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길 39, 뉴질랜드 6

엄마와 딸의 밀퍼드 5, 사운드 마이티 픽 로지에서 다시 퀸스타운까지

by 지구 소풍 이정희

이제 안녕, 밀퍼드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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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점심 도시락 요리

트레킹의 마지막 날, 아침이 느긋하게 깨어났다. 어제처럼 새벽 5시 반에 알람을 밀어내며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7시가 되도록 깊고 무거운 잠을 잤다. 몸은 여전히 밀퍼드 원시림의 경사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바다에 내려와 있었다.


사흘 내내 같은 트레킹 복장을 입고 땀과 비를 나눴던 사람들이, 오늘 아침엔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눅눅한 등산화 대신 가벼운 일상복을 꺼내 입으니 몸도 마음도 솜사탕처럼 가벼워졌다.
마치 지금까지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마친 여행자들 같았다.


새벽마다 분주하게 싸던 점심 도시락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갓 구운 토스트의 고소한 향기 속에서 평소보다 더 달콤하고 다정한 인사들이 오갔다.
“Have a good day.”
“See you again.”
짧은 인사말에 마음이 한 박자 더 머물렀다.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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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내도

유람선 대합실에는 밀퍼드사운드의 개발 역사가 전시돼 있었다.

이곳이 누군가의 고생과 시간의 축적 위에 놓인 풍경이라는 사실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바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단순한 전시물들을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딸은 잠시 멈춰 섰다. 이곳에 닿기까지의 시간과 손길을 생각해 보았다.


대합실 가득 이 먼 밀퍼드 사운드의 개척사를 담은 낡은 사진들 너머로 이 거대한 자연을 이렇게 일궈낸 이들의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작고 사소한 사람들의 처절한 삶과 간절한 용기가 이곳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낸 것이다. 100년도 더 된 흐릿한 사진들에서 깊은 험난함과 밝은 희망이 보였다. 밀퍼드의 위대함을 더욱 빛나게 하고 기억하게 할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8시 40분, 밀퍼드사운드 항구에서 크루즈에 올랐다. 한적했던 지금까지와 달리 밤새 도착한 관광객들로 여러 대의 크루즈가 분주했다.

저 건너 한국 대표 여행사의 빨간 깃발이 보이고 이곳까지 온 화려한 복장의 열혈관광객들이 아이들처럼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여러 가지 포즈로 위, 아래로 패션화보를 찍으니 통행이 막히고 그런 모습을 외국인들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 나도 저랬던가? 부끄럽다!'


새뻘간 배가 남극과 하늘빛 밀퍼드의 빙하가 녹아 만든 청록 빛 바닷물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면 새하얀 기암절벽을 맞아주었다.

그 차가운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른 너럭바위 위엔 물개 무리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을 등단 삼아 오순도순 누워 등을 기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어릴 적 햇살 좋은 겨울 낮 담벼락에 기대어 서로 머릿니를 잡아주던 생각이 났다.


배가 다가가자 물개 한 마리가 놀라지도 않고 느릿하게 고개를 까딱인다. 마치 고생했다며, 다시 오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환송 인사 같아 배위의 사람들이 함빡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수없이 지나갔을 크루즈 배들을 바라보며, 물개들은 일상이듯 고개를 끄덕였다. 염치 좋은 배들이 엔진을 끄고 더 가까이 다가서자 물개들의 웃음도 멈추고 아예 등을 돌리고 바위에 죽은 듯 누워버렸다. 아까 그 거리가 딱 좋았는데 사람들의 욕심이 너무 과하여 물개의 미소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8월의 끝자락, 여름을 준비하는 햇살에 산정상의 눈들이 녹아내린다.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마치 밀퍼드가 흘리는 서러운 눈물 같았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모자를 꾹 눌러쓰면서도 나는 갑판을 떠나지 못했다. 이 장엄한 풍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가두고, 온몸의 감각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남기고, 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흠뻑 이곳을 담고 싶었다.

‘이제 다시는 이 먼 뉴질랜드의 깊게 숨어있는 밀퍼드사운드에 오지 못할지도 몰라.’


3박 4일 내내 자주 마주치던 미국인이 우리 배에 한국인 직원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밀퍼드에서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다. 반갑고 궁금한 마음에 얼른 아래층에 있다는 매점을 찾았다. 커피와 기념품을 파는 작은 매점에서 배낭에 기념으로 달 명찰을 고르며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세요?”
그는 무표정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서툰 한국말, 어두운 표정, 짧은 시선, 능숙한 영어로 보아 교포 2세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건넸지만, 그는 많이 서툰 한국말로 짧게 대답하며 관심 없다는 듯 얼른 계산을 해주었다.


뉴질랜드 남쪽 끝, 이 멀고 깊은 협곡까지 흘러 들어온 그의 사연은 무엇일까. 그의 무심한 눈빛 뒤에 숨겨진 삶의 무게가 밀퍼드의 깊은 물빛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배에서 하루하루 물과 바람을 마주하며 일하고 있을까.’
그의 무표정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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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헬기 안내도

1시간 반의 크루즈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퀸스타운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깊은 협곡 사이로 이어진 길은 외길이 많아 반대에서 달려오는 작은 자동차들을 먼저 보내곤 출발했다. 유일한 터널인 호머 터널은 일방통행이라 신호를 오래 기다려야 했다. 도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원도 산길은 비교가 안될 만큼 발끝이 저릿해질 만큼 아찔하였다. 이런 곳에 도로를 만들다니 한번 더 놀랐다.


중간 기착지인 테아나우에서 여러 명이 내렸다. 요트를 타며 쉬는 휴양지가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다국적 가족도, 미국에서 온 네 형제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인 삼 형제와 여동생인데 77세인 큰형은 뚱뚱한 몸에 지병이 있는듯한데 늘 웃으며 힘들어도 끝으로 완주해 박수를 받던 사람이었다.


그들을 보면 늘 가슴이 뭉클하였다. 저 나이에 미국 전역에 살던 네 명이 함께 이곳을 오다니. 그리고 항상 명랑하여 유모어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체력적 한계를 견디며 매번 마지막까지 완주하던 그들의 뒷모습에 모두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버스 창밖으로 그들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 여행이란 결국 각자의 속도로 내려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굽이굽이 다섯 시간을 넘게 달려 오후 3시 반, 퀸스타운 센터에 도착했다.


4명의 가이드와 뜨겁게 포옹하며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내내 진심 어린 미소로 우리를 이끌어준 그들의 배려에 마음 깊이 찬사를 보냈다. 다른 사람들도 아쉬움 속에서 네 명의 안내인에게 환호와 박수로 고마움을 전했다.

그들의 진심은 산액가이드라는 직업이 부러울 정도로, 이 여행을 더 인상 깊게 만들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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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들과 함께

출발하기 전 묵었던 호텔에서 무사히 컴백했다며 호수가 보이는 방으로 업그레이드 해주었다.

오랜만에 끓인 매콤한 라면, 구수한 누룽지, 달고 짭조름한 멸치볶음, 목을 타고 콸콸 넘어가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곁들여지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딸과 잔을 부딪치며 속삭였다. 소박한 식탁 위에서 밀퍼드사운드 트레킹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딸, 우리 정말 함께 잘 해냈어.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말자

이 길, 이 바람, 이 시간.
그리고 딸과 나,
같은 풍경을 같은 속도로 내려왔던 이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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