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소풍 이정희 Jun 02. 2024

봄 9, 경주

역시 경주는 초파일이다

엄마가 좋아하던 경주의 아름다운 꽃들


 여행은 시기와 날씨가 결정적이라는 생각은 이번에도 꼭 맞았다.

 비 온 다음 날 태양이 작렬하는 우유니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의 데칼코마니 세상을 보는 것처럼. 석가탄신일 경주를 여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경주 어디에서든 화려한 연등과 부처님의 미소 같은 작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 여러 문화재들 근처에는 여기저기 빨갛게 핀 작약꽃 무리들이 유난히 많아 기억이 난다. 멋스러운 건물들과 담장, 고분, 석탑들과 활짝 핀 작약들이 참 잘 어우러져서 나도 모르게 환성을 자아냈다. 서울에서 보았던 그저 그런 모습과는 달리 마치 신라시대부터의 세월을 담아 고즈넉하게 잘 어우러져 멋있어 보였다.

 늙은 모습 사진이 예쁘지 않다고 사진 찍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엄마도 첨성대 근처에서는


  "큰딸아?  저기 작약꽃이 참 풍성하고 고우니 내려서 꽃구경하자"

 하시며 자동차에서 내리셨다. 꽃들을 어린 아기들을 바라보듯 속삭이며 웃으시고  소녀처럼 여러 자세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셨다. 80세를 바라보시던 나의 엄마는 고운 작약꽃을 보시며 당신의 젊은 시절이 그리우신지 한참을 그렇게 섰다 앉았다 하셨다.


 엄마가 소담스러운 작약 꽃송이들을 살살 건드리며  수북한 속내를 보여 주었는데 나와 딸은 깜짝 놀랐다. 멀리서 바라보았던 겉모습과는 달리  꽃 속의 풍성하게  가득한 털들 모습이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꽃 속이 이렇게 털뭉치처럼 많으니 꽃송이가 튼실할 수밖에 없으리라.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와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떠오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화단의 꽃들을 자주 보았지만 식물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 작약 때문에 많이 부끄러웠다.


 '말없이 한 계절 사는 꽃도 이렇게 속이 실한데 나는 어떤 모습일까?'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경주문화재 곳곳 풍성한 작약꽃들의 멋스러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지금은 걸음이 불편한 우리 엄마의 꽃에 입맞춤하던 소녀 같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나도 엄마처럼 점점 꽃을 좋아하는 걸 보니 나이가 들어 가나보다. 특히 빨갛고 노랗게  튼실한 작약이 제일 좋다. 주변 사람들 중 핸드폰 프로필이 꽃사진이 많은 것도


 '나이 들어 고운 꽃이 되어 관심받고 싶어 그런가!'

 '5월은 환호작약!'


안개 자욱한 토함산 숲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가 해가 밝아지자 멈추었다. 석굴암을 오르는 길은 언제나처럼 쉽지 않았다. 토함산을 휘돌아가는 굽이길은 안개가 자욱하여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도로 옆으로 낭떠러지가 아찔했지만 알록달록 연등들이 길을 안내한다. 안개 때문에 탁 트인 동해바다가 안 보여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희뿌연한 숲길을 걷는 것도 색달랐다.


 석굴암을 해체하고 복원한 후 남은 돌덩이들이 길 옆에 놓여 있어 한참을 보았다. 천년 이상의 세월을 버티어내느라 무디어지고 이제는 덩그러니 나무 밑에서 이끼에 뒤덮인 채 비에 젖어있었다. 마치 늙어 버려지는 사람을 보는 듯 참으로 안타까웠다.


 일 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이면 석굴암 내부를 개방한다고 해설자님이 말한다. 기도를 간절히 드린 후 일어서며 부처님을 바라보면 가장 인자하신 미소를 어제는 볼 수 있다고 하는 말에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다음에는 석가탄신일에 석굴암에 꼭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불국사 멋진 말총머리 해설사

 넓은 불국사의 풍성한 연등들은  부처님의 탄신을 더욱 즐겁게 하고 가르침을 새기게  한다. 수없이 매달려 있는 연등의 꼬리표를 읽으며 사람들의 소원을 자세히 보았다. 연등만큼 많은 사람들은 분주히 대웅전과 다보탑, 석가탑 사진을 찍으며 신라의 뛰어난 예술과 과학의 우수성에 감탄을 했다.

 항공우주 엔지니어출신이라는 불국사 해설사님의 멋진 외모와 박학하고 재치 있는 해설은 지나가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는 이가 어찌나 많았는지 모를 정도였다.

대릉원

 대릉원과 천마총, 황리단길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비는 살짝 오다 말다 하며 5월의 나무들과 사람들을 촉촉하게 만든다. 왕들의 거대한 무덤과 화려한 부장품들을 보며 문화적 가치보다는 고달팠을 국민들의 삶이 더 많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깨진 기와 담장 예술로 탄생

 대릉원 옆 황리단길은 넘쳐나는 사람들과 차량 통행, 무질서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한옥에 맞지 않을 것 같은 여러 가게들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예전의 고즈넉한 고도 경주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활짝 피어 살랑살랑 웃으며 맞아주는 꽃들은 걷는 사람들을 꽃처럼 만들고 경주의 깨어진 기와는 담장의 멋진 벽화가 되었다.

 햇살이 따뜻하여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힘이 차오른다. 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쉴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우선한다.  


 한창 물이 오른 작은 연못의 화려한 꽃들이 하늘거린다. 빨간 나비가 이리저리 날 다니는 듯 참 곱기도 하다.


  '정말 저렇게  예쁜 꽃 닮은 빨간 나비도 진짜 있지 않을까!'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눈에 많이 띄는 작약 꽃무더미는 초파일이라 대웅전 앞에 주렁주렁 매단 알록달록한 종이 연꽃등들과 참 잘 어울렸다.


 보는 사람들에게 합장을 해주는 행자님들이나 스님들의 태도는 절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다. 절에서만 볼 수 있는 이런 진중한 모습들에 계속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기와에 소원을 빌고 싶어 진다.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풍광 좋은 산속 절의 차분한 분위기는 경외심이 들게 하여 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한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 천년의 도시 경주는 제일 풍성하고 화려하다.'

5월 경주는 꽃이다



작가의 이전글 봄 8, 천리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