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길 40, 뉴질랜드 7

엄마와 딸, 다시 퀸스타운에서 트와이젤까지

by 지구 소풍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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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타운 시가지 퀸즈타운 스카이힐 케이블카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퀸스타운 스카이힐 전망대로 향했다.
케이블카에 오르기 전, 승강장 입구에는 케이블카 시작인 1961년부터 1967년 개통까지의 기록이 흐린 흑백 사진 속에 박제되어 있었다.

나와 세월을 같이 하는 이곳도 사람처럼, 아니 더 혁신적으로 참으로 많은 변화로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켜본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덕스럽게 소비되는 여행지 트렌드에서, 이곳은 그래도 천천히 쌓아 올린 시간 위에 서 있었다.

스위스처럼 빨리 변하지 않는 편안함이 있는 곳, 언제든 그대로 아늑한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호반 휴양지 퀸스타운은 뉴질랜드 모험 관광의 본거지다.
번지 점프, 루지, 제트보트, 사륜바이크, 화이트 워터 래프팅, 강 서핑, 스카이다이빙, 협곡 스윙까지, 이 도시는 끊임없이 ‘자유 자유 자유라’고 속삭인다.


우리나라 영화배우 이병헌 주연의 영화〈번지점프를 하다〉촬영지라는 사실이 이곳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쳐졌다.

뛰어내림과 선택,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삶. 결국 산다는 건 중력에 순응하거나, 혹은 거스르며 나만의 궤적을 그리는 일 아닐까.


전망대에 서자 끝없는 바위 협곡과 옥빛호수 사이에 자리 잡은 퀸스타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 며칠 동안 내가 오가던 길이 손톱만큼 작게 보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도시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여행이란 늘 그렇다. 많이 보았다고 해서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겉표지만 훑고는 그 속내를 다 읽었다고 오해하며 사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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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타운 한인 교회, 거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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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는 언제나처럼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햇살처럼 흩어져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와 햄버거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그 줄마저 이 도시의 느긋한 리듬처럼 보였다.


길가에서 체리를 파는 동양인 여성을 보았다. 탐스럽게 붉은 체리보다도, 가늘고 고운 그녀의 모습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저 여인은 어떤 사연을 품고 이 먼 곳에서 저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한국에서는 비싼 값에 쉽게 손이 가지 않던 방울토마토 크기의 체리 한 봉지가 뉴질랜드 돈으로 5달러이다. 톡톡 씹히는 맛은 상큼하고 달았고, 여행자의 마음은 지갑이 가벼워져도 더없이 즐거워졌다.

기다림조차 여행의 일부가 되는 곳, 퀸스타운은 그런 마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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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뉴질랜드 역주행 운전하기

퀸스타운을 떠나 렌터카로 두 시간 반, 트와이젤로 향했다. 뉴질랜드는 운전석과 주행 방향이 우리나라와 반대다.
딸은 작년 일본 홋카이도 '역주행 공포의 기억을 떠올리며, 운전 방향 주의사항을 코팅해 준비해 왔다. 대시보드에 붙이고 나니 우회전도, 로터리 통과도 생각보다 수월했다. 딸의 똑똑함 덕분에 나의 ‘우회전 울렁증’은 마법처럼 사라졌다. 역시 최고의 내비게이션은 친절한 구글지도보다 딸의 잔소리(?) 섞인 세심함이다.


‘역시 내 딸은 똑똑하고, 최고의 여행 파트너다.’


작은 섬나라일 거라는 나의 오해는 캔터베리 대평원의 광활함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양과 소뿐이었다. 양의 수가 인구의 열 배라더니, 길가에 서 있는 양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묘한 열패감을 느꼈다.


“아르헨티나 끝없는 목장의 게으른 소들과 뉴질랜드의 저 양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이 팔자 좋은 녀석들한테 기꺼이 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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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젤 숙소 주변

트와이젤은 남섬 맥켄지 분지에 자리한 작은 타운이다. 마운트 쿡 국립공원과 레이크 푸카키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화려하진 않지만 넉넉하고 실속 있는 마을이다.
밤이 되면 가로등은 보이지 않고 별이 쏟아져 대신하고, 낮에는 둘러싼 산과 나무들이 말을 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 숙박도 많지 않지 매력적인 곳이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왼쪽에는 서던 알프스의 거친 바위 협곡이 끌어안는다. 굽이굽이 도로 오른쪽에는 가도 가도 색이 다른 옥빛 빙하 강물이 멈춘 듯 흐르며 가까이 와보라고 손짓한다. 자동차 정면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마운트 쿡의 하얀 눈 능선이 숨바꼭질하듯 고개를 내밀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길은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자유 그 자체였다.

이곳에서의 운전은 눈을 감아도 핸들을 놓아도 될 것 같은 딸과 나, 우리만의 길이다.

유명하지 않아도, 도착하지 않아도, 새롭다는 충만감

오늘이 내게 준 가장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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