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밀퍼드 1 - 퀸스타운에서 글레이즈 로지까지
아침 일찍 퀸스타운을 떠나 밀포드로 향한다. 전날 너무 일찍 잠든 탓인지 밤새 잠이 들지 않았다.
30분마다 깨기를 반복했고, 새벽 한 시가 지난 뒤부터는 눈꺼풀이 아예 감기지 않았다.
결국 블라인드를 올리고, 조용히 차를 마시며 어둠 속의 와카티푸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별도 달도 사라진 검푸른 물결만이, 깊은숨을 쉬듯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딸아이는 옆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엄마 또 못 잤지? 여행만 오면 흥분되고 설레나 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뭐든 일찍 서두르고 생각이 많은 게 습관이 돼서 그래. 직업병인가?”
딸은 살짝 혀를 찼다.
“이제 퇴직했잖아. 조금만 느슨해져도 돼. 오늘은 그냥… 여행자잖아, 엄마.”
그 말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정말 ‘교사였던 나’를 벗어던지고, ‘지금 이 순간을 걷는 사람’이 되고 있는 걸까.
아침을 먹고, 다섯 날 뒤에 다시 묵을 호텔에 가방을 맡긴 뒤 출발 장소인 국립공원 사무실로 향했다.
9시 15분 집합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도착한 우리 모녀. 역시 아무도 없었다. 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봐, 또 우리 일등이야. 엄마는 어디를 가도 제일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야.”
“그래도 늦는 것보단 낫지 않니?”
딸은 고개를 젓고 나직이 말했다.
“엄마, 때로는 천천히 갈 때 보이는 것들도 많아.”
그 말이 또 마음 한쪽을 건드렸다. 정년퇴직하고 이틀 후, 산티아고 순례길 1000Km를 걸었고, 이제 밀포드까지 왔는데…
나는 어쩌면 여전히 ‘빨리, 정확히, 많이’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던 건 아닐까.
9시 30분, 밀포드 단체버스를 타고 퀸스타운을 떠났다.
12시 반에 도로변 식당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밀포드를 가기 위한 유일한 식당이자 휴게실인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한 시간을 또 달렸다.
도로 양옆으로는 평지들판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대신 소와 양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집과 사람, 나무들은 거의 볼 수 없고 가축만이 이 넓은 대지의 주인이었다.
테아나우 다운 선착장에서는 쾌속선을 타고 또 한 시간을 달렸다. 이제는 가축대신 드넓은 호수를 둘러싼 산들과 잔잔한 물이 이곳의 주인이다.
보기만 해도 차가울 것 같은 시커먼 호수의 물은 고요했고, 그 위로 새하얀 구름들이 마치 말없이 우리를 응시하듯 걸터앉아 있었다.
초여름이라 따가운 햇살에 온몸을 가리고 있는데 피오르드랜드 산 정상엔 아직도 하얀 눈이 암벽 틈새마다 고운 손길처럼 남아 있었다. 딸이 창가에 기대며 말했다.
“와… 이런 풍경을 보려고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겠지?”
“그래. 지금까지 그렇게 오래 보아 온 누군가의 사진 속 풍경이 아니라, 우리 눈으로 그대로 담으려고 얼마나 오래 기다린 거니!”
그러면서 속으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40여 년 아이들을 가르치며 바쁘게 살았고, 늘 남의 성장만 바라보던 내가 나 자신을 다시 배우는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선착장에 내려 이 멋진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폴대와 신발을 정성껏 소독해야 했다. 제주 곶자왈을 떠올리게 하는 숲길을 조금 걸어 글레이즈 로지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내일의 여정을 기다리게 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와 달리 해가 뜨겁게 내리쬐어 일행들의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숙소 직원들이 경쾌한 환영인사와 함께 건네준 차가운 환영 주스와 과일은 갈증에 단비처럼 스며들었다.
출렁다리가 걸쳐진 작은 클리톤 강이 앞에 흐르고, 사람들은 긴 이동 끝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강가로 걸어갔다.
나도 얼른 반바지를 입고 따라갔다. 괴성을 지르며 신나게 수영하는 노년의 여인들이 어린아이처럼 보이며 부러웠다. 딸이 그런 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도 수영할까? 엄마도 물 좋아하잖아.”
“저런 노인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지? 오늘은 오래 걷진 않았는데도 마음이 더 많이 움직인 것 같아.”
딸은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엄마, 무슨 생각해?”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아직도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 여행 와서도 서두르고, 확인하고, 걱정하고…
그런데 네가 오늘 계속 천천히 가자고 말해주니까,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딸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엄마, 이제는 쉬어도 되는 사람이야. 내가 옆에 있잖아.”
그 말에, 기나긴 시간 동안 마음속을 꽉 채웠던 긴장과 책임감이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딸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이곳 벌레들 때문에 다시 숙소로 들어가야겠다, 엄마. 그래도 오늘 참 좋았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밀퍼드인데. 아주 좋았어. 너랑 함께라서 더.”
로비 옆 작은방에 밀퍼드 박물관이 있다. 50년간의 기록이 보관되어 있었다. 벽에 태극기와 한국의 돈, 깃발들이 제일 많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약간 극성이다. 그런데 의외로 방명록에는 한국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나는 한글과 영어로 이렇게 썼다.
'드디어 마추픽추에서 알았던 경이롭다는 밀퍼드에 왔어요!'
저녁식사 후 자기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진행자는 사람이 제일 많은 뉴질랜드인, 호주인, 미국인, 영국인, 유럽인, 아시아인 순서로 호명하였고 동양인 네 명을 모두 불러 일본인 부부 다음으로 우리를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이정희입니다. 저는 40여 년을 열심히 근무하다 작년 8월 교사를 정년퇴직했어요. 그리고 바로 9월,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생장에서 산티아고, 묵시아, 피스테라까지 1075km를 걸었어요. 드디어 오늘, 오랜 꿈인 밀퍼드 트레킹을 위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영어를 잘못하여 메모를 보고 읽었지만 모두들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딸이 옆에서 속삭였다.
“엄마, 잘했어. 멋있다.”
그 한마디가, 그 어떤 박수보다 나를 뜨겁게 했다.
이곳은 정말 인터넷이 전혀 안 되는 곳이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가 확인하며 포기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또 열어본다. 매일 글쓰기도 핸드폰 메모장에 쓰고 블로그도 올릴 수 없다.
밤 10시, 산속 숙소(로지)는 서울 오후 6시 같은데 전체 소등이 되었다. 오늘 나는, 정말 조금은 느려진 것 같다.
딸과 함께 걷는 이 여행이
‘새로운 나’를 데리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