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길 32, 호주

시드니 7 - 역사

by 지구 소풍 이정희
하버브리지의 두 개의 국기

호주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보름 남짓 지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가는 곳마다 호주 국기 옆에 나란히 꽂힌 원주민 깃발이었다.

미술관이나 전람회 곳곳에 퍼스트 오스트레일리안(First Australian)(원주민)의 슬픈 역사의 사진과 그림들이 보였다. 멜버른과 시드니의 미술관, 박물관, 전시실, 거리 곳곳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의 슬픈 흔적들을 만나며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졌다.

원주민 소녀의 슬픈 눈빛과 화가 천경자의 소녀

사진 속 원주민 소녀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 천경자'의 소녀 슬픈 눈빛 보다 더 애틋하고 강렬하게 스며 번졌다.

'저 눈빛은 어떤 의미일까?'

대륙같이 넓은 섬나라, 대자연의 자원 부국으로 알고 있던 청정국가, 호주의 정체성에 대해 점점 궁금해졌다.

호주의 역사는 단순한 유럽 식민 국가의 건국사가 아니라, 수만 년간 이 땅을 지켜온 원주민이 겪은 식민 지배와 저항, 그리고 회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호주의 원주민(Aboriginal peoples)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Torres Strait Islanders)은 약 6만 년 이상 이 대륙에서 살아오며, 자연과 인간, 조상의 영혼이 하나로 연결된 세계관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었다.


1788년, 영국의 제1선단이 보타니 베이에 도착하면서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가 세워졌다. 영국은 호주를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즉 아무의 땅으로 선포하였다.

이후 원주민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식량과 물길이 차단되며 생존의 기반을 잃었다.


식민지 확장 과정에서 수많은 학살과 충돌이 발생했으며, 유럽인들이 가져온 천연두와 전염병으로 인구의 80~90%가 감소한 지역도 있었다. 이러한 폭력과 파괴 속에서도 원주민 지도자들은 게릴라 식 저항을 전개하였지만, 그들의 투쟁은 오랫동안 식민 기록 속에서 지워졌다.


19세기에 접어들며 각 식민지는 원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보호정책(Protection Policy)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질적으로 통제와 분리를 의미했다.

정부는 원주민 보호국(Protectorate)을 설치해 거주지, 노동, 결혼, 이동을 규제했고, 선교사들은 보호구역과 선교촌에서 원주민을 ‘문명화’한다는 명목으로 감시했다.


백인 사회에 동화되지 않은 원주민은 사회적 주변부로 밀려났고, 문화와 언어는 점차 사라졌다. ‘보호’는 실상 식민 통치의 도구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 아동이 가족에게서 강제로 분리되어 백인 가정이나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이른바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s)’는 호주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세대 간 트라우마와 정체성 상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인권 담론이 확산되면서 원주민의 권리 회복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1967년 국민투표를 통해 원주민이 공식적으로 호주 국민으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 이후 호주는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고 화해(Reconciliation)의 길로 나아가려 했다. 2000년 전국에서 열린 ‘Bridge Walks’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미안합니다(Sorry)”를 외쳤다. 2008년 케빈 러드 총리는 의회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도둑맞은 세대와 그 가족에게 국가적 책임을 인정했다.

있다.


결국 호주의 식민지 역사를 원주민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는 단순한 국가 형성의 과정이 아니라 침탈과 생존, 저항과 회복의 역사이다.

영국의 식민화 이후 원주민은 끊임없이 존재를 부정당했으나, 법적 인정과 사회적 회복의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와 문화를 되찾아가고 있다.


지금 호주는 백인이 제일 많고, 이민 온 다양한 인종들과 소수의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주민 인구는 2020년대에 호주 인구 2700만 명 중 80만 명 정도로 3.2% 차지한다. 그들은 거의 외딴 지역이나 섬 등에서 고립되어 어렵게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 대학교 내 박물관 첫 번째 전시실 - 원주민 투쟁의 역사

매년 이날 시드니와 주요 도시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자들이 ‘침략의 날’, '생존의 날'을 외치며 도심에 모여 시위를 벌인다.

6만 5000년 동안 호주에 살았던 원주민들이 백인들에게 주권을 빼앗긴 날이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오늘 호주의 날이 우리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오늘은 원주민 주권의 날이다”이라고 말한다.

호주 전역에 반성의 날로 삼거나 공휴일을 폐지하자는 제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호주의 날을 기념하는 사람들의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호주 사람들은 1월 26일 호주의 날에 원주민 발 색인 노랑, 초록색 옷을 입으며 그들에게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 박물관의 그림과 호주 알기 동영상

이제 호주 정부는 이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연대로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적극적으로 재수용하고 있다. 영어식으로 불렀던 지명도 다시 원주민 언어로 바꾸거나 병기하는 작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원주민들의 낮은 교육 참여와 힘들었던 취업 등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호주 여행 중에 절실하게 느낀 것은 역사의 진실에 솔직하게 대화하는 태도와 소수계층에 대한 인식, 다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문제였다.'


오늘날 호주가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화해를 넘어, 정의(Justice)와 진실 공유(Truth-Telling)의 실현이 필요하다.

원주민의 이야기는 호주의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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