고 집에서 굴러다니는 스티커를 500원이나 받고 파니까 너무 신난다. 정작 돈도 수거 안 해오면서 계속 팔만한 스티커를 갈무리하며 우편함을 통해서 팔았다. 판매 할 띠부실을 우편함에 넣을때 나름 스티커도 붙이고 덤도 주면 사람들이 너무나 행복해하며 고맙다고 했다. 난 어차피 쓸모없는 물건인데 저렇게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 전에 아이가 우리 집 우편함에서 500원을 주웠다며 들고 들어온 적이 있다. 띠부실을 팔고 아직 수거 전인 동전이 아직도 있었다. 아이에게 1500짜리 빵을 사서 먹고 스티커를 500원에 팔았으니 우리는 빵을 얼마에 구매한 셈이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또 수학시킨다고 내뺐다. 야 이게 수학이니? 500원 너 준다니까 1000원이라고 냉큼 말한다. 예의 바른 아들의 모습을 기대하려면 아마도 내가 편의점을 차려야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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