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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최신 SaaS가 6개월 뒤 구식이 된다면?

공공 SaaS, '세입자'인가? 아니면 '디지털 국가의 건축가'인가?

by 서지삼

소프트웨어를 구독해서 쓰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는 이제 시장의 표준입니다. 넷플릭스처럼 월 요금을 내고 쓰는 편리함 덕분에 우리 업무 환경 깊숙이 들어와 있죠.


SaaS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의 약자로, 소프트웨어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구독'하여 빌려 쓴다는 개념입니다. 과거에는 워드나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CD나 파일 형태로 구매해 각자의 컴퓨터에 직접 설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SaaS 모델에서는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웹 브라우저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해당 소프트웨어에 접속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넷플릭스나 유튜브 프리미엄에 매월 요금을 내고 콘텐츠를 즐기는 것처럼, 소프트웨어 역시 월간 또는 연간 구독료를 내고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소프트웨어의 설치, 업데이트, 보안 관리 등 모든 복잡한 유지보수는 공급 업체가 전담하므로, 사용자는 항상 최신 기능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업무에 흔히 사용하는 구글 워크스페이스(Gmail, 구글 독스), 마이크로소프트 365 등이 모두 대표적인 SaaS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OpenAI나 Anthropic 같은 거대 AI기업이 Saas 기업을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ChatGPT나 Claude 같은 모델의 진화는 민간 SaaS 시장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생태계 포식자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만약 당신의 스타트업이 GPT 같은 AI 모델에 단순히 기능만 추가해서 제공하는 서비스라면, OpenAI가 직접 그 기능을 추가하거나 더 발전된 모델을 내놓으면서 당신의 사업을 쉽게 대체할 수 있다.(OpenAI is 'going to steamroll you' if your startup is a wrapper on GPT)"


샘 알트만의 이 경고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거대 AI 기업들이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지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의 말처럼, AI 기반 구축 전략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현재 모델의 한계 위에서 임시방편의 기능을 더하는 '전략 A'와, 파운데이션 모델의 기하급수적 발전을 전제로 핵심부터 다시 그리는 '전략 B'입니다.

알트만은 세상의 95%가 '전략 B'에 베팅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SaaS 스타트업과 이제 막 SaaS를 도입하려는 조직들은 '전략 A'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생존 전략의 문제입니다. 민간 SaaS 시장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근본적 변화와, 이를 뒤따르는 공공 부문의 위기는 모두 이 '전략 A'가 가진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민간 SaaS가 맞이한 세 가지 근본적 변환 : 파운데이션 모델의 거대한 그림자

민간 기업들은 AI 도입으로 인해 SaaS 사용 방식을 급격히 바꾸고 있는 반면, 공공부문은 여전히 전통적인 SaaS 도입 방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마치 같은 도로에서 한쪽 차선은 고속으로 달리고 있지만 다른 차선은 서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민간에서는 AI 기능 통합으로 인한 비용 구조 변화, 사용량 기반 요금제로의 전환, 심지어 SaaS를 포기하고 자체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내재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 공공부문은 아직도 연간 고정 예산과 전통적인 조달 방식에 머물러 있어, 이런 급변하는 민간의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https://www.saastr.com/the-939b-question-is-ai-eating-saas-or-feeding-it/


첫 번째 변환 : '비용'과 '정확성'의 역설적 관계 → '전략 A'의 명백한 대가


민간 B2B SaaS 기업들이 경험하고 있는 첫 번째 변화는 AI 기능 추가로 인한 비용 급증과 품질 불확실성의 동시 발생입니다. 이를 구체적인 숫자로 설명해보겠습니다.

기존 고객 관리 SaaS가 월 100달러로 제공되던 서비스에 AI 기반 고객 분석 기능을 추가하면, OpenAI API 사용료만으로도 월 300-500달러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사용량이 많은 기업의 경우 월 1,000달러를 넘어가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용이 급증해도 AI가 100% 정확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민간 B2B SaaS 기업들이 AI 기능 추가로 경험하는 비용 급증과 품질 불확실성은 '전략 A'를 선택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기존 SaaS에 AI 기능을 덧붙이는 것은,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OpenAI, Anthropic 등)에 막대한 API 사용료라는 '세금'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월 100달러짜리 서비스에 AI 분석을 추가하자 월 1,000달러의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비용을 지불하고도 100%의 성능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85-90%의 정확도는 '전략 A'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는 SaaS 기업이 핵심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채, 외부 모델에 의존하는 '래퍼(Wrapper)' 역할에 머물 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고객은 더 비싼 요금을 내면서도, 파운데이션 모델이 언젠가 해결해 줄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모순에 빠집니다.


두 번째 변환 : '고정요금제'에서 '가변요금제'로 전환 → SaaS 핵심 가치의 붕괴


두 번째 변화는 SaaS의 핵심 가치였던 '예측 가능한 고정 요금'에서 '사용량에 따른 변동 요금'으로의 전환입니다. 이는 SaaS 산업의 DNA 자체를 바꾸는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SaaS는 "월 사용자당 50달러"처럼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가격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AI 기능이 포함되면서 "기본 50달러 + AI 토큰 사용량에 따른 추가 요금"과 같은 복합적인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일부 기업들은 AI 사용량 제한을 두거나, 티어별로 차등 요금을 적용하는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용은 월 AI 쿼리 1,000회까지, 엔터프라이즈용은 무제한 사용이 가능한 방식으로 상품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SaaS의 핵심 가치는 '예측 가능한 비용'이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의 '전략 A' SaaS는 이 가치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API 호출량, 즉 토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변동하는 구조는 SaaS를 다시 예측 불가능한 IT 자원으로 되돌립니다.

이는 해당 SaaS 기업이 가격 결정권을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 가치는 자사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OpenAI의 API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기본료에 AI 사용료를 더하는 복합 요금제는 고객의 예산 수립을 어렵게 만들고, 이는 결국 고객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 즉 '전략 B'를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세 번째 변환 : '구매'에서 '자체 구축'하는 기업 등장 → 중간 상인의 종말


가장 극단적인 변화는 아예 SaaS 구독을 포기하고 자체적으로 AI 기반 솔루션을 개발하는 '내재화' 현상입니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인 클라나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클라나는 세일즈포스와 워크데이 같은 대형 SaaS 서비스를 해지하고 내부 AI 개발팀을 구성했습니다. 그 결과 직원 수를 5,000명에서 3,800명으로 줄이면서도 직원 1인당 연간 매출을 40만 달러에서 70만 달러로 증가시켰습니다. CEO는 "AI 에이전트와 AI 엔지니어 덕분에 대부분의 엔터프라이즈 SaaS 기능을 90% 수준으로 재구축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클라나는 세일즈포스 같은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내부 AI 팀을 통해 기업용 SaaS 기능의 90%를 자체적으로 재구축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비싼 돈을 주고 '래퍼' 제품을 살 이유가 없음을 증명합니다.

이는 샘 알트만이 말한 "우리는 그저 압도할 뿐입니다(We are just going to steamroll you)"라는 경고가 현실화되는 모습입니다. 기업들은 더 이상 특정 기능에 얽매이지 않고,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직접 활용해 자신만의 '전략 B'를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이 가속화될수록, 어설픈 AI 기능을 덧붙인 수많은 '전략 A' SaaS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https://www.inc.com/sam-blum/klarna-plans-to-shut-down-saas-providers-and-replace-them-with-ai.html


공공 SaaS, 어제의 방식을 도입하시겠습니까?

2025년 대한민국 공공부문의 디지털 전환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화두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디지털서비스 이용지원시스템을 통한 SaaS 계약 건수는 226건, 계약금액은 약 76억 원에 달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이미 작년 실적을 넘어설 기세로, SaaS 도입이 양적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우리가 도입하는 기술이 '전략 A'인지, '전략 B'인지를 냉정하게 점검해야 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마치 2026년형 자율주행 모델이 막 출시된 시점에 2024년형 수동 변속기 차량을 대량 구매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https://www.etnews.com/20250522000120


돌이킬 수 없는 기술 격차의 심화

가장 직관적으로 나타날 문제는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 사이의 기술 격차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보겠습니다.


2027년쯤이 되면 시민들은 일상에서 '전략 B'를 체감합니다. 민간 기업들과 일상적으로 거래하는 시민들은 AI가 제공하는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을 것입니다. 은행에서는 자연어로 질문하면 즉시 맞춤형 금융상품을 추천받고, 병원에서는 AI가 예약부터 진료 준비까지 모든 것을 자동화해 처리합니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AI가 개인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해서 원하는 상품을 미리 제안합니다.


그런데 만약 공공부문이 '전략A'에 머무른다면 어떨까요? 같은 시민이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여전히 복잡한 메뉴를 일일이 클릭해서 찾아들어가야 하고, 민원 신청서는 수십 개의 빈칸을 직접 작성해야 하며, 처리 결과를 확인하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경험의 격차는 시민들에게 공공서비스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민간 부문에서 '전략A'를 택한 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전략B'를 택해 살아남는 기업들은 AI 기술 발전에 따라 계속해서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겠지요. 만약 공공 부문이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으면 그 차이는 메우기 어려운 수준까지 커질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디지털 격차 문제가 개인 간에서 공공-민간 기관 간의 문제로 확대되는 것과 같습니다.


미래를 위한 공공 SaaS 전략 : '구매자'에서 '설계자'로의 전환

샘 알트만의 경고는 공공 부문 SaaS 도입 전략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서 핵심은 파운데이션 모델의 '무서운 발전 속도' 그 자체입니다. 오늘 최첨단 AI 기능이라고 판단하여 도입한 상용 SaaS가, 6개월 뒤에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일상적인 기능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그려보겠습니다. 한 공공기관이 1년여의 복잡한 조달 과정을 거쳐 수십억 원의 예산으로 '최첨단 AI 민원 분석 및 요약 솔루션'을 도입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솔루션은 시민들의 불만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핵심을 요약하는 훌륭한 기능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어느날, OpenAI나 Anthropic, 구글이 차세대 파운데이션 모델을 출시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새로운 모델은 별도의 솔루션 없이, API 명령어 한 줄만으로 기존 솔루션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깊이 있는 분석과 요약을 순식간에 해냅니다. 이 순간, 막대한 혈세를 들여 구축한 '최첨단 솔루션'은 하룻밤 사이에 그저 비싸고 번거로운 인터페이스로 전락하고, 이는 곧 거대한 파도에 값비싼 모래성이 쓸려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속도는 '한 번 구매하면 수년간 사용한다'는 기존의 소프트웨어 도입 공식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이는 결국 민간 기업이 파운데이션 모델 위에 얇게 포장만 한 '래퍼(Wrapper)' 서비스에 의존하는 전략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위험한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실은 공공 부문이 더 이상 '현명한 소비자'에 머무를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이제는 AI 시대의 '핵심 설계자'라는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는 당장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지금부터 길러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민감하고 중요한 서비스 영역만큼은, 특정 기업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가 주도적으로 핵심 기능을 구축하는 '인하우스(in-house)'를 중요한 전략적 선택지로 고려하고, 이를 위한 기술적·제도적 준비를 고민해볼만 합니다.


단순히 기술 트렌드를 따르는 것을 넘어,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고, 변화하는 국민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대한민국 고유의 행정 환경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궁극적으로 정부는 상용 SaaS의 '임차인'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국가 디지털 미래의 '건축가'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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