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에 대한 사랑표현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다짐
그동안 왜 안 썼던 거야?
글빨 장난 없네
언제 연재 올라와?
빨리 연재해 줘~~!!
눈은 이제 괜찮은가요?
가독성 쩐다. 웬만한 소설보다 술술 읽혀
글이 맛있어. 초당 옥수수 샀다. 킥킥
내가 너랑 후군을 알아서 그런가 더 웃겨.
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너와 글 속에서의 네가 달라서 놀라워.
초긍정 채니 항상 응원해
꼭 출판하자. 파이팅
갱년기가 오며 기억력이 5초를 못 가서 그냥 흘러가는 일상들이 아쉬워 기록을 하자고 마음먹었고 쉽게 소비되는 듯한 다른 플랫폼보다 마음의 무게가 귀하게 대접받는 브런치를 선택해 작가에 도전해 보았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한 결과 한 번에 덜컥 합격해 버렸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합격자 메일을 받고 기뻐서 캡처까지 해놨다. 그렇게 생애 처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내가 이토록 타이틀을 좋아하는 속물이었나?
맞다. 속물.
너무 좋다. 작가.
뭔가 내가 멋진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된 기분이다.
주변의 애정 어린 응원도 좋고 글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을 익명의 구독자들도 소중하다.
나의 첫 팬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이토록 가슴이 뛰는구나.
글을 쓰기 전과 내가 많이 달라져있었다. 좋아하는 일은 사람을 생기 있게 하고 삶의 의욕으로 넘쳐 행복감을 선사한다. 난 나에게 매일 글을 쓰며 생기를 선물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니 둥둥 떠다니는 모먼트들이 정렬되어 머릿속이 한결 가지런해졌다. 그냥 흘러갔을 미소 지었던 순간들과 힘들어 눈물이 났던 일들 서운했던 감정들 고마운 마음들과 놀란 마음들에게 생명을 선사해 더 이상 기억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또, 확실한 이유를 모르지만 문득 느껴지는 찜찜하고 불편한 감정에 대한 확실한 해소법이 되었다. 무심코 흘러버렸던 일상을 관찰하게 되었고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지금 느껴지는 나의 감정들이 매우 타당하고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 주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나에게 나는 가장 엄격한 타자였던 것 같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감정 행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어 친구와 갈등 상황에 대해 도움을 주고자 종합 심리 상담 검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 갈등상황에서 감정이 쉽게 폭발하며 격해지는 아이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아이의 문제점을 해결할 목적으로 검사의뢰를 했던 것이다. 결과는 아이는 ADHD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집중력은 높은 편이었으며 지능도 우수했다. 사회성이라는 것도 아이가 성장하며 성장하는 것인데 외동이고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에게 적응하는 과정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하도 친구들과 싸움질하고 다니길래 동네에 그만 사과하고 싶어서 재빨리 검사받으러 간 것인데 유의미한 결괏값이 나오지 않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히려 문제는 내 양육태도에 있었다. 오랜 교직생활을 하며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감독자적인 태도와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 비춰 아이를 혼내고 간섭하고 처벌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놀라웠다. 반에서 문제 많은 아이들 행동들이 조금이라도 아이에게서 관찰되면 으레 걱정되어 더 단속했던 것이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아이탓만 한 내가 미안하고 죄스러워의 눈물을 흘리며 집에서는 선생님역할을 그만하기로 다짐했다. 물론 말끔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지하고 고치려 하는 것과 아얘 모르는 것은 달랐다. 부모 교육을 꾸준히 받으며 정말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아이가 변했다. 남에게는 너그럽고 친절하면서 가장 소중한 나의 조그만 아이를 혼내고 몰아붙였던 것이다. 마음을 읽어 주고 그럴 수 있다고 수용하고 어떤 순간에도 철저히 너의 편이 되겠다 다짐하며 정말 따뜻한 엄마의 역할만 하려고 열심히 노력 했었다. 결과는? 기적처럼 아이가 변했다. 감정이 편안해진 아이는 자극에 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나 내 탓이야.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도 엄마가 처음인걸.
한 번만 봐줘 얘야.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이에게도 이렇게 엄격한 엄마였는데 나 자신에게는 오죽했으랴.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었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더욱 깨달았다. K장남과 K장녀의 만남은 책임감밖에 남지 않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시골 집성촌에서 자란 남편은 감정표현에 미숙한 아니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 같았다. 나의 불같은 불안정한 감정상태는 그 누구의 공감도 받지 못하고 힘든 일을 겪으면 속앓이 하는 날이 많았다. 신혼생활이 시작되며 허니문베이비로 찾아온 소중한 나의 첫째 아기는 24주에 원인도 모른채 사산되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너무나 선명해서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바보같이 나는 내가 제일 힘든데도 불구하고 시골에서 부랴부랴 놀라서 올라 오신 시부모님에게 사과를 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죄송해요. 아이가 유산되었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기를 잃어서 죄송하다고.
옆에서 같이 우시던 친정엄마는 참다못해 그만 사과하라고 나를 말렸다.
미련했다. 그냥 나만 참고 주변에 맞추면 다 괜찮아지고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이 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타인의 감정을 늘 살폈고 내가 조금 불편해도 참고 사는 게 맞는 줄 알고 나를 돌보는 것을 놓쳤다. 나에게 가장 친절해야 했을 내가 나의 욕구를 철저하게 뭉게 버리고 금욕적인 생활을 했었다. 내 안에 이기적인 욕구와 행동의 불일치를 매번 참아낸 것은 병이 되어 나에게 암이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속이는 애매하게 나쁜 년 생활은 최악의 삶의 방식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나에 대한 사랑표현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첫 번째로 글을 쓰며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원동력이 되는걸 느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를 이렇게까지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공감해 주는 시간을 갖은 적이 없다. 나를 위한 시간을 기꺼이 내서 내 마음을 들여다봐주고 살펴주며 나에게 잘해줬더니 내가 참 좋아한다.
더 이상은 남한테 사과만 하며 살지 않기로 다짐하며 이 글을 쓴다. 애매하게 나쁜 년보다 확실하게 나쁜 년 이 낫다. 이제는 죄책감 좀 개나 줘버리고 편히 살고 싶다. 이 순간에도 세상 온갖 나쁜 것들을 죄다 뒤집어 쓰며 하찮은 표현에 죄다 등장하는 개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내가 병맛 같다. 너 자신이나 잘 챙기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