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동강 래프팅에서 만난 선순환의 힘
"내일 12시에 동강래프팅 예약했으니 일찍 일어나야 돼."
"영월? 오호~ 그럼 8시에는 출발해야겠네?"
"너네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가능하겠어?"
휴일이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모자의 패턴을 매우 잘 알고 있는 남편이 예약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한다. 이봐요. 아저씨. 우린 노는 날에는 눈이 번쩍 떠진다고요!
그렇다. 여행 가는 당일 새벽 6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일어나기 싫어서 뭉그적거리다 겨우 눈뜬것도 아니고 그냥 번쩍 떠졌다. 대체 왜 이럴까? 소풍 가기 전날이나 뭔가 신나는 일들이 기다리는 날 아침에는 가볍게 눈이 번쩍 떠진다. 알람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몸이 재깍 반응한다. 매일 이렇게 살면 좋겠다. 뭔가 신나고 재밌고 기대되는 날들이 매일매일 이어지고 설렘에 가득 차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콧노래를 부르며 새벽을 맞이하며 몸도 마음도 붕붕 떠서 맞이할 하루를 희망차게 누리고 싶다. 낯선 곳에서 살면 이런 감정으로 살 수 있을까? 예상가능한 반복되는 하루하루들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도 좋지만 가끔 그곳을 벗어나서 느끼는 해방감은 선물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여행을 끈을 수가 없다.
연휴의 시작날 강원도 가는 길은 예상처럼 매우 막혔다. 다행히 일찍 출발해서 제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미리 삼각김밥도 사 먹으며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미리 래시가드로 갈아입고 갖고 온 소지품은 데스크에 맡기고 대기석에 앉아 일행을 기다렸다. 오늘 우리와 2시간여 동안 동강을 여행하게 될 멤버는 총 12명이었다. 우리 가족 3명과 총각 4명 할머니포함 가족 5명으로 구성되었다. 상류에서 하류로 보트를 타고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봉고를 타고 상류로 이동했다. 봉고 안에서 남편과 나는 래프팅 한지 20년도 더 된 것 같다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나는 50년은 된 것 같다고 하셔서 봉고 안이 웃음꽃이 피었다. 노를 저을 실질적인 사람이 누가 있을까 둘러보니 우리 가족에서는 남편 한 명이었다. 할머니가족은 3대 모녀가 모두 몸무게가 나의 반밖에 나가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믿을 구석은 저기 총각 4명이었다. 집합시간에 가까스로 도착한 총각 멤버 4명이 봉고 안에서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어왔다.
"저희가 조금 늦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어휴 아니에요. 저희가 조금 일찍 와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나저나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보시다시피 하드캐리 하셔야 할 것 같아요. 호호."
"하하하 저도 어릴 때 부모님과 10년 전에 래프팅 했었어요. 그때 같이 탔던 형들의 도움을 받아서 오늘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0점 만점에 1000점이다. 어쩜 이렇게 건실하게 잘 컸을까? 얼굴도 뽀야니 이쁜 총각들이 말은 더 예쁘게 한다.
"와!!! 선순환이네요. 우리 아들 커서 저 형님의 아들 래프팅 할 때 도와주자."
총각들끼리 와~~~ 선순환 하하하. 봉고 안은 한차례 더 웃음바다가 되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설레는 마음들이 모여서인지 작은 말에도 행복이 솟는다. 아무래도 멤버를 잘 만난 것 같은 예감이 든다. 15분 정도 봉고로 상류로 이동 후 구명조끼를 입고 헬맷을 착용하고 보트에 올랐다. 요 근래 비가 내리지 않아 수량이 부족해 유속이 느려 오늘 꽤나 많이 오래 노를 저어야 할 것이라는 래프팅강사님의 말씀이 있었다. 난생처음 래프팅에 도전하는 아드님은 놀이동산에서 탔던 아마존익스프레스와 얼마나 다르냐며 질문공세를 퍼부우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공부 빼면 뭐든 즐거운 우리 아들. 집 밖에서 들떠있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다시 만나니 어린 시절이 떠올라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팀 최고령자 할머니께서 10여분 정도 노를 젓다가 아무래도 무리가 되셨는지 보트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빠지셨다. 우리는 모두 할머니 최고로 모시겠다고 이야기하며 일심동체로 노를 저었다. 할머니 딸들은 할머니 편하게 가시니 뱃삯으로 내릴 때 아이스크림 쏘라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중간중간 다른 보트들과 만나면 물장구 싸움을 하며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을 버텼다. 중간 지점에 보트를 세우고 물속에 빠져서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다. 가족끼리 기념촬영도 하며 뜨거운 햇살에 익었던 몸을 물속에서 식혔더니 다시 노를 저을 힘이 났다.
래프팅 하며 계속해서 만나는 영월의 아름다운 산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아름다웠다. 뱃사공만 볼 수 있는 강과 절벽이 만나는 풍경과 암벽에 어렵사리 뿌리내린 소나무의 절경이 잊히지 않는다.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형의 가운데 심장 부분에 위치해 있다는 암벽에 뿌리내린 소나무는 그 가치가 10억이 넘는다고 한다. 같이 오신 할머니께서는 가을에 울긋불긋 낙엽 질 때도 궁금하다 하셨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코스였다면 후반부에는 유속이 제법 빨라 급류에서 하마터면 몇몇이 보트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때부터 팀의 막내 우리 아드님이 혹시 떨어질까 봐 보트의 앞머리에 선장처럼 앉아서 진행했다. 원래는 래프팅 강사님께서 보트제일 뒤에서 큰소리로 구령을 외치면 우리는 그 구령에 맞춰 노를 저었다. 선장님을 모신 후에는 래프팅 강사님께서 친히 선장님께 전권을 넘기셨다. 선장님께서 선창을 하시고 우리가 후창을 하며 진행했다. 꼬마가 구령을 외치며
"하나! 둘!" 선장님 선창
"셋! 넷!" 팀원들 후창
배고파요 선장님!!! 을 외쳤더니 선장님께서 고기 먹자로 할게요.
"고기!" 선장님 선창
"먹자!" 팀원들 후창
선장님 콜라 마시고 싶어요.
"콜라!" 선장님 선창
"먹자!" 팀원들 후창
그 후에도 맥주 마시고 싶으니 맥주 먹자, 소주 먹자, 커피 먹자 계속 먹자 시리즈로 노를 젓다 보니 래프팅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2시간 넘게 즐겁게 래프팅을 즐긴 팀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으니 아뿔싸! 허벅지와 팔이 빨갛게 익어있었다. 살이 시뻘겋게 익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래프팅을 즐겼나 보다. 찬물로 화기를 내리고 쿨링젤로 응급처치를 하니 살 것 같았다.
모두 같은 목적지를 향해 힘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 배려하며 뜨겁게 즐긴 래프팅을 하고 나서 맛있는 삼겹살을 먹으니 평소보다 두 배는 맛있게 느껴졌다. 우리 선장님은 시장하셨는지 고기리필을 외치며 이 집 맛집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역시 밥 중에 제일은 남이 해주는 밥이 맞다. 엄마 아빠 아들 모두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고양이 미미가 있는 카페에서 아직 남아있는 더위를 식히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이런 날이 흔하지 않아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도심에서 벗어나서 만난 강원도의 뜨겁지만 시원한 바람결이 고마웠고 안전하고 즐겁게 두둥실 배를 태워준 동강에게 감사했다. 선순환의 힘을 믿기에 언젠가 우리의 친절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본다. 기꺼이 친절을 베풀어 준 팀원들에게 오늘 하루가 우리가 그러했든 즐거운 하루였기를 바라본다.
<래프팅 같이한 형들과 함께>
<두 전씨들이 나를 물에 빠뜨리고 좋아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