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소풍 이정희 May 19. 2024

여름4,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표범처럼 킬리만자로산을 누비고 있을 아그라


8월 아프리카 탄자니아, 모시 타운의 척박한 땅에는 허름하다 못해 쓰러질 듯한 회색 토담집들과 크고 작은 바오밥나무, 할 일 없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한가한 남자들만 눈에 보였다.


  덜렁거리는 창문을 연 채 먼지투성이 도로를 하루 내 달려 킬리만자로산 입구인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했다. 검은 얼굴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건장한 남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들에게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짐꾼들이었다.


 우리는 젊고 인상이 좋으며 덩치가 큰 세 사람을 선택했다. 현지 안내인 아그라는 우리들의 무겁고 큰 배낭은 무게를 달아 짐보관소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필요한 침낭, 개인 짐들을 포터들이 매고 가니 가볍게 만다라 산장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열대 숲이라 공기도 맑고 습기가 많아서인지 처음 보는 관엽류 나무들이 엄청 많았다. 울창한 숲 속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이끼들과 고사리들이 화려하게 어우러져 제주 깊은 곶자왈과는 다르다.


 4시간 정도 올라가니 첫 번째 산장인 만다라 캠프가 보였다. 하얀 꼬리 원숭이들이 나무 위에서 여유롭게 우리들의 허덕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방을 채어가려는 듯 노려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점점 고도가 높아져서인지 나무들의 키가 자그마하고, 바람 부는 방향으로 가지가 뻗은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내는 저 작은 생명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밤에는 바람이 심하다며 텐트를 권하는 아그라의 권유는 뒤로하고 뾰족하고 예쁜 모양의 작은 방갈로에서 낭만적인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높은 산이라 밤은 빨리 오고 시차와 긴 여행의 피곤함, 약간의 고산증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소리 내어 웃으며 꿈같은 아프리카의 자유를 즐겼다. 외국인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삼삼오오 모여 기타를 치며 내가 좋아하는 비틀즈의 yesterday를 노래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와! 이곳까지 기타를 갖고 올라와서 여유를 즐기는 저 모습---'


  8월 킬리만자로 산의 한 밤 날씨는 뜨거운 낮과는 너무나 달랐다. 방갈로 엉성한 나무 벽 사이로 곡소리같이 윙윙윙 소리가 났다. 밤새 스며드는 찬바람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텐트를 마다하고 모양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을 후회해도 이제는 소용이 없었다.


 침낭에서 몇 시간째 뒤적이며 옷을 겹쳐 입다가 우비까지 입고, 비닐봉지로 발을 감싸도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해드랜턴을 끼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온통 시커먼 산장 주변에 사람들이 별자리와 일출을 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 뒤를 따라 숲 사이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산 만다라 산장에서의 밤은 춥고 길었지만 아름다운 밤이었다..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은 별들이 크고 작게 경쟁하듯 반짝였다.

 

 모두들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누군가의 구호에 맞추어 한꺼번에 해드랜턴을 껐다 컸다를 반복했다. 수많은 랜턴의 작은 불빛들이 모였다 흩어지며 춤추듯 움직였다.  


 칠흑같이 까만 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더니 저 멀리로 쏟아지듯 떨어졌다. 람들의 박수와 환호에 자리를 움직였다.

 멀리 지평선 끝자락에서 슬그머니 붉은빛의 꼬리가 넘실거렸다. 그리곤 눈 깜짝할 사이 붉은 해가 쑥 솟아올랐다.


 선잠에서 깨어 산장을 이리저리 서성거리다 탁 마주쳤던 눈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던 탄자니아 안내인 아그라가 참 궁금하다.

 그 남자는 1박 2일 내내 우리들의 든든한 보호자이자 사진사이고 요리사였다.


  함께 움직이며 어설픈 동작으로 웃기고 휘파람으로 동물들을 불러 모아 함께 멋진 포즈를 가르쳐주며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2002년 월드컵 구호와 아프리카 노래로 우리를 즐겁게 하였다.


 새벽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우리들에게 빵대신 신라면을 끓여 주고 얼른 맥심커피를 대접하여 깜짝 놀라게 했다. 우리는 모두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팁을 듬뿍 주었다.


 헤어질 때까지 눈치가 빠른 아그라는 먼저 다가가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무거운 가방을 몇 개씩 대신 매주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그는 팁을 줄 때마다 신나서 어깨가 들썩거렸고 행복해 보였다.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를 들을 때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남자 아그라를 생각한다.


 '날쌘  표범이 먹이를 찾아 킬리만자로산을 누비듯 가족들과 자신의 꿈을 위해 애쓰고 있을 그 남자 아그라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킬리만자로

                        조용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라라라랄----


" 감사합니다. 지구 소풍의 이야기는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펼쳐집니다. 다음 이야기를 꼭 기다려 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봄 4, 그리운 거리-포르투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