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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AI가 '직무'에서 '역량'으로 바뀌는 시대

AI 활용이 모두의 기회가 된 지금, 문과에게 열린 새로운 판

by 서지삼

여러분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나는 문과 출신이라 코딩은 무리야.”
“개발은 이공계 사람들만 하는 거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거든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코딩”은 이공계 전공자나 개발자만의 특별한 영역처럼 느껴졌습니다.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분석, 업무 자동화 같은 혁신적인 변화들은 대부분 개발자와 엔지니어들, 즉 이공계 출신의 전유물이었죠. 문과생들은 자연스럽게 ‘코딩을 못하는 사람’, ‘기술 변화에서 소외되는 사람’으로 분류되었고, 이는 곧 취업이나 승진에서의 불리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세상은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 2025년 2월 27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제는 코딩을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사람도 단 몇 줄의 자연어 설명만으로 자신만의 앱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기자는 “냉장고 사진을 올리면 아이 도시락 메뉴를 추천해주는 앱”을 직접 만들어봤는데, 복잡한 코딩 지식 없이도 AI가 알아서 디자인과 기능을 완성해줬다고 합니다.

https://www.nytimes.com/2025/02/27/technology/personaltech/vibecoding-ai-software-programming.html


이제 ‘개발자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 기술과 자동화 도구의 눈부신 발전이, 수십 년간 견고했던 ‘이공계 vs 문과’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딩이 특정 직무의 전유물에서 ‘누구나 습득할 수 있는 기본 역량’으로 전환되는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나는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그 생각을 다시 해볼 때입니다.
AI와 함께라면,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세상은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역사가 반복되는 패턴: 전문 직무가 일반 역량이 되는 순간들

이런 변화가 처음은 아닙니다. 사실 기술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패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왔거든요. 전문가만 할 수 있던 일이 기술의 도움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역량으로 바뀌는 현상 말입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이 패턴을 이해해보겠습니다.


타이피스트: 전문 기술에서 기본 소양으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타이피스트'는 엄연한 전문직이었습니다. 타이핑을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기술 하나만으로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었죠. 분당 60타 이상의 속도로 오타 없이 타이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전문 기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타이피스트라는 직업은 사라졌지만, 대신 모든 사무직 직장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일이 당연해졌습니다. 키보드 타이핑은 이제 운전면허처럼 '할 줄 아는 게 당연한' 기본 역량이 되었죠.


계산원과 주산 전문가: 손계산에서 계산기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은행이나 회계사무소에는 주산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복잡한 계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전문 기술이었고, 주산 자격증은 취업에 큰 도움이 되는 스펙이었습니다. 특히 대형 할인점이나 마트에서 계산원이 암산으로 거스름돈을 계산해주는 모습은 일종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하지만 계산기와 POS 시스템이 보급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초등학생도 스마트폰 계산기로 복잡한 계산을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계산 능력은 특별한 전문 기술이 아닌 누구나 도구를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역량이 되었습니다.


전화교환원: 수동 연결에서 자동 시스템으로

1960년대까지 전화를 걸려면 교환원을 거쳐야 했습니다. "교환원입니다. 어디로 연결해드릴까요?"라는 말로 시작되는 대화는 당시의 일상이었죠. 전화교환원은 지역의 모든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빠르게 전화선을 연결하는 전문 기술을 가진 직업이었습니다. 특히 국제전화의 경우에는 여러 나라의 시차와 국가번호까지 알아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었습니다.

자동 전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전화교환원이라는 직업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모든 사람이 직접 원하는 번호로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린아이도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어디든 쉽게 전화를 걸 수 있죠.


사진현상 기술자: 암실 작업에서 디지털 편집으로

필름 카메라 시대에는 사진을 찍은 후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야 실제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화학 약품의 정확한 배합, 온도와 시간 조절, 암실에서의 정밀한 작업 등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영역이었습니다. 사진관의 현상 기술자는 노출 보정, 색상 조절, 크기 조정 등의 전문 기술로 사진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인물이었죠.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 같은 편집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상황이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필터를 적용하고, 밝기를 조절하며, 크기를 바꾸는 일이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상적인 행동이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필터 기능은 과거 전문 현상소에서만 가능했던 고급 보정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죠.


여행사 직원: 여행 계획 전문가에서 개인 여행 플래너로

과거에 해외여행을 가려면 반드시 여행사를 통해야 했습니다. 항공편 예약, 호텔 예약, 현지 교통편 안내, 환율 정보, 비자 발급 절차 등 복잡한 여행 준비 과정을 개인이 직접 처리하기는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여행사 직원들은 각국의 입국 절차, 호텔 정보, 현지 관광지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맞춤형 여행 상품을 제공하는 전문가였죠.

하지만 인터넷 예약 시스템과 여행 앱들이 등장하면서 개인도 손쉽게 항공편을 예약하고, 호텔을 비교 검토하며, 현지 맛집과 관광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글 맵으로 길찾기를 하고, 트리바고로 호텔을 비교하며,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는 일이 이제는 일반적인 여행 준비 과정이 되었습니다.


공통 패턴: 도구의 보편화가 만드는 변화

이 모든 사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술이 복잡한 전문 업무를 단순화시켜서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특정 직무는 사라지지만, 그 기능은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 역량으로 편입되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은 이런 변화가 단순히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타이피스트는 사라졌지만 모든 사람이 문서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전화교환원은 사라졌지만 모든 사람이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진현상 기술자는 사라졌지만 모든 사람이 창작자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지금, 코딩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노코드/로우코드 플랫폼의 등장으로 코딩의 문턱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개발자만의 전유물이었던 기술들이 모든 직장인의 기본 역량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고, 이번에는 여러분이 그 변화의 수혜자가 될 차례입니다.


공급과잉의 역설: 기술은 넘쳐나는데 아이디어는 부족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나타납니다. AI와 노코드/로우코드 플랫폼의 발전으로 기술 구현이 놀라울 정도로 쉬워진 지금, 정작 시장에서 진짜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제 ChatGPT에게 "온라인 쇼핑몰 만들어줘"라고 하면 몇 시간 만에 기본적인 쇼핑몰이 만들어집니다. 노코드 플랫폼으로는 하루면 충분하죠. 기술적 구현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뭘까요?

"어떤 쇼핑몰을 만들어야 할까?"

"고객들이 정말 원하는 건 뭘까?"

"기존 쇼핑몰과 어떻게 차별화할까?"

"사용자들이 불편해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바로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한 겁니다.


앱스토어의 무덤: 기술만으로는 안 되는 이유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는 수백만 개의 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성공하는 앱은 몇 개나 될까요? 전체의 1%도 안 됩니다. 나머지 99%의 앱들은 왜 실패했을까요? 기술이 부족해서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하게 작동하는 앱들이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죠.


실패한 앱들의 공통점:

개발자가 만들고 싶어하는 기능만 넣었음

사용자가 실제로 겪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

시장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

사용자 경험(UX)에 대한 이해 부족


반대로 성공한 앱들의 공통점:

사용자의 진짜 pain point를 정확히 파악

기존 해결책의 불편함을 날카롭게 발견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사용자 경험 제공

시장 타이밍과 사용자 심리를 정확히 읽어냄


배달의민족이 성공한 이유가 뛰어난 개발 기술 때문일까요? 카카오톡이 전 국민 메신저가 된 이유가 고도의 프로그래밍 실력 때문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사용자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술 공급 과잉 시대의 새로운 희소성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생각해보세요. 어떤 것이 흔해지면 가치가 떨어지고, 희소한 것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과잉 공급되고 있는 것들:

코딩 능력 (AI가 대신 해줌)

기술적 구현력 (노코드로 해결)

개발 인력 (전 세계 아웃소싱 가능)

프로그래밍 지식 (구글링과 AI로 즉시 습득)


희소해지고 있는 것들:

문제 정의 능력

사용자 공감과 이해력

창의적 아이디어

시장 감각과 비즈니스 센스

복합적 사고와 융합 능력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기술을 못해서" 소외되었던 문과생들이 가진 능력들이 바로 희소해지고 있는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문과생의 숨겨진 희소성이 드러나는 순간

문과생들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다시 생각해보세요.

문학 전공자: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스토리텔링의 원리를 이해합니다. 이는 사용자 경험 설계와 브랜딩에서 핵심적인 능력이죠.

심리학 전공자: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의사결정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나 마케팅 전략에서 이보다 중요한 능력이 있을까요?

사회학 전공자: 사회 트렌드와 집단 행동을 읽어내는 데 탁월합니다. 새로운 서비스가 사회에 어떤 파급효과를 일으킬지 예측하는 능력은 기술자들이 가장 부족해하는 영역입니다.

경영학 전공자: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 구조를 이해하고, 수익성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돈을 벌 수 없다면 의미가 없죠.

철학 전공자: 복잡한 문제를 본질적 차원에서 사고하고,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가치 판단과 인간성의 영역입니다.

이 모든 능력들은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진짜 인간만의 영역입니다.


새로운 분업 구조: 문과생 + AI = 최강 조합

이제 새로운 협업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개발자 혼자 다 하기" 방식이 아닌, "문과생이 기획하고 AI가 구현하는" 방식이죠.

1. 전통적인 방식: 개발자가 기획 + 설계 + 개발 + 테스트를 모두 담당

2. 새로운 방식: 문과생이 문제 정의 + 기획 + AI 지시, AI가 구현 + 테스트

놀랍게도 두 번째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성공 확률도 높습니다. 왜일까요?

기술적 완벽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기능을 추가하면 더 좋을 텐데",

"이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면 성능이 향상될 텐데" 같은 식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사용자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자신의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해주는 것뿐이에요. 반면 대부분의 문과생들은 처음부터 "사람"에 집중합니다. "사용자가 왜 불편해할까?", "어떻게 하면 더 직관적일까?", "이 서비스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실제로는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5년 후 채용공고의 변화

한번 상상해보세요. 5년 후 채용공고는 어떻게 바뀔까요?

2019년: "자바, 파이썬, 리액트 능숙자 우대" -> 2029년: "AI 활용하여 비즈니스 문제 해결 가능한 기획자 우대"

2019년: "백엔드 개발 경력 3년 이상" -> 2029년: "사용자 니즈 파악 및 프롬프트 설계 전문가"

2019년: "컴퓨터공학 전공자 우대" -> 2029년: "인문사회계열 + AI 활용 역량 보유자 우대"

이미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기업들에서는 이런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기술적 구현보다는 "올바른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거죠.


결론: 문과생이 기술을 지배하는 시대

결국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민주화가 아닙니다. 권력의 이동입니다.

과거에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주도권을 쥐었다면, 이제는 기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문과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문과생은 "기술을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술을 지시하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쥔 문과생이야말로 미래의 진짜 승자가 될 것입니다.

기술은 이제 넘쳐납니다. 정작 부족한 건 그 기술을 인간다운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입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바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제 "문과라서 못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대신 "문과라서 할 수 있다"고 말하세요. 여러분의 시대가 진짜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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