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스런 후후작가 Aug 28. 2024

퇴직발표

노비해방

  투병생활이 길어져 학교를 몇 년 동안 휴직한 끝에 퇴직 처리가 되었다. 이미 휴직 중이라서 나의 생활은 퇴직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똑같다. 계속 학교생활을 이어온 게 아니라서 교직을 떠나며 상실감이 크게 찾아올지 몰랐다. 막상 퇴직이 결정되니 어린아이가 선물 받았던 애착인형을 빼앗긴 듯 서운하고 아쉽다. 소속감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아쉬움과 홀가분함 중에 홀가분함을 선택하면 좋으련만 나의 마음이 현재는 아쉬움으로 기울어있다. 아쉽다는 것은 아직 미련이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이제 겨우 마흔 중반이다. 이른 퇴직 후에 나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나의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고 그걸 이뤘고 매우 잘 맞았다.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활동적인 성향이라 교직생활이 즐거웠다. 더 정확히 순수한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좋았고 그들의 성장과정을 바라보며 도와주는 일이 보람 있었다. 초임인데도 불구하고 수업실기대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하고 발명반, 영재반을 맡으며 다양하게 지도하는 것을 즐겼다. 소질과 적성에 잘 맞아 이런 일들이 딱히 힘들지도 않았다. 즐거웠으니까. 잘할 수 있는 일을 못하게 되어 못내 아쉬운 것 같다. 나의 상황과 마음을 아는 지인들은 퇴직 소식을 들으며 응원과 동시에 위로를 해줬고 동심원에서 먼 관계일수록 퇴직금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좋기도 하다. 빚 갚고 좀 남는 돈은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작은 선물을 할 예정이다.


퇴직소식을 들은 친구가 깜짝 이벤트를 해줬다. 정말 생각하지도 못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짠! 채니 명예퇴직 축하해! 친구야. 꽃길만 걷자."

"어머, 이거 모야 내 선물이야? 우왱 왜 감동 주고 그래"

"너의 퇴직 소식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다 울컥하더라고 한 직장에 20년 이상 소속되었다가 퇴직하면 어떨까 생각하니까."

나의 헛헛한 마음을 친구가 진심으로 위로해주며 울먹이니 눈물이 주룩주룩 나왔다. 

"근데, 나 칠순이야? 칠순 할머니들 이런 떡케이크 하지 않늬?"

"다시 내놔."

"농담이야. 너무너무 고마워, 우리 신랑 이탈리아에서 재산 탕진 중인데 진짜 너밖에 없다."

"인생 2막 준비하자고."

"왠지 노비 해방된 기분 뭐냐. 공노비 탈출하고 뭔가 신분의 자유를 얻은 느낌이네." 


한 길만 바라보며 왔던 삶에서 이제는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이제 다양한 길로 갈 수 있다. 원한다면 아이들을 만나러 잠시동안 학교에 출근해도 된다. 아쉬우면 채우면 된다. 그동안 공무원이라 매여있던 삶의 자유도 누려보고 원하면 알바도 뛸 수 있다. 친구의 이벤트 덕에 퇴직이 아쉬움에서 후련함으로 체인지된 기분이다. 




또다시 내가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지난 20년보다 앞으로 20년이 분명 더 재밌을꺼야! 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