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재능 발굴 프로젝트
나에게는 몇 가지 숨겨진 재능이 있다. 혼자만 알고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줍게 처음 공개해 본다. 나만 알고 있긴 아까우니까 세상에 널리 알려 나를 이롭게 해야겠다.
첫 번째 재능은 처음 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잘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외국사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대화하는 게 어렵지 않다. 나의 이런 재능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걸 뭘 재능이냐고 따지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나 스스로 재능이라고 품고 여기니 그걸로 됐다. 누군가는 초특급 오지라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건대 밉지 않은 수다쟁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진 능력에 비해 성격으로 커버하며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나 스스로도 대견하니까. 처음 보지만 상대가 무섭거나 나에게 무례할 때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례하지 않게 내 기분 상하지 않게 나를 지키는 게 포인트 기술이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는 예쁜 소품들과 보세옷 샵들이 즐비하다. 친절하게 맞이하는 옷가게들도 많지만 정말 센캐처럼 인사도 받아주지 않는 집들도 있다. 굳이 왜 저렇게 까지?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인사는 기본예의라고 생각하는 나의 신념에 따라 처음 보는 옷가게 언니들에게도 나올 때 공손하게 인사한다. '안녕히 계세요.' 물론 옷을 사지도 않은 손님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안녕히 가세요.' 혹은 그것도 귀찮으면 '네' 해주면 참 좋겠지만 삶이 피곤하신지 무시하는 집이 많았다. 내 말을 무시당한 기분으로 옷가게를 나오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나에게 하는 인사로 바꾸자.
'저희 그럼 알아서 잘 갈게요. 수고하세요.'
이러고 나오면 뒤통수가 따갑다. 분명 뭐 저런 미친 애가 다 있나? 이런 눈빛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사 좀 하고 삽시다.
나의 두 번째 소소한 재능은 미친 드립이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웃기고 싶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 같은 줄 알았다. 다들 웃기고 싶은데 참고 사는 줄 알아서 내가 정상인줄 알고 더 겁없던 것 인정하는 바이다. 조용한 교실 안에서 선생님께서 질문을 던질 때 미친 듯이 머릿속에 이 말을 하면 빵 터질게 떠오른다. 입이 근질거려서 참지 못해 말하면 졸 던 친구들이 깨고 잠시나마 웃음바다가 된다. 그게 좋았다. 모두들 외면하는 원어민 수업에서도 나의 이런 성격 때문에 네이티브 스피커샘이 계속 나만 의지하고 수업하셔서 도무지 내 이름을 수업 중에 몇 번을 부르나 세어 본 적도 있다. 영어도 못하는데 자꾸 나만 말 걸어서 귀찮아지자 나중에는 영어이름을 매우 발음하기 어려운 것으로 바꿨지만 끝까지 나만 시켰던 기억이 난다. 초창기 내 영어이름은 루시에서 에이미였다가 엘리자베쓰로 바꿔도 계속 시키길래 당시에 나의 최애 간식인 요델리 퀸으로 바꿨더니 애들이 니 이름 부를 때마다 배고프다고 다른 걸로 하라고 했었다.
사실 내 목소리는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 목소리를 내야 집중을 받을 수 있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챌 수 있다. 나의 이런 초(?) 능력으로 들숨과 날숨이 교차되는 정적이 찾아올 때 귀신같이 드립을 치며 주목받았다. 선생님들이나 교수님들과 수업 중에 대화하는 걸 즐겼고 실수에 대한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으나 그 순간 퍼뜩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싶어 입이 간질 거릴 때마다 참지 못해 미치겠다. 이런 도발을 모두가 좋아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게 분명해서 재능을 계속 펼치며 살아왔다.
대학시절 학교 휴강 때 친구네 학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미리 도착을 해서 친구 수업이 아직 남아있어 함께 듣기로 했다. 남에 수업시간에 들어갔으니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게 맞지. 하지만 그랬다면 재능이라고 글 쓰는 일 따윈 없었겠지. 이백여명이 모여있는 대형 강의실 끝 쪽에 앉아서 몰래 청강하는데 교수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또 하필 내가 아는 내용을 질문을 해서 들숨과 날숨 사이 조용해진 그때에 대답을 했다. 모두가 나를 쳐다봤고 교수님이 불러 세웠다.
"학생은 내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우리 학교 학생이 맞나?"
"교수님, 교수님 수업이 정말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너무 궁금해서 청강을 했습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교수님은 고래보다 지능이 높으니 당연히 좋아하지.
"보수개념 설명도 잘하고 무슨과지요?"
"옆학교 초등교육과입니다. 초등학생들 수학 개념에서 다루는 내용이라 제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참 성실한 학생이네요. 청강하며 대답도 잘하고, 내가 특별히 허락할 테니 언제든 수업 듣고 싶으면 들어와요. 허허"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이 광경이 재미있다는 듯이 듣다가 저 학생은 언제든 청강가능 하다는 교수님 말 끝에 와~~~~~ 하며 박수를 쳤다. 내 친구는 네가 또 한 건 했다며 어이없어했지만 즐거우면 그뿐이다.
소소한 세 번째 재능은 길치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약점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재능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주 아주 심각한 길치라서 지도가 있어도 지도를 못 본다. 방향 감각이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지도는 지도고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 를 외치며 그냥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주변 큰 건물 바라보며 가는 게 속편 하다. 상태가 이렇다 보니 여행은 좋아하지만 길은 못 찾고 가긴 가야겠고 믿고 의지할 것은 사람 밖에 없었다. 20대 때 12개월 중에 2개월은 해외에서 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며 길치이기에 사람들과 얼마나 이야기를 많이 했던지.
남편이 아이 어릴 때에 자주 해외 출장을 갔었다. 인도나 미국은 너무 멀어 같이 가지 못했는데 일본 출장을 2개월간 갔을 때는 아이와 함께 남편 숙소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만 같이 관광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주중에 아이와 함께 전철을 타고 도쿄 여행을 하며 디즈니랜드도 가고 레고랜드도 가고 일본의 유명한 사찰도 가보며 관광을 했다. 그러던 중 아사쿠사에서 오다이바까지 쿠르즈를 타고 한 시간가량 이동이 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오다이바에 가서 저녁을 먹을 생각에 쿠르즈를 타고 멋진 레인보우 브리지를 지나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신나게 관광했었다. 오다이바에서 내려서 미리 서치 했던 돈가스 집에서 야경을 보며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한국도 아니고 일본인데 게다가 비 내리니 삽시간에 주변이 어두워지며 잘 보이지도 않았다. 밤눈도 어두운 내가 두리번거렸지만 아까 내렸던 선착장 가는 길을 못 찾겠다. 도. 저. 히. 택시를 탈까 하다가 쿠르즈 타고 한 시간이나 왔던 거리인데 택시비가 무서웠다. 그냥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주변을 살피니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셨던 여자분 두 분이 식사를 마치고 야경 구경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의 짧은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고 영어로 대답을 잘해주셨다.
"실례지만 혹시 쿠르즈 타는 곳을 아시나요?"
"쿠르즈 타는 곳 이쪽 블록으로 가서 우회전하셔서 어디로 들어가서 아니다 저희가 데려다줄까 봐요."
"그런데,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네, 한국에서 관광 왔답니다."
"아!!!! 그렇다면 욘사마 한국에서도 아직 유명하죠?"
그 둘이 욘사마 빠순이였던 것이다. 겨울연가 봤냐. 최지우 능가할 여배우가 한국에 또 있냐? 매력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한국 남자가 자기 이상형이다. 니 남편도 그러냐? 그건 아니다. 한국 남자들 정말 욘사마처럼 착하냐? 온갖 수다를 다 떨며 원래는 쿠르즈 역까지만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대화가 무르익어 우리 숙소인 시나가와 역까지 굳이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분들은 욘사마가 좋아서 한국에도 왔었고 남이섬에서 숙박까지 했던 열성광팬이었다. 두 분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환대해 주니 몸 둘 바를 몰랐다. 굳이 사양하는데 자기들 집이 시나가와 근처라고 원래 쿠르즈 종착역인 아사쿠사에서도 한 참 떨어진 시나가와까지 데려다줬었다. 퇴근하고 남편한테 길 헤매다가 일본인 여자 두 분이 고급외제차로 여기까지 데려다줬다니까 정말 어이없다는 눈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내가 길치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대단한 재능이 아닐 수 없다.
대망의 마지막 재능은 사람들의 숨겨진 귀여운 모습 찾기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호기심 천국인 나에게 사람들은 최고의 관찰 대상이다. 그냥 보이는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성격, 취향, 식성, 패션부터 유머성향, 정치성향 등등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않은가! 누구든 찬찬히 들여다보면 적어도 어느 한구석은 귀여운 면을 갖고 있다. 그냥 봐도 귀여운 아기들이나 어린이들 말고 특히나 귀여우신 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그분들의 지긋한 주름살 뒤로 보이는 어린 시절의 얼굴을 숨은 그림처럼 찾아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저분은 웃는 모습이 명랑하고 해맑으시네.
옆에 깊게 파인 주름은 사실 보조 개였겠구나.
지금도 어여쁘신데 젊었을 때는 얼마나 예쁘셨을까?
지금은 구부정한 할아버지들 모임이지만 어릴 때 축구공 차고 노는 모임이었겠지?
저 할아버지 애기 때 부모님이 얼마나 예뻐하며 키우셨을까?
사실 우린 모두 한 때 귀여웠던 어린 시절을 품고 살고 있다.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을 어릴 때는 믿지 못했다. 그때는 몸과 비례해 마음도 함께 늙는다고 생각했었다. 살아보니 세월이 흘러 외모가 변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에 눌려 사랑받았던 아이 때의 모습을 잊고 살아갈 뿐이었다. 모두 누군가에게 너무나 귀한 생명이었고 희망이었고 소중한 자식이었던 때의 귀여움을 지닌 채 그 힘으로 살아간다. 연인들끼리 서로 아기처럼 대하고 귀여워해 준다. 누가 봐도 어이없는 투정을 받아주고 쳐다만 봐도 예뻐죽을라고 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사랑받았던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의 마지막 재능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일단 사람들 관찰하며 어린 시절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나 재밌고 시간이 잘 간다. 그리고 사람을 귀여워하면 누군가를 맞이하거나 대할 때 마음의 장벽이 쉽게 낮아진다. 나에게 날 서게 대하고 상처 주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방법을 택하다가도 귀여운 구석을 찾으려 노력하면 짠해져 온다. 어쩌다 그래 됐을까 싶다.
며칠 전 아이와 토크콘서트를 본 후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청역 정거장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단 한가닥도 없는 백발을 곱게 빗어서 하나로 묶으신 할머니께서 우리 옆자리에 앉으셨다. 서글서글하신 인상에서 그간의 삶이 어떠했을까 지레짐작이 가능했다. 웃기 전부터 이미 표정이 웃상이시고 자리를 양보받으며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양보하신 분께 연신 빈자리를 권하며 고맙다고 표현하셨다. 내 기준에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심리적 한계선에서 한 단계 앞으로 모신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에게 토크콘서트 다녀왔냐고 다정하게 물어보신 후 최재천 교수가 유머러스하고 기후변화에 대해 쉽게 설명해 줘서 유튜브보고 팬이 되었다며 소녀처럼 설레어하셨다. 설렘은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젊게 변신시키는 게 분명하다. 아이돌 스타를 만난 양 처음 보는 나에게 기후변화대책은 뭘지 물으셨고 최재천 교수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질문하셨다. 한 아이돌을 좋아하는 두 명의 덕후가 만났으니 할 말이 넘쳐났다. 나이를 초월해 조잘조잘 떠들며 여고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보다 오래 사시고 취향이 비슷한 것 같은 할머니의 선택이.
"혹시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갑작스럽지만 설레는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확신에 차게 대답하신다.
"당연히 공부를 더하고 싶어."
공부라는 두 글자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공부는 하면 남 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돌보고 싶고 더 나아가고 싶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식구들 챙기느라 뒷전이었던 과거의 나에게 잘해주고 싶었으리라.
"지금도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계신 거예요? 강연회도 찾아다니시고 멋지세요."
"공부도 다 때가 있어서 지금은 눈도 잘 안 보이고 말이지 허허, 그리고 하나 더 여행,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 노르웨이에 우리 아들이 데리고 간 적이 있어. 지금은 못 가. 지금 살면서 그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여행이 최고 선물 같고 그래."
공부와 여행. 갑자기 떠올라서 여쭤본 질문에서 지나온 철학이 느껴진다.
"여행을 다니면 스스로 알아서 공부가 되잖아. 학생 엄마와 여행 많이 다녀. 추억도 쌓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공부지 딴 게 공부인가. 하하."
후군은 할머니와의 대화가 어색한지 할머니와 나 사이에 얌전히 앉아만 있지만 난 안다. 다 듣고 있는 녀석이다. 우리의 서로 진행했던 30여 분간의 짧은 버스 안 대담은 아쉽게도 하차시간이 다가와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여행 공부 부지런히 하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작별을 했다. 방금 할머니와의 만남이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하며 그분의 철학과 생각들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듯 김지수 기자가 인터뷰 형식으로 책을 엮어놨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통해 이어령 선생님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그분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나에게 큰 울림을 줬던 책이다. 88 올림픽의 개막전 테마를 철학을 심어 디자인하신 시대의 어른 이어령 선생님이 아니라도 우리는 누구나의 역사를 안고 살아간다. 그 작은 역사를 살며 경험한 것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반갑고 또 후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많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설레는 표정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쫑알쫑알 '엄마 나 100점 맞았어. 칭찬해 줘.' 했던 느낌으로 때로는 TMI지만 난 이런 것들 또한 귀엽다고 표현한다. 어릴 때는 가만히 있어도 온 세상의 관심 속에 자라나지만 나이 들면 누구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기 쉬워진다. 나이 듦은 부서지는 몸과 깊어지는 지혜로움 그 사이에 있다. 나 또한 귀엽게 나이 들고 싶다.
이것보다 더 소소하고 하찮은 재능이 더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고백하고 마칠까 한다. 궁금하면 다시 돌아옵니다. I'll be back.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