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iger Kim 김흥범 Jan 18. 2021

할 거면 제대로 하자의 함정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내 좌우명이었다. 최근에야 깨달은 건데 이 생각은 위험하다.


'한 번 할 때 제대로 한다'라고 일이 되지는 않는다. 일은 계속 끊임없이 시도하다 운이 맞아떨어질 때 된다.(그래도 될까 말까 하지만) 해서 무언가를 이루려면 계속해야 한다. 비가 올 때까지 지낸다는 인디언들의 기우제처럼. 계속.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이 '계속'을 막는다. 우리(내)가 하는 일은 항상 뭐가 좀 어설프기 때문에 매번 제대로 할 수는 없다. 이내 우리(나)는 '아 다음에 제대로 준비해서 하지 뭐.'라는 길로 쉬이 빠지게 된다. 여기에 정말 많이 속았다. 그래, 다음에 제대로 하지 뭐.


다음에 제대로는 없다. 다음도 그다음도 한동안은 계속 어설프다. 처음이니까, 몇 번 안 해봤으니까. 어떤 일이건 계속해야 잘해지는 건데 그걸 몰랐다. 몰랐다기보다는 외면했다. 실패는 부끄럽고 되도록 겪고 싶지 않으니까. 제대로 할 때만을 한 번의 시도로 치면 실패도 그만큼 줄어드니까.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일을 미루게 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좀 모자라다. 좀 더 해봐야지. 좀 더 한다. 여전히 눈에 안찬다. 미룬다. 기한이 되고 여전히 결과물은 마음에 안 든다. 양해를 구한다. 좀만 더 해볼게요. 기한까지 늘였으니 이제는 정말 잘해야 한다. 될 리가 있나. 모두가 불행하다.


일단은 내 눈에 '제대로'가 아니어도 일을 마무리 지었어야 했다. 그리고 도움을 구했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제대로 하려고 마음만 괴로웠다. 기한에 늦는 것 자체가 더 큰 실패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제대로 해서 가져가면 모든 게 용서될 거야.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오래 걸려 많은 폐를 끼치고서야 깨달았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위험하다는 걸. 부족함을 인정하고 일단 해보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모두에게 낫다는 것을. 그게 정말 제대로 하는 법임을 이제야 배웠다.

 

작가의 이전글 게임을 열심히 하면(1) 카운터 스트라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