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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스런 후후작가 Jul 02. 2024

CT 조영제 공포 이겨내기

숨 들이마시고 참으세요.

후야

엄마 서울에 병원 다녀올게

혹시 일어나서 엄마 없으면 찾을까 봐

후딱 다녀올게

사랑해 내 새끼

-from 엄마-


  주말 이른 아침 3개월 전 예약해 놓은 복부 CT검사를 받으러 버스에 올라탔다. 식탁에 쪽지와 간단한 아침을 차려두고 아이가 깨지 않게 살그미 나왔다. 혼자있는 아들이 주말 늦잠을 자고 깨기 전에 오려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 보통은 주중에 검사예약이 잡히는데 이번에 자리가 없었는지 일요일 아침으로 배정받았다. 언제나 바쁘고 근심 어린 이곳은 환자와 의사들과 보호자들로 꽉 차있는 것에 익숙해서였을까? 일요일 텅 빈 검사실 복도가 어색했다. 환자들로 북적이던 때의 동료들이 없어서일까? 세상해 나만 아픈 사람인 것 같다는 외롭고 씁쓸한 마음이 쑥 자라난다. 약한 마음이 비집고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면 슬쩍 기대고 주삿바늘 아프게 찔렀다고 일러바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바쁘지만 되도록 병원 검사 일정은 함께 해주는 남편이 오늘 따라 그리웠다.


 <일요일의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로비의 모습>

  

   병원 치료 경력 11년 차로 중견에 접어드는 경력자이지만 검사할 때마다 피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CT촬영을 하기 전에 조영제를 넣기 위해 주삿바늘 라인을 먼저 잡아야 한다. 약한 혈관을 타고난데다가 수년간의 항암으로 혈관들이 모두 숨바꼭질에 들어가 매번 간호사의 눈치가 보인다.


"혈관이 다 숨어버리셨어요. 다른 쪽 팔 볼게요. 아이고 혈관이 정말 없으시네요. 손등 좀 때릴게요."


  이리저리 뒤적뒤적 골칫덩어리 환자가 힘들 법한데도 한결 같이 친절하다. 손등을 찰싹 때려 숨어있던 혈관을 한 큐에 찾아낸다. 손등이라 바늘 들어갈 때 아프실 거라며 조심스레 정성껏 주삿바늘을 꼽는다. 한 번에 라인이 잘 잡혀 여러 군데 혈관이 터지는 상황을 면했다. 이렇게 인성과 실력이 정비례할 때 그 사람에게 존경심이 든다.


  병원 검사할 때 엑스레이 + 채혈 + CT를 한날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와이어가 있는 브래지어나 버클이 있는 바지를 입고 오면 상하의 모두 탈의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하루 전날 노와이어 브라와 고무줄 바지를 준비했다. 새벽에  준비해둔 옷을 재빨리 입고 병원에 왔다. 환복 하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며 위풍당당하게 시티 기구에 눕는다.


숨 들이마시고 참으세요.

  안내멘트에 따라서 조영제 넣기 전에 1차 촬영을 한다.

"잠시만요, 환자분 바지 옆주머니 속에 지퍼가 보이네요. 바지 내리고 수건 덮고 촬영하겠습니다."

"네? 지퍼요? 그럴리가 없는데... 네? 바지를 내려요?!"


  앗!! 10년 넘게 이런 적은 처음인데... 세상해나 러닝전용바지라 안쪽에 2센티 정도 비밀 지퍼가 있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다. 전체 고무줄이라고 허리라인만 생각한 나의 실수다. 차라리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올 걸. 후회해 봤자 돌이킬 수 없다. 누운 자세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바지를 벗고 그 위에 수건을 덮어 시티기구 안에서 대기를 했다. 누워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바지를 벗고 속옷채로 있는 것도 창피한 일인데 조영제 투입하는 담당 간호사가 옆 칸에서 환자를 케어 중이라 기다려야 한다. 팬티 위에 수건만 덮고 누워있자니 민망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산부인과의 굴욕의자에서 느껴지는 수치심과 비슷한 감정이 든다. 그동안 조영제 부작용이 없었던지라 대수롭지 않게 CT촬영을 하는데 검사가 끝나갈 때 쯤 목안이 좁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목안은 느낌에 의존했지만 손등의 채혈했던 자리가  육안으로 봐도 부풀어 올라 심상치가 않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조영제 부작용인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이러다가 기도가 부어 숨을 못 쉬면 어쩌지?

부작용이 심하면 두드러기처럼 올라와서 간지럽다는데, 구역 구토감 있는 사람도 있다네 인터넷 검색을 하며 어플로 버스의 위치를 살펴보고 가까스로 도착한 버스를 한 대 보내고 안정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쉽게 죽으면 안 되니까.




  병원 로비에서 물을 마시며 관찰을 하니 다행히 검사 직 후에 느껴졌던 목도리로 동여맨 듯 답답했던 목이 좀 풀렸다. 손등의 부풀었던 채혈 자국이 평평해졌다. 살았다!





  동생네와 함께하기로 한 점심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집에 있는 후군의 상태가 중요하다. 분명 유투브에 빠져 있거나 게임하며 엄마 없는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있을터였다. 여러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는 척도 안한다.


  할 수 없이 아이폰끼리 연동되어 벨소리로 폰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을 켰다. 큰 소리로 폰의 위치 알람이 울린 후에야 바로 전화를 받는다. 숙제하는 것 바라지도 않을테니 씻고 온 입고 있으라고 말한 후 버스에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긴장하고 잠든 터라 내리기 전전 정거장에서 귀신처럼 눈이 떠졌다. 바로 전화를 건다. 역시 전화기 너머 큰소리의 유투버의 음성이 들린다. 이색히 안움직인거다. 아 열받아. 버스안이라 자근자근 낮춰서 지금 당장 욕실로 들어가서 씻으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우리를 데리러 온 동생네 부부의 차를 타고 의왕으로 출발했다. 성격 똑같아서 서로 디스 전하며 막말하며 싸우는 자매지만 언니 검사 받느라 힘들었다고 닭백숙을 사주니 애가 달라보인다. 후군은 처음에 싫다더니 누룽지닭백숙 속에 누룽지만 올킬하며 몇 번씩 밥그릇을 비운다. 먹방 유투버 저리가라로 복스럽게 잘 먹는 아들 모습이 흐뭇해서 자꾸만 미소가 지어진다. 사랑하는 사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참말이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은 어쩜 이리 파랗던지. 길가에 심어놓은 30살은 너끈히 넘은 가로수들을 보니 가보지도 않은 베르사유 궁전 정원처럼 느껴져 공짜 해외여행을 온 기분까지 들었다. 어쩌면 오늘 하늘의 색깔을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보통 병원 다녀오면 녹초가 되어 기절하듯 뻗어 침대와 한몸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억지로라도 움직여서 힘나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시시콜콜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다 보니 내가 침울 할 틈이 없었다. 오늘 파란하늘을 기억하게 해줘서 동생부부가 참 고맙다. 오늘따라 엄마를 엄마로 살게 해준 아들래미도 존재만으로도 든든해진다. 오늘의 하늘의 색깔은 그림같이 어여쁜 하늘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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