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밀퍼드 3 : 폼플로나 로지에서 퀸틴 로지까지
지난 주 뉴질랜드 5번(밀퍼드 4번)이 실수로 먼저 발행되었습니다^^
밀퍼드 트레킹의 셋째 날은 숫자만 보면 가장 만만해 보인다.
고작 15km. 하지만 이 짧은 거리를 가장 오래 걸었으며, 가장 깊은숨을 끌어내야 했던 하루였다.
길의 길이와 시간의 무게는 언제나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날 딸과 나는 온몸으로 배웠다.
다른 날보다 한 시간 빠른 오전 7시 반, 아직 몸이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 폼플로나 로지를 나섰다.
어제처럼 졸졸거리며 갈 길을 안내해 주던 맑은 개울은 사라지고, 대신 높은 지형 탓인지 물은 흐르지 못한 채 진녹색의 연못이 여기저기 고여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색이었다.
멈춰 있는 물을 보며, 문득 나 자신의 시간을 떠올랐다. 은퇴 이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나날 속에서 나는 과연 흐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고여 있었을까!
민타로 헛에 이르자 벌써 지친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간식을 먹으며 앉아있는 사람, 배낭을 베개 삼아 팔자로 누운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이곳에만 산다는 키위 새가 사람의 숨소리 같은 울음으로 쉼터 주변을 맴돌았다. 낯선 땅에서 듣는, 더 낯선 소리였다.
원시림을 지나 패스헛까지 이어진 길은 6마일이 넘는 급경사였다. 자갈과 바위가 섞인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졌고, 그 한가운데 맥키논 파스가 버티고 있었다. 험한 길이었지만 모두가 자기 호흡으로 여유롭게 걸었다.
속도가 늦은 딸과 나를 스쳐 지나가며 각국어로 건네는 인사와 응원만이 길 위를 오갔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Hello?”
“Are you okay?”
맥키논 파스로 향하는 오르막은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크고 작은 자갈과 바위로 뒤섞인 급경사는 몸보다 먼저 마음을 지치게 했다.
그러나 이 길에는 경쟁이 없었다. 앞서가는 사람도, 뒤처진 사람도 모두 즐거운 듯 여유로운 속도로 걸었다. 스쳐 지나가며 건네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거의 다 온 것 같아.”
라는 짧은 안부와 응원이 이 길에서는 충분한 연대가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처럼.
힘들어 멈춰 서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한 걸음을 떼게 되는 순간이 많이 있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볼 때마다 다른 풍경은 서로 숨바꼭질을 했다. 운무는 협곡과 폭포를 잠깐 보여주었다가 이내 가려버렸다. 마치 알 수 없는 인생이 늘 그렇듯, 쉽게 허락하지는 않겠다는 듯이.
뿌연 구름 속에서 퀸틴 맥키논의 추모탑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이 길을 처음 열었을 누군가의 고단함을 상상했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필요와 도전, 반복에 시작된다.
함께 걷던 딸은 이날 따라 몸이 좋지 않았다. 가벼운 트레킹일 거라 생각하고 따라나섰는데, 실은 험한 등산에 가까운 하루였다. 힘든 숨을 고르며 딸이 말했다.
“엄마, 지리산 천왕봉이랑은 정말 다르네. 모습도 날씨도 모두 많이 다르네.”
등산과 트레킹을 좋아하는 나 역시, 오늘은 지금까지의 여정 중 손에 꼽을 만큼 힘들었다.
딸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초보자에게 이런 길을 함께 걷게 한 것이.
‘그래도… 함께여서 고마워.’
정상에서 가이드에게 건네받은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은 그날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산의 바람에 몸이 흔들릴 만큼 추웠지만, 손에 쥔 컵의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살아가며 우리가 기대는 것도 어쩌면 이런 것인지 모른다.
'대단하지 않은 위로, 그러나 분명한 온기. 작은 행복들---'
12시 반, 패스헛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이들이 떠난 뒤였다.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서덜랜드 폭포로 향하는 길은 포기해야 했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담담했다. 오늘은 더 이상 걷지 않아도 충분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길에서 본 꽃 한 송이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이 높은 산에서 피어 있는 작은 꽃. 그 꽃은 애써 버티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성과를 남기지 않아도, 그저 내 자리에서 피어 있을 수 있을까.
서덜랜드 폭포 사이드 트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제는 퀸틴 로지까지 하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했다. 클린턴 계곡과 아더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철계단과 나무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크고 작은 폭포들이 연속으로 나타났고, 마른 고사목마다 이끼가 두텁게 붙어 있었다. 물과 시간의 흔적이었다.
함께 걷던 딸은 그날 유난히 힘들어했다. 가벼운 트레킹일 거라 생각하고 따라나섰는데, 실제로는 험한 산행에 가까운 하루였다. 숨을 고르며 딸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엄마, 나 때문에 속도가 이렇게 늦어서 어쩌지?”
그 말속에는 놀라움과 고단함, 그리고 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사실 나는 딸에게 매우 미안했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이라고, 딸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쉽게 판단한 것은 나였다. 인생에서도 종종 그랬다.
내 기준으로 괜찮은 길이,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 그럼에도 딸은 묵묵히 걸었다. 내 뒤에서, 때로는 내 앞에서.
퀸틴 로지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폭포는 끝내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무사히 이곳까지 완주했다. 딸은 여전히 미안해했지만, 나는 말했다.
“오늘은 이걸로 충분해.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해냈어”
여행이 남기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감각이고, 추억이 아니라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걸은 시간, 나눈 숨결, 서로를 살피던 침묵.
가장 힘들었던 하루가 가장 오래 남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서로를 가장 많이 느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안다.
인생의 어떤 구간은 짧지만 가장 힘들고, 그래서 가장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걸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