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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May 17. 2024

여름3, 티깔 밀림-과테말라

마야 밀림의 나를 깨우는 소리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는 멕시코와 카리브해에 인접한 찬란했던 마야문명의 핵심지이다. 마야문명은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고 발달한 언어 체계와 고도의 문화를 누렸다.

 과테말라 플로레스는 고대 마야의 가장 오래된 도시 티칼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끝없는 밀림 속에 숨어있는 고대 마야의 2,000여 개의 피라미드는 마야인들이 신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제물로 바치던 제단들이다.     

세이바 나무

 새벽 4시 반, 벌써 티칼 숲 속 신전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깜깜한 숲 속에서 깜박이는 작은 불빛과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열대 밀림은 바람조차 숨 쉴 곳이 없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고 하얀 유령처럼 생긴 세이바 나무가 위협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경계했다. 마야인들은 세이바 나무를 생명의 나무, 즉 우주의 나무로 여겨 신성하게 모셨다고 하는데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핸드폰 불빛을 따라 가파르고 낡은 피라미드 돌계단을 더듬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무수한 잔별들의 끝과 끝없이 펼쳐진 밀림이 서로 닿아있었다. 여기저기 뿔처럼 솟은 6개의 신전은 세월에 삭아 푸른 이끼와 굵은 뿌리와 엉켜 옛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피의 역사가 스며든 깨어지고 낡은 돌계단에 앉아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신전의 꼭대기에서 태양의 신에게 제물이 되어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 사람들이 떠올랐다. 천년 아름다운 마야문명이 잔인한 제사장들에게 흔들리며 힘을 잃고 스스로 스페인 침략에 무너져간 모습이 그려졌다.

     

 어둠 속 무수히 많은 별빛과 재규어들의 깜박이는 눈빛에 정신을 붙잡았다. 밀림을 지키는 맹수 자칼의 포효하는 소리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세웠다. 우리를 에워싼 건장한 안내인의 장총에 의지하여도 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들 정도였다. 현지 안내인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오늘 자칼의 숨소리와 울음소리가 대단하다며 무섭게 흉내 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가끔 어둠에 달려드는 섬뜩한 바람은 사냥감을 노리는 자칼의 접근처럼 느껴졌다.     


 마야문명의 중심지, 드넓은 티깔의 밀림 지평선에 검붉은 운해들이 시뻘건 해를 쥐고 펴고 숨기고 내밀며 술래잡기했다. 태양이 밀림 지평선 가운데 뾰족하게 솟은 피라미드에 걸쳐 앉아 오묘하게 변신한다. 억울하게 제물로 죽었을 마야인들의 한바탕 한풀이 춤인 듯했다. 밤하늘 별빛 군무와 밀림의 아침맞이, 소름마저 돋았던 밀림의 일출 장관을 아직도 기억한다.


 광활한 밀림을 깨우던 자칼의 숨소리와 울음은 소심하게 웅크리고 있던 나를 깨우는 소리였다. 해야 하는 일, 책임과 의무 속에서 살아온 지난날. 내 마음속에는 항상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 갈망을 마음속 깊은 곳에 밀어 두고 돌봐주지 않았다. 50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씩 나의 바람과 소망들을 꺼내어 바라보고 실천하고 있다.


 ‘이 정도면 됐지 뭐, 뭘 더 얼마나 더 하려고 그래?’


나를 깨우는 소리를 떠올린다.


'다시 웅크리지 않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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