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길 45, 뉴질랜드 12

엄마와 딸, 통가리로 국립공원 Tama Lakes 코스

by 지구 소풍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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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센터가 있는 화카파파 빌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키위새가 그려져 있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서부터는 언제든지 키위가 나올 수 있는 곳이라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 그만큼 자연 상태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을 보고 느끼고 즐기기 위해 이 먼 뉴질랜드 트레킹을 하는 거지!"

“엄마, 여긴 뉴질랜드 같지가 않아. 다른 행성 같아.”


통가리로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딸이 중얼거렸다. 짙은 구름 아래 펼쳐진 검붉은 화산지대, 나무 한 그루 없이 열려 있는 고원, 얼굴을 베듯 스쳐 가는 바람. 이곳은 우리가 상상하던 초록빛 뉴질랜드가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구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숨 쉬고 있는 땅처럼 보였다.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아름다운 자연과 천 년 마오리족의 역사가 어우러진 세계 최초의 유네스코 복합문화유산(자연유산이면서 문화유산)이자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가장 큰 볼거리는 세 개의 화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절경이며 이곳의 화산 활동은 2백만 년 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일 년 내내 눈이 덮여 있고 묘한 기운이 가득한 산 정상을 쉽게 볼 수 있다.


통가리 트레킹은 15분 코스부터 총 4-6일이 걸리는 코스까지 다양하다. 원래는 총 8시간이 소요되는 19.4km의 대장정 알파인 크로싱 코스에 도전을 하려고 했다. 그. 런. 데 26일은 큰 비로, 27일은 강풍으로 코스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엄마, 정말 아쉽지 않아?”

“조금은. 그래도 산이 허락하지 않는데 억지로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


연박을 하며 기다렸는데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대신 Tama Lakes 코스를 가기로 결정했다. 이 호수는 유명한 통가리로 노던 서킷(TongariroNorthern Circuit)의 일부로, 왕복 6시간 정도의 당일 코스로도 인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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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서둘러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입구를 출발했다. 큰 비 온 후, 다음 날이라 춥고 바람이 불었지만 힘내서 출발했다.~

오솔길 나무숲을 지나 물이 흐르고 완만한 산길 고개에 들어서자 세차게 바람이 휘몰아쳤다. 우리는 그래도 비가 오거나 햇볕이 쨍쨍한 무더위 속에서 걷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이야기하며 격려했다.

산봉우리마다 잔뜩 낀 먹구름에 비가 올 듯하고 아무리 둘려보아도 사방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다. 중간에 있는 개울가는 어제 하루 종일 온 비로 물이 불어 조심해야 했다. 오랜만에 돌 징검다리를 건너며 서로 손을 잡아주면서 열심히 걸었다.


“여기 이끼 때문에 미끄러워. 잡아.”

“혼자였으면 물에 빠졌을지도 몰라. 네가 엄마를 잡아 주니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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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하늘이 맑아지나 싶더니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뉴질랜드는 지금 여름이지만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겨울을 앞둔 늦가을 같았다. 바람까지 거세지면서 점점 더 앞으로 걷기가 어려워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꿋꿋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우리를 앞질러 갔다.


'뉴질랜드 어디서나 보이는 통가리로의 만년설들! 이 색다른 풍경을 보기 위해 이 머나먼 뉴질랜드의 여정을 시작했나 보다.'


밀퍼드사운드, 후커 밸리와 아주 다른 대 자연의 모습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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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 타마 레이크

타마 레이크는 루아페후와 나우루호에의 중간인 새들(saddle ) 봉과 봉 사이의 비교적 낮은 말안장같이 생긴 부분. 안부)에 위치한 호수다. 모두 화산의 폭발로 인해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호수들이다. 하부 호수는 해발 1,240m, 상부 호수는 1,314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호수들은 분화구에 생긴 화구호라 독특한 색을 띠고 있다.


완만한 루아페후에서 도로까지 수 km 뻗어 내린 산자락이 산 정상부와는 달리 우아한 모습을 보인다. 호수의 초록색 물빛이 장관이다. 어느덧 정상 8부 정도에 위치한 하부 타마 레이크(Lower Tama Lake)에 도착했다. 딸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파른 언덕 위의 상부 타마 레이크에 오르기를 포기했다.

급경사를 오를수록 바람은 점점 거칠어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오르고 또 올랐다. 상부 타마 레이크(Upper Tama Lake)에 도착했다. 산행 시작 세 시간 반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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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 타마 레이크

상부 타마 레이크가 있는 정상에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아무도 없는 정상에 혼자 버티고 서있기 힘들었다. 상부 호수는 더 높은 곳에 작고 깊게 숨겨져 있다. 특히 상부 타마 레이크의 물빛은 기묘하다. 에메랄드 같다가도, 구름이 지나가면 잿빛으로 변하고, 햇빛이 스치면 화산광물이 섞인 초록빛이 금속처럼 반짝인다. 지구의 속살이 드러난 눈동자 같은 호수이다.


지금까지 이런 바람은 처음이었다. 겁이 나더니 토할 것 같아 작은 바위에 기대 누군가 올라오면 도움을 청하려고 한참을 바닥에 앉아있었다. 무서웠고, 동시에 이상하게 마음이 비워졌다.

산봉우리 폭 패인 속에 있던 고인 호수 물이 강풍에 하얗게 출렁거렸다.


'가까이 오지 마. 얼른 내려가.'


중심이 흔들리는 와중에 모자나 장갑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밑에 있는 딸에게 너무나 놀라워 설명이 안 되는 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산해 다시 만났을 때 딸은 나를 보며 웃었다.


“엄마, 얼굴 완전 바람맞은 사람 같아.”
“위는 완전 다른 세계야.”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트레킹은 안전 준비를 잘해야 한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힘들다. 지금부터는 하산이다. 하부 타마 호수 기슭에 도착 후 도시락을 먹었다. 강풍에 온몸이 얼고 배고픔에 허겁지겁 먹었다.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도전에 성공한 나.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화카파파 빌리지로 되돌아가는 고원지대에서 세찬 바람에 다리가 휘청거린다. 그래도 정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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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길이 있고 길이 기다린다! 밀퍼드, 통가리로,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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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숙소인 로토로아 호수 리조트에 도착하기 전 시내 대형마트에 들러 2박 3일 먹을 것들을 샀다. 착한 가격과 품질의 뉴질랜드 소고기에 고추장 상추쌈, 맥주 한 잔이 힘든 트레킹의 피로를 풀어주는 피로회복제였다. 하루 종일 몸을 때리던 바람이 그제야 멀어졌다.


“엄마, 오늘 나 좀 어른 된 것 같지 않아?”
“응. 나도 네가 든든했어.”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서로를 더 많이 보았다.


이 여행은
풍경보다 대화가 오래 남는다.

그 기억으로 우리는 다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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