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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Aug 15. 2024

사춘기스타일 슈퍼배드 무대인사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지.

가을의 문턱 입추가 지나고 열대야로 밤까지 숨 막히는 더위는 가셨지만 아직도 한 낮은 덥다. 올여름 물놀이도 한번 못 가서 모처럼 아이와 함께 물놀이를 하려고 계획했다. 토요일 6시에 예정되어 있던 영어수업만 없으면 1박 2일로 친정에서 하루 자며 부모님 뵙고 다음날 근처 워터파크에서 물놀이까지 이어지는 환상적인 코스다. 내 마음을 간파했는지 영어선생님께서 금요일 아침에 전화가 왔다.


"혹시 토요일수업 금요일 오후 4시에 가능할까요?"

너무 좋다. 하지만 아이에게 물어봐야 한다.

"개학 전 마지막 주말이라 어디라도 갈까 했는데 그럼 저희도 좋죠. 그런데 후군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역시나 안된다고 펄펄 뛴다. 혹시나 숙제 완성 못해서 그렇다면 선생님이 어느 정도 감안해 준다고 괜찮다고 하니 그거랑은 상관없단다. 미래 따윈 없다. 당장 오늘 영어수업이 하기 싫다고 난리부르스다. 성급히 알았다고 계획에 없던 수업 변경은 없던 걸로 하자고 끝냈다. 님이 그렇게나 계획적인 사람인 줄 몰라봤어요.




동네 친구엄마에게서 카톡이 온다. 스케줄 괜찮으면 점심에 아이들 영화 보여주자고 한다. 우리 집 상전에게 물어봐야 한다. 계획에 없는 거니까 싫다고 해야 너는 일관성 있는 인간일 테지.


"친구엄마한테 연락 왔네? 갑. 자. 기. 영화 보러 가자고 슈퍼배드."

"봐야지. 나 보고 싶었던 건데 잘되었다."

"이보세요. 갑자기 계획에 없는 영어수업은 절대 불가라면서 계획에 없던 영화관 나들이는 됩니까?"

"엄마, 영어수업은 원래 토요일에 있던 건데 변경된 거고 영화는 없던 거니까 가능하지. 둘이 달라."

"슈퍼 J처럼 정해진 일과에 맞춰서 사는 것 아니었어? 뭐가 달라?"

"엄마, 영어수업은 계속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했던 거니까 내가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인데 갑자기 당기면 내가 좋다고 해? 게다가 수업 원래도 싫어하는 건데 시간 당기면 더 싫지. 영화는 친구들이랑 노는 건데 언제 해도 좋지. 당연한 거지. 엄마 생각 좀 해봐."

"그래 생각해 볼게. 싫어하는 그 수업을 토요일에서 금요일로 옮기면 토, 일 외갓집도 갈 수 있고 워터파크 가서 하루 자고 놀 수 있잖아. 그것도 생각해 봐."

"아 싫어. 그냥 오늘 애들이랑 영화 보고 물놀이는 일요일 당일에 다녀올래."


니 똥 굵다. 너 잘났다. 혼자 컸지? 아주 그냥. 약 올라 죽겠다.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따라준다면 친정도 가고 물놀이도 하고 얼마나 좋아. 하지만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어차피 물놀이도 너를 위한 것이고 영화 보는 것도 그렇다. 행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것인데 경험을 위해 불행해진다면 안 하는 게 낫다.


엄마한테는 한마디 한마디마다 잡아먹으려고 도끼눈 하더니만 여자친구까지 있어서 그런가 친구들 만나니까 초젠틀하게 군다. 님 정말 사회생활 고랩이네요. 어찌나 일관성이 없는지 아들이 하나가 아니라 몇 명 되는 느낌이다. 상영시간 15분 전에 미리 입장한 영화관은 우리 그룹 외엔 아무도 없었다. 신이 난 아이들은 무대인사 놀이를 하자며 멋들어지게 배우들처럼 영화관 대형 스크린 앞에서 포즈를 잡으며 인터뷰 놀이를 했다.

"여러분 슈퍼배드 출연진 이시죠? 각각의 맡은 캐릭터가 뭐였는지 짧게 소감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슈퍼잠만보예요.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요."

"잠만보씨 성장기라 많이 졸리신가 봐요. 배역 찰떡입니다. 다음 배우분 배역 소개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슈퍼까칠이예요. 요즘 짜증만 나서 엄마가 까칠이라고 해서요."

"슈퍼 까칠님은 인사이드아웃 2에 더블 캐스팅되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역시나 배역 최고십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슈퍼더티예요. 공부할래? 씻을래? 하면 요즘 공부한다니까요. 하하하."

"오오 우리 집 슈퍼배드님이랑 비슷하네요. 씻기가 왜 싫은지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듯하군요. 배우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놀다 보니 다른 한 팀이 들어왔다. 인터뷰놀이는 강제 종료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좌석에 착석했다.


몸에 열이 올랐다 내렸다. 갱년기라서 그런 건지 사춘기 아드님의 불손한 태도에 내가 반응하는 건지 모르겠다. 절기는 입추를 지나서 가을로 향하는데 여전히 나는 한여름처럼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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