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볼로 각성한 나의 왼손
마흔 중반까지 나는 내가 오른손잡이라고 굳게 믿고 살았다. 이적의 노래 왼손잡이가 나왔을 때도 나랑은 상관없지만 멜로디는 좋다고 생각했고 생활의 모든 부분을 오른손에 의지하며 살았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왜냐하면 숟가락 잡는 손도 오른손이고 연필 쥐는 손도 오른손, 발표할 때도 오른손을 사용했으니까. 그런 내가 정말 우연한 기회에 나의 왼손의 능력을 알아봤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말이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공놀이는 빼놓을 수 없는 놀이 중에 하나다. 움직이는 물체에 열광하는 그들은 구르며 스스로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공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지사. 바닥에 튕기기도 하고 던질 수도 있으니 아이를 키우며 집에 항상 공이 여러 개 굴러다녔다. 어릴 땐 위험하지 않은 물렁한 쿠션공들로 공놀이를 했고 크면서 공의 사이즈가 점차 작아졌다. 고학년이 되며 친구들과 야구장에 가며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되며 집에 야구공이 생겼다. 야구공은 생각보다 작고 단단해서 기존의 피부공 농구공과는 다르게 한 손으로 잡아야 했다.
아빠와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하며 야구에 대한 관심이 무르익을 무렵이다. 캐치볼은 항상 아빠와 함께 하는 종목인데 아빠 퇴근 전에 아이가 캐치볼을 하고 싶어 했다. 난 안된다고 했고 차라리 배드민턴을 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뭐 하나에 꽂히면 물러서기 어려워하는 아들은 계속 공을 만지작 거리며 급기야 엄마 받으라며 갑자기 내쪽으로 던졌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야구공은 매우 단단하고 맞으면 최하가 멍이 들게 뻔하다. 갑자기 던지면 어떡하냐고 속으로 쌍욕을 할 세도 없이 나의 몸이 나를 지키기 위해 반응했다. 아이언 맨처럼 대박 멋지게 공을 잡았다. 바로 왼손이.
왼손으로 야구공을 정말 정확하게 착! 잡았다. 깨끗하게. 웬일이니. 아이와 내가 둘 다 놀랐다.
"엄마, 캐치볼 잘한다! 우와."
"우와, 후야 이것 봐 왼손이야."
"엄마 왼손잡이야?"
"아니. 이상하네. 왜? 왼손이 나갔지?"
느낌이 심상치 않다. 나에게 원래 있는 몰랐던 초능력을 각성한 기분이랄까? 다시 던져보라고 공을 던졌다. 이번에도 왼손으로 받는다. 나의 몸이 자동으로 왼손을 써서 나를 지키고 있다. 어라? 나 왼손 잘 쓰네? 일부러 오른손으로 받아봤다. 다시 왼손으로 받아보며 비교해 봤더니 왼손이 훨씬 더 편하게 공을 쥐며 손에 공이 착 달라붙었다. 캐치볼은 아이가 하자고 제안했는데 왼손능력을 각성한 어미가 신나서 계속 던져보라며 양손으로 실험을 해댔다. 아이가 엄마 양손 다 써서 부럽다며 자기 덕분에 왼손 능력 알았으니 캐치볼 하길 잘했지 않냐며 어깨를 들먹이며 으쓱해한다. 너란 녀석은 나에게 체험 삶의 현장처럼 다양한 삶의 맛을 보게 하는구나.
캐치볼 하며 마흔 넘어서 처음 나의 왼손의 힘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세월 왼손잡이였던 나의 시그널들의 퍼즐이 조각조각 맞춰진다. 왼손 약지에 맞춰서 꼈던 결혼반지가 살이 찌면서 맞지 않아서 보관만 하고 있었다. 맞는 손가락을 찾아서 여기저기 껴보는데 오른손 약지에는 쏙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한동안 오른손가락에 끼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보통 많이 사용하는 손의 손가락이 더 굵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는 왼손 약지가 오른손 약지보다 더 두꺼웠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생활 속에서 왼손을 많이 썼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반지 사이즈까지 떠올리니 캐치볼 할 때 왼손이 반사적으로 나간 이유와 맞아떨어진다. 그래 난 왼손잡이였어!
몸의 왼쪽은 우뇌가 관할한다고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좌뇌는 이성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우뇌는 직관, 창의, 아이디어 등 감성적인 영역을 담당한다고 한다. 아이디어뱅크에 창의력 톡톡으로 날리던 나는 우뇌형 인간이 맞는 것 같다. 모든 시그널들이 왼손잡이라고 알려줬는데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캐치볼 덕분에 몰랐던 왼손능력을 각성해서 아이언 맨의 왼손을 얻은 것처럼 뿌듯하다. 양손잡이여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