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길 46, 뉴질랜드 13

엄마와 딸, 로토루아 - 레드우드 트리 워크의 오전과 밤

by 지구 소풍 이정희

로토루아는 ‘휴양’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다.

북섬의 관문 오클랜드에서 차로 두세 시간을 달리면, 창밖 풍경이 서서히 바뀐다. 고속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던 회색 도시가 사라지고, 대신 연둣빛 초원과 잔잔한 호수, 물안개가 감도는 숲이 나타난다.

딸은 운전을 하며 “여긴 정말 영화 속 같아”라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일상의 속도를 내려놓으며 로토루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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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대표적인 곳이 레드우드 포레스트(산림욕장)이다. 130년 된 캘리포니아 레드우드(붉은 나무)들이 울창하여 여러 가지 레포츠 활동이 유명하다. 포레스트는 1890년에 여러 가지 자생 나무와 외래종 나무의 조림 적합성을 연구하기 위한 시험장으로 조성된 곳이다.


숲에는 레드우드뿐만 아니라 여러 고사리 나무들과 야생화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이 워낙 규모가 크고 인상적이라 숲 전체를 레드우드 숲이라고 부르곤 한다.

마치 수백 개의 기둥이 푸른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성당 같았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붉은 껍질에 닿아, 숲 전체가 은은한 와인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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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레드 우드 트리 워크이다.

첫 번째 출렁다리에서부터 완료까지 평균 30~40분이 걸릴 정도이다. 이 생태 관광 산책로는 길이가 700m이고, 28개의 현수교와 27개의 플랫폼을 지난다.

우리가 오른 레드우드 트리 워크는 이 숲의 심장을 걷는 길이다. 높이 9미터에서 20미터 사이, 공중에 매달린 28개의 현수교와 27개의 플랫폼이 700미터에 걸쳐 이어진다. 첫 번째 출렁다리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 딸이 내 소매를 꽉 붙잡았다.

“엄마, 많이 흔들려.”

“괜찮아. 나무들이 우리를 잡아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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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번역함

아래로 내려다보니 양치식물 고사리들이 겹겹이 숲바닥을 덮고 있고, 그 위로 시간의 층처럼 쌓인 나무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위쪽에서는 레드우드의 가지들이 서로 얽혀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출렁다리 한 줄에 8명 이하가 건너야 하는데 다리 중간중간 놓인 데크마다 이 숲의 역사와 나무들의 생태를 설명하는 글과 의자가 있다.

우리는 그 앞에 나란히 서서 천천히 읽었다. 자연과 나무, 그리고 이 땅을 사랑하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진심이 문장마다 배어 있었다. 그 마음이 부럽고, 많이 부끄러웠다.


이 길을 설계한 독일인 미스터 슈미트는 나무에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해 특별한 매듭과 철강 와이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딸은 손으로 와이어를 살짝 만지며

“나무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이렇게까지 만들었다니 멋지다”

고 말했다. 그 말이 왠지 이 뉴질랜드 여행 전체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쓰며 함께 걷는 시간.


오전 촉촉한 레드우드 트리 워크도 참 좋았지만 어두운 밤 조명이 켜진 거대한 숲의 모습도 많이 궁금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영화 아바타의 숲 같았다는 말과 비싼 입장료가 아깝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야간 개장은 밤 9시부터 10시 반 까지라고 하여 숙소에서 쉬다 밤 8시에 다시 오기로 했다.


뉴질랜드는 밤 8시가 넘어야 해가 지고 어둑해지는데 평일 야간 8시인데도 벌써 대기 줄이 길었다. 입장료가 주간 40불, 야간 40불씩이니 하루 80불(65,000원)이나 지불했지만,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나무와 숲, 자연, 더 나아가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진심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어 부끄러우면서 정말 부러웠다. 뉴질랜드의 상징 고사리 나무 사이에 여러 종류의 새 형상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조명이 설치되어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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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숲이 열리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데이비드 트루브리지가 만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새롭고 독특한 관광 체험이라고 한다.

숲 속 새와 동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30여 개의 등불이 나무 사이에 떠 있었고, 수천 마리 반딧불처럼 작은 빛들이 레드우드의 어둠을 수놓고 있었다. 나무들은 더 이상 나무가 아니라, 영화 아바타 속 생명체처럼 숨 쉬는 존재가 되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천천히 걸었다.

지금까지 보아 온 환상적인 영화들이 떠올랐다. 딸의 얼굴에 파란빛과 초록빛이 번갈아 스쳤다.

“엄마, 이거 꿈 아니지?”
“지금이 진짜야.”

'실제 내 앞에서 그 이상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의 야경이 떠올랐지만, 이곳의 스케일과 현장감은 비교할 수 없었다. 130년 전, 척박한 섬나라의 황무지에 먼 캘리포니아에서 씨앗을 가져와 심은 사람들. 그들이 가꾼 숲 위에 오늘날의 사람들이 빛과 이야기와 일자리를 얹어 세계의 여행자를 불러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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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의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았다. 130년을 자라 하늘에 닿은 나무들 아래서, 우리는 겨우 몇십 년의 시간을 함께 걷고 있었다.
'서로를 다치지 않게 지탱하며 뿌리를 내리는 것, 아마 가족도 숲도 그렇게 간격을 유지하며 지켜봐주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레드우드 숲을 나오며 나는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이 여행이 남긴 것은 사진도 풍경도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비추는 작은 빛 하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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