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Gov와 Claude Gov가 보여주는 분업, 협력
전 세계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보여주는 정부 AI 전략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AI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두 AI 모델을 동시에 활용하는 흥미로운 구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5년 1월 28일 OpenAI가 발표한 ChatGPT Gov는 미국 정부 기관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AI 서비스입니다. 2024년 기준으로 3,500개 이상의 미국 연방, 주, 지방 정부 기관에서 9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1,800만 건 이상의 메시지를 전송하며 정부 업무의 AI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왔는데, ChatGPT Gov는 이러한 범용적 활용을 더욱 체계화하고 보안을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ChatGPT Gov는 정부 기관들이 자체 Microsoft Azure 상용 클라우드나 Azure Government 클라우드에서 "민감하지 않은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OpenAI 모델에 입력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자체 보안 호스팅 환경 내에서 운영할 수 있게 합니다. 이는 정부의 엄격한 사이버보안 요구사항을 충족하면서도 AI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실제 활용 사례들을 보면 ChatGPT Gov의 Horizontal AI 성격이 드러납니다. 펜실베이니아주는 AI 시범 프로그램을 통해 챗GPT 엔터프라이즈 사용 시 일상 업무 처리 시간이 하루 평균 105분 단축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미네소타주 정부 번역국은 챗GPT 팀을 활용해 다국어 커뮤니티를 위한 번역 서비스의 속도와 정확도를 개선했으며, 비용과 처리 시간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공군연구소는 내부 리소스 접근성 향상과 기본 코딩, AI 교육 지원을 위해 챗GPT 엔터프라이즈를 활용했습니다.
OpenAI의 최고제품책임자 케빈 웨일은 "공공부문, 특히 미국 연방정부가 ChatGPT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AI 분야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는 데 중요합니다. 공중보건과 인프라 개선부터 국가안보 강화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이러한 도구들이 공공부문을 지원할 수 있는 엄청한 잠재력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모두 부처나 기관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업무들입니다. 문서 작성, 번역, 요약, 기본적인 분석 등 정부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범용적 기능에 특화되어 있어 보입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129005000075
반면 2025년 6월 5일 Anthropic이 발표한 Claude Gov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보여줍니다. 이는 미국 국가안보 고객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맞춤형 AI 모델로, Vertical AI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Claude Gov는 "정부 고객들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바탕으로 실제 운영상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구축"되었으며, "모든 Claude 모델과 동일한 엄격한 안전 테스트를 거쳤다"고 Anthropic은 밝혔습니다. 이 모델은 이미 최고 수준의 국가안보 기관에서 배치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기밀 환경에서 작업하는 사용자들에게만 접근이 제한됩니다.
Claude Gov의 특징을 보면 Vertical AI로서의 전문성이 명확합니다. 기밀 자료 처리 능력이 향상되어 기밀 정보 처리 시 거부율이 낮아졌고, 정보기관 및 국방 맥락의 문서와 정보에 대한 이해력이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안보 작전에 중요한 언어와 방언에 대한 숙련도가 높아졌으며, 정보 분석을 위한 복잡한 사이버보안 데이터의 이해와 해석 능력이 개선되었습니다.
Anthropic의 공공부문 책임자 티야구 라마사미는 "Claude Gov 모델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국가안보 고객을 위해 맞춤 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운영상 필요를 이해하고 실제 피드백을 통합함으로써, 기밀 환경의 독특한 제약과 요구사항 내에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유능한 모델 세트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모델은 전략 계획, 작전 지원, 정보 분석, 위협 평가 등 국가안보라는 극도로 전문화된 영역에서 활용됩니다. ChatGPT Gov가 범정부 공통 업무에 특화된 것과는 다른 방향의 접근인 것입니다.
https://www.anthropic.com/news/claude-gov-models-for-u-s-national-security-customers
이러한 Horizontal AI와 Vertical AI의 분업 구조가 미국에서 가능한 이유는 몇 가지 독특한 조건들 때문입니다.
OpenAI와 Anthropic은 단순한 스타트업이 아닙니다. OpenAI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30억 달러가 넘는 투자를 받았으며, Anthropic은 아마존으로부터 40억 달러, 구글로부터 2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국가 GDP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적 자원입니다. OpenAI의 CEO 샘 알트먼을 비롯해 전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자들이 실리콘밸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Anthropic 역시 OpenAI 창립 멤버들이 설립한 회사로, 최고 수준의 AI 안전성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력과 자본력의 결합은 정부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에 맞는 전용 모델을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는 역량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은 이런 수준의 AI 기업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바이두나 알리바바, 유럽의 일부 AI 기업들도 있지만, 미국 기업들과 비교할 때 기술적 격차가 상당합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연간 IT 예산만 약 1,000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는 대부분 국가의 국방예산 전체보다 큰 규모입니다. 여기에 주정부와 지방정부까지 포함하면 정부 IT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집니다. AI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매력적인 고객을 찾기 어렵습니다.
특히 국가안보 분야의 수요는 매우 특수합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국가안보 예산은 급격히 증가했으며, 현재 연간 8,000억 달러가 넘는 국방예산 중 상당 부분이 첨단 기술 도입에 투입됩니다. CIA, NSA, FBI 등 정보기관들의 AI 수요는 일반 기업 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전문성을 요구하며, 이는 Claude Gov 같은 고도로 특화된 AI 개발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됩니다.
또한 미국 정부는 "Buy American Act" 같은 정책을 통해 자국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미국 AI 기업들에게는 안정적인 내수 시장이 보장됩니다.
미국의 정부 IT 보안 체계는 수십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습니다. FedRAMP(Federal Risk and Authorization Management Program)는 연방정부 기관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할 때의 보안 기준을 표준화한 프로그램으로, Low, Moderate, High 3단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ChatGPT Gov가 지원하는 IL5(Impact Level 5), CJIS(Criminal Justice Information Services), ITAR(International Traffic in Arms Regulations) 등은 각각 국방정보, 범죄수사정보, 방산기술 등 고도의 보안이 필요한 영역에 특화된 인증입니다. 이러한 다층적 보안 체계는 정부 전용 AI 개발에 필요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또한 NIST(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같은 기관이 AI 윤리와 안전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어, AI 기업들이 정부 요구사항을 예측하고 대응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합니다.
미국은 국방부의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를 통해 수십 년간 정부-민간 연구개발 협력의 경험을 축적해왔습니다. 인터넷, GPS 등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기술들이 이런 협력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AI 분야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명확한 요구사항과 충분한 예산을 제공하고, 민간 기업은 혁신적인 기술로 응답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혀 있습니다. OpenAI와 Anthropic이 정부 전용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것도 이런 협력 문화가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의 결합은 다른 국가에서는 쉽게 재현하기 어려운 미국만의 독특한 경쟁 우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2025년 2월 기획재정부가 정부 부처 최초로 업무용 생성 AI를 도입했고, 행정안전부는 전 부처가 활용할 수 있는 범용 AI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재부는 자체 데이터를 학습한 세법·예산·재정 특화 AI 플랫폼 개발을 진행 중이며, 다른 부처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1903
미국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기술 도입 자체가 아니라 체계적인 분업 구조의 중요성입니다. OpenAI의 ChatGPT Gov와 Anthropic의 Claude Gov가 성공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역할과 기능을 명확하게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Horizontal AI는 정부 전체의 공통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Vertical AI는 특정 분야의 고도로 전문화된 업무를 담당하는 구조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의도된 분업입니다.
이러한 분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명확한 기능 경계 설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업무는 범용 AI가, 어떤 업무는 전문 특화 AI가 담당할지에 대한 'AI 기능 분담 매트릭스'가 사전에 정의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본적인 법률 해석"과 "전문적 세법 해석"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표준화된 인터페이스 규격도 필수적입니다. 서로 다른 AI 시스템들이 필요시 연동할 수 있도록 표준 API 규격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이는 향후 시스템 확장이나 업그레이드 시에도 호환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공통 성과 측정 체계의 개발도 중요합니다. 각 AI 시스템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비교할 수 있는 지표가 있어야 지속적인 개선과 최적화가 가능합니다.
보안 정책의 일관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범용 AI와 전문 AI가 서로 다른 보안 기준을 적용한다면 데이터 공유나 시스템 연동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부 AI의 성공은 개별 시스템의 성능보다는 전체적인 생태계의 조화에 달려 있습니다. 범용 AI가 기본적인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전문 AI가 고도화된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두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진정한 디지털 정부의 모습이 구현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는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협력의 문제입니다. 처음부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각 구성요소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며, 서로 간의 협력 방식을 체계적으로 설계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앞으로 각국 정부들이 AI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적 완성도만큼이나 이러한 협력 체계의 구축이 중요할 것입니다. 부처나 기관 간 경계를 넘나드는 치밀한 사전 조율이야말로 진정한 AI 정부 구현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미국에서 정부 AI 이중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두 회사가 모두 한국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2025년 3월 Anthropic의 한국 진출은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 빌더 서밋'에서 케이트 젠슨 매출 총괄 책임자는 "올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본격적으로 투자하는 첫해가 될 것이며 한국에 지사도 만들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Anthropic이 한국어 성능 개선에 특별히 주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이크 크리거 CPO(인스타그램 공동창업자)는 "클로드가 한국어를 잘 활용해서, 한국의 B2B 기업뿐 아니라 B2C 기업도 클로드를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다"며 "모델을 개선하면서 한국어를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많이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콕스웨이브, 뤼튼, 링크알파, 클레온 등 한국 AI 스타트업들과 SK텔레콤, 라이너, 로앤컴퍼니 등 대기업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이는 Anthropic이 단순한 소비자 시장이 아닌 기업 고객, 특히 AI 기술을 활용한 B2B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OpenAI의 한국 진출은 더욱 공격적입니다. 2025년 5월 27일 제이슨 권 최고전략책임자는 "한국에 법인을 설립했고, 몇 달 내로 서울 지사를 열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은 도쿄와 싱가포르에 이어 OpenAI의 아시아 세 번째 거점이 되었는데, 이는 한국 시장에 대한 OpenAI의 전략적 중요도를 보여줍니다.
더욱 주목할 점은 OpenAI가 진출 과정에서 보여주는 다층적 접근입니다. 우선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카카오와는 전략적 제휴를 발표했고, 크래프톤과는 게임 AI 개발, SK텔레콤과는 통신 분야 AI 서비스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산업은행(KDB)과의 협력입니다. OpenAI는 KDB와 "국내 데이터센터 개발, 스타트업 육성 등을 위한 금융 협력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서 한국 내 AI 인프라 구축에까지 참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권 CSO는 "아랍에미리트(UAE) 정부와 체결한 것과 유사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한국 정부·기업과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OpenAI는 최근 UAE 국영 AI 기업 G42와 손잡고 아부다비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협력 관계를 맺었는데, 이와 유사한 모델을 한국에도 적용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319138300017?input=1195m
두 회사의 한국 진출이 단순히 B2C 시장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우선 타이밍이 절묘합니다. 한국 정부가 AI 도입을 본격화하는 시점에 맞춰 두 회사가 동시에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2025년 2월 기획재정부가 정부 부처 최초로 ChatGPT를 도입했고, 행정안전부가 범정부 AI 플랫폼 구축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AI기업들이 진훌하고 있는 것입니다..
OpenAI의 경우 더욱 직접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권 CSO는 방한 기간 중 여러 정당의 AI 정책 관계자들과 각각 만나 "국가 AI 인프라 확대 관련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정부 시장을 겨냥한 움직임입니다.
Anthropic 역시 Claude Gov를 통해 미국 정부 시장에서 성공을 입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비슷한 기회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국가안보 분야에서 Claude Gov가 보여준 전문성은 한국의 국가안보 분야 정부기관에게도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OpenAI와 Anthropic은 단순히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입증한 정부 AI 서비스 모델을 한국에 이식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미국 정부 시장에서 ChatGPT Gov와 Claude Gov를 통해 성공 경험을 축적했으며, 한국에서도 유사한 B2G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민간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 시장에 안착한 후, 정부 인프라 협력으로 확장하며, 최종적으로는 정부 AI 서비스 시장까지 진출하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러한 글로벌 기업들의 B2G 진출 전략에 대해 체계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정부 AI 생태계의 주도권을 글로벌 기업들에게 내어줄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시사점은 우리나라에게 새로운 선택의 기로를 제시합니다. 미국이 보여준 Horizontal AI와 Vertical AI의 체계적 분업 구조를 한국 실정에 맞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글로벌 AI 기업들의 B2G 진출에 대해 어떤 정책적 대응 전략을 수립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디지털 정부로의 도약을 이룰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