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길 43, 뉴질랜드 10

엄마와 딸, 북섬 오클랜드에서 투랑기까지

by 지구 소풍 이정희

오클랜드에서 와이토모로 향하는 길은 남섬에서 달리던 도로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엄마, 여기 진짜 뉴질랜드 맞아?”

딸이 차창 밖을 보며 물었다.


퀸스타운의 조용함을 떠올리다 오클랜드 시내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도시를 벗어나는 데만 한참이 걸렸고, 거대한 고속도로는 출근길처럼 정체되어 있었다.

“엄마, 뉴질랜드는 양이랑 소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도. 이렇게 차가 많을 줄은 몰랐어.”

우리가 그려온 뉴질랜드는 이미 백미러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한 시간을 달려 국도로 접어들자 풍경이 달라졌다. 갑자기 길은 느슨해지고, 풀을 뜯는 소 떼와 양 떼가 한가롭게 시야를 채웠다. 푸른 초원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 이거지.”
딸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뉴질랜드 오는 거잖아.”

척박하고 웅장했던 남섬과는 달리, 북섬은 한결 부드럽고 목가적이었다. 왜 이곳을 ‘청정 자연’이라 부르는지 단번에 알 것 같았다.

동굴 입구 한국인 안내인의 사전 설명

와이토모 동굴은 오클랜드에서 남쪽으로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반딧불이 동굴로,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 곳이다.

“엄마, 반딧불 실제로 본 적 있어?”
“아니. 사진이나 동영상에서만.”
“그럼 오늘이 처음이네. 약간 시험 보는 기분이야.”
괜히 긴장됐다.


와이토모는 마오리어로 ‘물’을 뜻하는 ‘와이’와 ‘구멍’을 뜻하는 ‘토모’가 합쳐진 이름이다.

1887년, 영국 탐험가 프레드와 마오리 추장이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발견이라는 게 참 신기해. 원래 있던 건데.”
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연은 늘 거기 있었고, 인간이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이다.


안내센터에 도착하자 본격적인 동굴 여행이 시작됐다. 30분마다 20명씩 입장하는 시스템이었고, 한국인 안내원도 있었다.
“엄마, 오늘은 영어안내 안 들어도 되겠다.”

동굴 입구에서부터 중간 지점까지는 걸어서 이동하며 설명을 듣고, 이후에는 배를 타고 깊숙이 들어간다.
“노 안 젓네?”
“줄로 당기네. 생각보다 아날로그야.”
오히려 그 점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동굴 안에는 오랜 세월이 만든 석순과 종유석이 신비롭게 펼쳐졌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한국이나 중국의 동굴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소리를 크게 내도 울림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젊은 안내인이 설명 도중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꽤 잘 불렀다.
“엄마, 이 사람 부업 가수 아니야?”
“모르지 동굴 전속 가수일지도.”

“엄마, 동굴인데 왜 소리가 안 울려?”
“구멍이 많아서 소리를 먹어버린대.”
“동굴이 흡음재네.”
딸의 표현에 웃음이 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안내인이 걸음을 멈추고 랜턴을 껐다.

'순간, 어둠. 그리고 탄성.'

천장을 가득 메운 작은 빛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마치 별이 동굴 안으로 쏟아진 듯했다.
“와…”
딸이 숨을 죽였다.
“엄마, 별이 움직여.”

실처럼 매달려 미세하게 흔들리는 수많은 반딧불들. 그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이 동굴 전체를 숨 쉬게 만들고 있었다.


도시에서만 살던 나는, 이렇게 살아 있는 빛의 군락을 처음 보았다. 눈이 아닌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전용 보트를 타고 동굴 안 강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며, 우리는 그 신비로운 빛과 더 가까워졌다. 말이 사라진 시간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엄마, 이건 사진보다 기억이 더 낫다.”
딸의 말이 정확했다.

어느덧 동굴을 나와 숲길을 걸으며, 마치 고생대의 자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고사리들은 쥐라기공원이나 아바타에서 본 듯했다.


세 시간 운전해 와서 6만 원의 입장료를 내고, 한 시간 만에 끝난 동굴 투어이다.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지만, 세상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라 무엇보다 강렬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두 눈에, 평생 처음으로 또렷이 담은 하루였다.


오늘과 내일 머무는 투랑기는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관문이다. 온천과 송어 낚시로 유명한 마을.
“마을 입구에 송어 간판이 제일 먼저 보이네.”
“여기는 정체성이 확실하다.”


이곳에는 뉴질랜드 자연보호부가 운영하는 국립 송어 센터도 있다. 무지개송어를 잡기 위해 전 세계 낚시꾼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그리고 내일.
1887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통가리로 국립공원.
하이킹 마니아들의 평생소원이라는 그 코스.


“엄마, 내일 진짜 걷는 거지?”
“그래. 제대로.”
“후회 안 하겠지?”
“힘들어도, 기억은 남을 거야.”


하루만 지나면 드디어 뉴질랜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트레킹이다.

투랑기 마을 입구는 송어 표시로 숙소에 있는 자연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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