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만의 데자뷰 : CERN에서 CAIRNE로 이어지는 인재전쟁
유럽은 70년의 시간차를 두고 두 번의 과학기술 인재 위기를 맞았습니다. 첫 번째는 1940-50년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아인슈타인, 엔리코 페르미 같은 걸출한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촉발된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2010년대부터 본격화된 AI 시대의 인재 유출로, 구글, 메타, 오픈AI 같은 미국 거대 기술기업들이 유럽의 최고 AI 연구자들을 빼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 위기입니다.
흥미롭게도 유럽의 대응도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1954년 설립된 CERN(유럽핵연구기구)과 2019년 출범한 CAIRNE(유럽 인공지능 연구 실험실 연합)은 모두 '전 유럽 차원의 과학기술 협력을 통한 인재 확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70년의 시간차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유럽이 직면한 구조적 도전의 지속성을 보여줍니다.
CERN의 비전은 2차 대전 중에 시작된 미국으로의 브레인 드레인을 멈추고, 전후 유럽에 통합의 힘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1930-40년대 유럽을 떠난 과학자들의 명단은 그 자체로 현대 물리학사였습니다.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넌 아인슈타인, 페르미, 텔러, 바이그너 등은 미국을 과학 강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과학자 이주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종교적 박해가 아인슈타인과 엔리코 페르미 같은 저명한 인물들을 대서양 너머로 몰아냈습니다. 1950-60년대에도 이주는 계속되었는데, 미국이 국방 관련 연구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 과학적 우수성의 자기적 클러스터를 만들어 세계 최고의 두뇌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CERN 설립의 핵심 동력은 단순히 새로운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럽 과학자들을 미국에서 다시 불러들이는 '인재 회복 프로젝트'였습니다. 1940년대 후반 유럽은 2차 대전의 폐허에서 벗어나려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미국은 전쟁에서 물질적 피해를 덜 받았기 때문에 대서양 건너편의 빛나는 삶의 비전은 긴축과 비참함 속에서 살아가는 수백만 유럽인들에게 희망의 등대 역할을 했습니다.
브레인 드레인의 구체적 현실과 위기감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브레인 드레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영국 왕립학회에서 2차 대전 후 유럽에서 북미로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이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세계 대전 중에 많은 저명한 유럽 과학자들이 로스알라모스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전후에도 미국 과학이 여전히 우세했습니다. 인재의 "브레인 드레인"을 막기 위해 우려한 선견지명 있는 개척자들은 유럽이 비견할 만한 과학적 중심지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유럽 원자 연구 센터에 대한 아이디어의 씨앗이었습니다.
이지도어 라비의 결정적 역할과 구체적 제안은 CERN 인재 회복 전략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94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지도어 라비는 MIT 방사선연구소에서 핵심적인 전시 역할을 했으며, 절박한 과학적 필요가 어떻게 중요한 새로운 프로젝트로 변화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열린 UNESCO 총회에서 라비는 유럽 과학 연구소에 대한 아이디어가 아직 잠들어 있던 상황에서 이를 깨워 구체적 제안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선구자들의 인재 위기 인식과 대응 전략은 프랑스의 라울 도트리, 피에르 오제, 루 코바르스키, 이탈리아의 에도아르도 아말디, 덴마크의 닐스 보어 등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연구소 설립을 넘어서 체계적인 인재 확보 메커니즘을 설계했습니다. 이러한 연구소는 유럽 과학자들을 결속시킬 뿐만 아니라 증가하는 핵물리학 시설 비용을 공유할 수 있게 해줄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구상은 경제적 효율성과 인재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실제 인재 유치 메커니즘과 초기 성과를 살펴보면 CERN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50년대 후반 CERN에서의 실험들과 CERN 및 제네바에서 열린 주요 국제 물리학 회의들은 많은 미국 실험물리학자들에게 짧은 방문이나 더 긴 안식년 체류를 위한 유럽의 매력을 소개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막 종신 재직권을 얻은 리온 레더먼도 이들 중 하나였는데, 그는 CERN에서의 첫 체류 동안 많은 유용한 접촉을 했고 다시 돌아올 것을 결심하고 떠났습니다.
구체적 인재 회귀 사례들은 CERN 전략의 실질적 성과를 보여줍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일하던 젊은 유럽인들도 유럽 복귀를 위한 연구 기지로 CERN을 선택했습니다. 이들 중 몇 명은 나중에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잭 스타인버거는 1934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버클리, 컬럼비아, 브룩헤이븐의 전후 새 세대 가속기에서 주로 버블 체임버를 사용해 획기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CERN에서 스타인버거는 전자 검출기로 전환했습니다. 카를로 루비아는 피사에서 학위를 마친 후 CERN의 싱크로사이클로트론으로 가기 전에 약한 상호작용 물리학의 최전선 연구를 맛보기 위해 컬럼비아로 갔습니다. 이후 경력에서 루비아와 스타인버거는 대서양 양쪽에서 매우 주목받았습니다.
포용적 인재 정책과 국제적 지원 체계도 CERN의 인재 확보를 뒷받침했습니다. 포드 재단은 CERN 협약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 출신 과학자들도 연구소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대한 자금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CERN이 단순히 유럽 과학자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전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일 수 있는 진정한 국제적 연구 허브가 되도록 했습니다.
CERN은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과학기술 인재를 결집하는 '인재 허브' 역할을 설계했습니다. 먼저 물리적 인프라의 집중화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입자가속기를 건설하고, 개별 국가로는 불가능한 대규모 투자를 공동으로 추진했습니다. 둘째, 제도적 협력 프레임워크를 구축하여 12개 창립 회원국의 공동 투자와 운영을 실현했고, 군사적 목적과 무관하며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평화적 연구라는 명확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셋째, 인재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회원국 간 연구자 교류를 활성화하고 젊은 과학자들을 위한 국제적 연구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CERN은 설립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2023년 기준 2,666명의 과학기술행정 직원과 80개국 이상 기관에서 온 약 12,370명의 사용자를 수용하며, 명실상부한 세계적 과학자 집결지가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CERN이 '유럽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유럽 과학의 자신감을 회복시켰다는 점입니다.
70년 후 유럽은 새로운 형태의 브레인 드레인에 직면했습니다. 이번에는 정치적 박해가 아니라 경제적 유인이 주된 동력입니다. 라이덴 대학교의 홀거 후스 교수는 유럽 대학에서 연구자들이 빠져나가는 브레인 드레인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AI 브레인 드레인의 특징을 살펴보면, 규모 면에서 지난 5년간 지역과 부문 간 연구자의 가장 큰 순 유출은 국제 학계에서 미국 산업계로의 이동이었습니다. 방향성으로는 유럽 학계에서 미국 기업(구글, 메타, 오픈AI 등)으로의 이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속도 측면에서는 글로벌 AI 연구 생산량이 2013-2017년 연평균 12% 이상 증가한 반면, 전체 분야는 연 0.8%에 그쳤습니다.
후스 교수는 CLAIRE라는 이니셔티브를 공동 창설했으며, 이미 약 1,400명의 AI 전문가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AI에 대한 범유럽 협력을 강화하고 스위스 CERN 물리학 연구소와 유사한 규모의 중앙 최첨단 AI 허브 설립을 희망합니다. CAIRNE의 인재 확보 전략은 CERN의 모델을 AI 시대에 맞게 적용한 것입니다. 물리적/디지털 인프라의 집중화를 통해 "AI를 위한 CERN"이라는 대규모 AI 연구 허브 설립을 추진하고, 유럽 차원의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가치 중심 차별화를 통해서는 인간 중심적, 윤리적 AI 개발이라는 유럽적 가치를 강조하고,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닌 '책임감 있는 AI'라는 대안적 비전을 제시합니다.
범유럽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500개 이상의 회원 그룹과 조직을 결집하고, 연구 네트워크, 혁신 네트워크, 신진 연구자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s://cairne.eu/eu-ai-act/
범유럽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500개 이상의 회원 그룹과 조직을 결집하고, 연구 네트워크, 혁신 네트워크, 신진 연구자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s://cairne.eu/eu-ai-act/
공통점 : 유럽 통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
과학기술 투자의 공동화 측면에서 CERN은 개별 국가로는 불가능한 대형 입자가속기를 공동 건설했고, CAIRNE는 개별 국가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AI 거대기업들과의 경쟁에 대응합니다. 인재 풀의 확대 면에서 CERN은 유럽 전체의 물리학자들을 결집하여 미국과 경쟁했고, CAIRNE는 유럽 전체의 AI 연구자들을 결집하여 실리콘밸리와 경쟁합니다. 가치 기반 차별화에서는 CERN이 평화적 목적의 순수 과학 연구를 추구했다면, CAIRNE는 인간 중심적, 윤리적 AI 개발을 지향합니다.
차이점 : 경쟁 환경과 대응 전략
경쟁 주체가 변화했습니다. CERN 시대에는 국가 대 국가(유럽 대 미국)였다면, CAIRNE 시대에는 지역 대 글로벌 기업(유럽 대 빅테크)의 구도입니다. 인재 유출 동력도 달라졌습니다. CERN 시대에는 정치적 박해와 연구 환경이 주요 요인이었다면, CAIRNE 시대에는 경제적 유인과 기업 문화가 핵심입니다. 대응 시급성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CERN은 장기적 기초과학 투자로 점진적 회복이 가능했지만, CAIRNE는 빠른 기술 변화로 인해 신속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인재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럽의 조건
CERN에서 CAIRNE로 이어지는 70년의 역사는 유럽이 과학기술 인재 확보에서 직면한 도전의 본질적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각 시대에 맞는 창의적 해법을 찾아온 유럽의 역량도 증명합니다. CERN의 교훈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적 사고, 개별 국가의 한계를 초월하는 유럽 차원의 협력, 명확한 가치 기반 차별화에 있습니다. CAIRNE의 과제는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협력 모델 구축, 속도와 규모에서 실리콘밸리와 경쟁, 윤리와 혁신의 균형점 찾기입니다. 오늘날 CERN은 지식 추구에서 전 세계 과학자들을 결속시키고 있습니다. CAIRNE가 AI 시대에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유럽이 얼마나 과감하고 신속하게 투자하고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재 전쟁은 단순히 더 많은 돈을 쓰는 경쟁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환경과 비전을 만드는 경쟁입니다. CERN이 그것을 해냈듯이, CAIRNE도 AI 시대에 유럽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