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운영했던 의류 매장을 모두 처분했다. 브랜드의 약발이 다한 것도 있지만 상권이 먹자로 바뀌면서 매출이 꿀렁이기 시작하자.. 인건비, 월세 등의 걱정과 함께 권리금 회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수억을 들이고 여러명의 직원을 고용했던 사장의 속마음은 폐점 직전 6개월간 너무나 썩어 문들어졌고 적당한 가격에 매장을 처분하고 새로운 상권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와 다르게 상권과 손익을 보는 눈이 생기고 오픈과 폐점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난 후엔 아무 곳이나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한두 달을 보내다 보니 집안의 가장인 내가 놀고 있음에 조급함이 들기 시작했다. 간단한 일이라도 하면서 장기적으로 준비하자 마음먹고 4년 만에 채용포탈을 뒤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진행했던 IT 서비스 운영 업무는 경험도 있고 업무강도도 강하지 않아 사업 준비와 병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었고, 우연히 대기업에서 신규 출시한 서비스의 '계약직 운영 담당자' 채용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위한 일이군!!'
계약직을 뽑는데 뭐 이렇게 요구하는 게 많은지 해당 기업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세세한 내용을 하나하나 적고 수정하고 나니 하루가 지나버렸다. 그리고 3일 뒤 서류합격과 면접 일정을 안내받았다.
내 나이 34살. 지금 생각해보면 34살 가장이 어떻게 비정규직을 지원할 수 있었는지... 신기한 생각도 든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기업 본사 건물에 들어서서 방문증을 받고 면접장소로 이동했다. 사회 초년생 때 BP(비즈니스 파트너)로 이곳을 들락 거린 적이 있지만 갑의 공간에 을이 들어설 때면 언제나 위축되곤 했었다.
하지만 면접을 위해 방문하고서도 이번만큼은 조금도 긴장되지 않았다. 어차피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마음을 먹었고 정규직만 다니던 내가 계약직 하나 붙지 못하겠냐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마음이 한껏 가벼웠다.
'될 대로 되라지...'
대기장소인 A회의실에 들어서니 나 말고 3명의 사람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엄청 일찍 온 건지 이들이 엄청 일찍 온 건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나중에 면접 순서를 보니 마지막 면접자인 내가 너무 일찍 온 것이었다.
서비스 운영 직무의 계약직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나 혼자였고 나머지 3분은 모두 여자였다. 밖에서 봤으면 고등학교 동창회라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3명은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어디서 무슨 일을 했냐. 나이는 몇이냐. 나는 나이가 좀 많다. 다 잘되었으면 좋겠다. 면접 별거 아니다. 라며 여고생들 마냥 '꺅꺅' 떠들고 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고 덩치 큰 분이 대화를 주도하며 나에게도 계속 질문을 했다.
"아.. 네... ㅎㅎ"
아무리 긴장하지 않았다지만 면접을 앞두고 준비해놓은 말은 다 해야 하는데... 정신이 산만해지자 내심 짜증이 났다.
'적당히 좀 하지...'
그리고 한 명씩 한 명씩 순서에 맞춰 면접이 진행되었다. 웃긴 건 면접이 끝나면 다시 대기실로 들어와 어떤 질문을 했다던지 면접 분위기가 어떻다던지 한 마디씩 던지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마지막 차례인 나는 긴장감을 더욱 떨쳐버리게 되었다. (감사)
그리고 마지막 내 차례가 되어 면접 회의실로 들어가니 3명의 면접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3명 모두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고 밝고 즐거운 분위기로 면접을 이끌어 주셨다.
'서비스에 대해 알아온 것에 대한 이야기' - 관심과 태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사용 경험에 대한 이야기' - 관심과 관점
'서비스의 단점이나 개선점' - 분석력
'기존 업무내용과 서비스 운영에 대해' - 경력과 업무 연관성
'계약직 경험이 없는데 적응할 수 있는지' - 적응과 태도
대충 예상했던 수준의 질문이었고 면접관도 예의를 다해줘서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나왔다.
'붙었군..'
이상하리만치 합격했다는 확신이 200% 들었고, 회사 근처에서 기다리던 집사람을 만나서 기분 좋게 연극 관람을 하며 데이트를 즐겼다. 나 여기 붙을 거야..라는 이야기까지 했던 것을 보면.. 자신감 뿜 뿜
그리고 2주 뒤 예상처럼 합격소식을 전해 듣고 처음으로 계약직으로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영업을 하면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었기에 회사생활 자체가 한참이나 쉬워 보였고 잠시 거쳐가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내 인생을 가장 큰 커리어로 이렇게 영향을 미칠지는 그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