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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Jul 06. 2024

여름 11, 러시아 3 -모스크바, 샹트페테르부르크

화려하지만 무뚝뚝한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러시아 국내선인 레드윙스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공항에 내렸다.  

 러시아 사람들의 무뚝뚝함에 익숙해져서인지 승무원들의 세련된 외모와 미소가 의외였다.

 선선하거나 추웠던 이르쿠츠크와 달리 모스크바 8월은 덥고 건조했다.


 붉은 광장 근처 오래된 호텔은 전화를 하여 신분 확인 후 철문을 열어주었다. 둘러보아도 호텔이 아닌 오래된 공장 입구 같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3층 로비까지 가방을 들고 가파른 회전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오래된 지붕너머 보이는 붉은 광장의 건물들과 성당의 모습!'


  에어컨은 모양뿐이고 선풍기와 냉장고도 없었다. 예약할 때 본 사진들과 전혀 달랐다.

 이렇게 낡고 불편한 공간은 볼거리에 대한 자극이 된다. 아침 일찍 나서서 밤늦게 들어가니 여행의 시간을 번다는 생각을 한다.

 시내 중심지라 편리한 점이 많았다.

굼백화점 거리에서 여러  관광객들을 지켜볼 수 있고 지하철역이 가까운 곳에 있어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붉은 광장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았던 '꺼지지 않는 불꽃'을 찾아 보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세계대전에서 죽은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타오른다는 불꽃이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을까?

 예전 우리 나라 촛불시위가 생각난다. 광화문 광장에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을 거라는 LED 촛불 논란이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살아있는 불꽃은 어찌할것인가?

엄청 큰 지하철 역사

 우리는 모스크바에서 3일을 머무르며 갈 곳이 많았다. 지하철 3일 패스를 최대로 이용할 것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935년에 개통될 정도로  아주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깊고 화려하다. 유사시 방공호로 사용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시민들이 타는 열차는 작고 낡아 냉방도 안되어 창문을 열고 달린다. 마치 모피옷 입고 슬리퍼 신은 느낌이랄까?'

 낡은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고 경직된 것이 닮아 있다.


 '누군가 뚝 건드리면 참고 있던 무거운 침묵이 불꽃처럼 터질 것 같이---'

(붉은 광장)  (우주박물관의 이소연우주비행사 사진)

 세계 최고라는 러시아 우주박물관, 크렘린 궁전과 붉은 광장, 보석고, 고리키 공원, 모스크바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유람선을 탔다. 

 생각과 달리 옛스런 멋진 모습을 그대로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어 러시아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내가 가본 도시중 서울의 건물들은 아무 생각 없는 곳 중 하나로  항상 안타까운 곳이다. 

 성 바실리 성당은 1000 루블(2만 원)이나 내고 들어갔는데 볼 게 별로 없었다. 저긴 겉의 모양만 보고 기대하면 실망하기 딱이다.


 성 바실리 대성당은 테트리스 초기화면에 나오는 그 성당인데 완공되면서 러시아 황제가 건축가들의 눈을 뽑아버린 걸로 유명하다. 다른 데에 똑같은 거 못 만들게 하려고 그랬다나. 

모스크바 야경

 다음 날은 이즈바일로고의 벼룩시장, 볼쇼이 서커스를 관람하고 평양고려식당을 들렸다.


 볼쇼 서커스 홈페이지가 열리자마자 비싸지만 좋은 자리를 예약했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기에.

 역시 평일인데도 드넓은 서커스공연장이 만석이다.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한다.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 호텔 공연장과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

 중국 서커스처럼 기묘한 것을 보여주며 함성과 안타까움을 자아내지 않았다.  보는 내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감동의 스토리가 있다.  화려함과 놀라움에 절제의 여운까지 돋보였다.


 조련사의 눈빛에  훈련된 사자와 말, 곰과 호랑이들이 순한 아기처럼 움직인다. 


 '사람과 동물이 얼마나 많은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신기하고  즐겁고 감탄스러웠다. 지금까지 걷고 보고 모험을 하는 여행만 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즐기는 공연인데 큰 만족이다. 

 무엇보다 공연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들의 진지한 얼굴은 시선을 빨아들이며 고정시켰다. 다른 곳을 안 보아도 공연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무대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팬터마임은 모두를 크게 웃게 하였다. 옆자리의 아이들이 어찌나 재미있게 웃는지 배우들보다 그 아이들을 더 오랫동안 보았다. 


 '볼쇼이 서커스 정말 대단하다! 진정한 프로다.'



샹트페테르부르크 야경

 모스크바에서 4시간 고속열차를 타고 러시아 2의 도시 샹트페테르부르크에 갔다.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곳이다. 러시아 혁명 전까지 오랫동안 수도 레닌그라드라 불리던 추위와 혁명의 도시. 


 마추픽추 가는 열차처럼 잘 차려입은 직원이 좌석까지 식사를 가져왔다. 깔끔하게 차려진 스테이크정식이다.


'아, 역시 무뚝뚝한 맛이다!'

왕의 식탁

 다음 날 지하철을 환승하고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푸시킨시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을 갔다.


 차르의 여름 별장이자 그 유명한 호사스러운 '호박의 방'이 있는 곳이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러시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눈부신 건물 중 하나이다.

 특히 전체가 보석 호박(琥珀)으로 만든 판과 거울, 금박을 입힌 장식으로 치장된  '호박의 방'이 유명했다.


 한때는 세계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고도 불렸던 이 방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내부 장식이 완전히 벗겨져 약탈당했다.  

 그 내용물은 이후 자취를 감추어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호박을 이용해 다시 꾸며 2003년 문을 열었다. 보석의 화려함 그뿐이다.

 다음날 오전엔 기차를 타고 표트르대제의 여름궁전에 갔다. 러시아는 겨울이 10월~4월로 길다. 그러니  황제들이 여름에 피서 오던 여름궁전은 잠시 머무는 곳이다.


 파리의 베르사유궁전을 모방했다는데 아주 많이  화려하다. 프랑스의 문화를 동경하여 지어졌던 독일의 궁전들과  많이 비교된다. 여기저기 모두 금칠에 요란하다. 변방 졸부들 모습이 연상되었다. 


 ' 여러 궁전을 위해 지독한 추위와 가난에 힘들었을 힘없는 사람들---'  

 

에르미타주 미술관

 오후엔 엘리사베타 여제의 겨울 궁전에 갔다. 방이 1,000개가 넘는 유럽에서 가장 큰 건물인데 에르타미주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관과 신관 모두 단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얼마나 큰지 안내 지도를 자세히 살펴도 길을 잃을 정도이다.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이어폰 소리가 안 들려 작품설명도 제대로 못 들었다.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 보았던 우리나라 패키지 관광객들이 떠올랐다. 여행사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 시에는 사전 교육이 꼭 필요하다.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나도 저 중국인들과 일행이라고 생각할까 봐 멀리 피해 다녔다.

에르미타주 미술관

 밤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보고 싶어 다시 갔다.  

 그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이제야 미술관이 빛이 난다. 저 화려한 조명이 없어도, 궁전이 아니어도, 가득하고도 넘치는 훌륭한 예술품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이제야 거대하여 대단한 러시아가 와닿는다.  프랑스 루브르와 영국의 대영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이라는 명성에 고개를 끄덕인다. 


 '남의 것을 약탈했던, 돈으로 사 왔든 간에---'


 러시아가 다시 가고 싶다면 그건 에르미타주 때문이다.

 

'부럽고 부러워서 꼭 다시 가고 싶다!'

도개 운하 야경

 샹트페테르부르크는 42개의 섬이 3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된 운하의 도시이다.


   겨울에는 강이 꽁꽁 얼고 4월에서 11월 한시적으로 큰 배들의 통행을 위해 새벽 1시에서 4시 다리가 열린다. 기다리고 있던 큰 배들이 줄지어 통과하며 신호를 보낸다.

 한밤중  유람선을 타면 4개의 다리가 열리는 광경과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 볼 수 있다.


 우리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밤 1시 호텔을 나와 선착장이 있는 강변을 걸었다.

 늦은 밤 길거리에서 술을 먹거나 누워있는 남자들이 많았다. 딸과 내가 걷고 있는데 휘파람을 불거나 손짓을 했다. 예약해 놓은 유람선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갈까 여러 번 망설였다.


'이런 분위기인 줄 알았으면 늦은 밤 유람선을 타지 말걸 ---'


 러시아는 참 넓고 크다. 어디를 가든, 뭐든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하지만 그늘은 낡고 허술하고 허전했다.  


 사람들도 닮았는지  체격은 크지만 작아 보이고 투박하고 무표정했다. 

  낯섦이 많이 익숙해졌다. 

익숙해서 떠나온 나라와 사람들이 새록새록 그리워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 보다---


( 인생길 여름 이야기
다음 주 일요일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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