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AI, 중국 AI 위협론을 정면 제기하다
지난 6월 25일, OpenAI가 자사의 글로벌 어페어즈 뉴스레터 'The Prompt'를 통해 "Chinese Progress at the Front(전선에서의 중국의 진전)"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장 분석을 넘어, AI 기술 경쟁을 지정학적 대결로 규정하고 중국의 글로벌 AI 확산 전략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전선(Front)"이라는 군사적 용어를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OpenAI는 AI 기술 경쟁이 더 이상 평화로운 시장 경쟁이 아닌,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준전시 상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https://open.substack.com/pub/openaiglobalaffairs/p/chinese-progress-at-the-front?r=li6jw&utm_campaign=post&utm_medium=web
OpenAI가 집중 조명한 것은 중국의 AI 스타트업 Zhipu AI입니다. 이 회사는 중국 공산당이 2030년까지 AI 분야 세계 1위를 목표로 육성하는 'AI 호랑이' 중 하나로, 중국 정부로부터 14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Zhipu AI의 해외 진출 전략은 매우 체계적입니다. 첫째, LLM 인프라를 제공하여 각국 정부가 자체적인 대규모 언어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데이터 주권과 기술 독립성을 내세워 어필합니다. 둘째, 화웨이와 협력하여 턴키 방식의 완전한 AI 패키지인 "AI-in-a-box" 하드웨어 솔루션을 제공하여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원스톱 솔루션을 구축했습니다. 셋째, AI 규제와 관리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통해 중국식 AI 거버넌스 모델의 글로벌 확산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Zhipu AI는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기반으로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동의 UAE,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케냐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사우디 Prosperity7 Aramco 펀드가 4억 달러 투자에 참여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또한 두바이에 콘텐츠 안전 연구소를 설립하고, ASEAN 국가들과 공동 혁신 센터를 운영하는 등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 현지 생태계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 상무부는 올해 1월 Zhipu AI를 수출 통제 대상 기업 명단에 포함시켰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현대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Zhipu AI의 글로벌 확산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OpenAI가 이처럼 중국의 AI 확산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선 다층적 전략에 있습니다.
첫째, 이념적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OpenAI는 AI 기술 경쟁을 "권위주의적 AI vs 민주적 AI"의 가치 대결로 프레이밍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우위 경쟁에서 벗어나 가치와 신뢰의 경쟁으로 판을 바꾸려는 전략입니다.
둘째, 긴급성과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전선"이라는 군사적 용어를 통해 AI 경쟁의 긴급성을 강조하고, 정책 결정자들의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셋째, 정책적 지원 확보를 위한 여론 조성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와 동맹국들로부터 더 강력한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OpenAI는 이 글을 통해 자신들을 단순한 AI 기업이 아닌 "글로벌 민주주의 진영의 기술적 파트너"로 재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특히 AI 안전성 우려, 독점 논란 등으로 받아온 비판을 "더 큰 외부 위협" 앞에서 상대화시키는 효과도 노리고 있습니다. 즉, 자사를 문제의 일부가 아닌 해결책의 핵심으로 만들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OpenAI의 대응 프로그램과 3대 원칙 https://openai.com/global-affairs/openai-for-countries/
OpenAI가 추진하는 "OpenAI for Countries" 프로그램은 국가별 AI 패키지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책입니다. OpenAI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공일반지능이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자사의 미션을 글로벌 차원에서 실현하고자 하며, 세 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기술 리더십의 확장과 유지입니다. OpenAI는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AI 기술 분야에서의 선도적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미국이 구축한 민주적 AI를 촉진하기 위한 광범위한 국제 연합 구축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AI 인프라를 미국에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OpenAI는 현재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를 형성하는 데 있어 세계를 이끌 수 있는 독특한 기회"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이 기술의 리더로서 미국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적 가치, 투명성, 보안에 뿌리를 둔 AI 인프라의 글로벌 표준을 설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OpenAI는 "민주적 AI 레일 위에서 구축하기를 선호하는 국가들을 지원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AI를 배치하려는 권위주의적 버전의 AI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제공"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AI 모델과의 차별화를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OpenAI는 자사의 미션이 글로벌하지만,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민주적 AI를 가장 잘 발전시킨다고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적 파트너십을 확장하면서도 강력한 보안 표준과 파트너 생태계가 고도화된 AI 구축과 배치의 핵심으로 남아있도록 보장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OpenAI는 수출 통제를 감독하는 기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국제 파트너십이 최고 수준의 보안과 규정 준수 기준을 충족하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OpenAI for Countries 이니셔티브에는 파트너 국가들이 미국 내 Stargate 프로젝트 확장에 투자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OpenAI는 공익에 기여하고, 동맹을 강화하며, 미래 번영을 뒷받침하는 기술을 보호하는 글로벌 AI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기술 외교와 동맹 체계 구축을 의도합니다.
소버린 AI란 국가가 자체적으로 AI 기술을 개발, 통제, 운영할 수 있는 자주적 역량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AI 모델을 보유하는 것을 넘어, AI의 전체 가치사슬 - 데이터 수집부터 모델 학습, 배포, 운영까지 - 에서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AI 시대에서 소버린 AI는 단순한 기술적 독립성을 넘어 국가 안보, 경제 주권, 문화적 정체성과 직결되는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첫째, 기술 종속의 위험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핵심 AI 기술을 외국에 의존할 경우 언제든 공급 중단 위험에 노출됩니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도체 수출 제재나 구글이 화웨이에 대한 안드로이드 서비스를 중단한 사례처럼, 지정학적 갈등 상황에서 기술 공급망은 언제든 무기화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AI 핵심 기술을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경제 활동과 사회 시스템 전반이 마비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둘째, 데이터 주권 침해 문제가 심각합니다. AI 시스템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개인정보, 기업의 영업 기밀, 정부의 정책 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에 접근하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데이터가 외국 서버에 저장되거나 외국 기업에 의해 처리된다면, 국가 기밀이 유출되거나 외국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국가정보법처럼 민간 기업도 국가의 정보 수집에 협조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데이터 주권 확보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셋째, 문화적 편향성과 가치 왜곡의 문제입니다. AI 시스템은 학습 데이터와 개발자의 가치관에 따라 편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에서 개발된 AI가 한국의 역사, 문화, 언어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왜곡하여 표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나아가 권위주의 체제에서 개발된 AI의 경우 검열, 통제, 감시 등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을 수 있어, 민주주의적 가치와 충돌할 위험이 있습니다.
넷째, 경제적 종속 구조의 고착화 위험입니다. AI 기술의 핵심 가치사슬에서 배제될 경우 한국은 영구적으로 기술 수입국 지위에 머물게 될 수 있습니다. AI가 모든 산업 영역에 스며들면서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AI 기술 종속은 곧 경제 전반의 종속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무역 적자의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 전반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섯째, 국가 의사결정의 자율성 침해 문제입니다. AI가 정부 정책 수립, 사법 판단, 의료 진단 등 국가 운영의 핵심 영역에 활용되는 상황에서, 외국산 AI에 의존한다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외국의 기술과 가치 체계에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가 주권의 핵심인 자율적 의사결정권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안보 위협의 현실화 가능성입니다. AI 기술은 군사, 사이버 보안, 국가 인프라 운영 등 안보와 직결된 영역에 광범위하게 활용됩니다. 외국산 AI 시스템에 백도어나 악성 코드가 삽입되어 있을 경우,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AI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할 경우, 예상치 못한 오작동이나 보안 취약점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들을 고려할 때, 한국은 소버린 AI 확보를 위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외국 기술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기술에 대한 자주적 역량을 확보하면서도 국제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OpenAI의 "Chinese Progress at the Front"는 단순한 기업 블로그 포스트가 아닙니다. 이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태의 기업 외교이자, AI 기술이 지정학적 경쟁의 핵심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하는 환경에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미-중 AI 패권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의 전략적 선택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국익과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AI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주적 AI 역량의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기술 주권 없이는 진정한 선택의 자유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