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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Oct 20. 2024

가을 5,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순례길 5

생장에서 론세스바에스(26.2km)

 산티아고 순례길 1구간을 시작하는 날이다. 전체 33구간 800km 중 제일 어렵다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피레네산맥을 가로지르는 26km의 거리이다.

 경사가 급한 8km에 있는 오리손 산장 카페 외에는 쉴 곳이 없이 유일한 알베르게인 론세스 바에스까지 계속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길이 힘들 때면 나폴레옹을 떠올렸다. 이런 험난한 산길을 대규모 군대와 대포와 마차를 끌고 넘었다니 대단하다. 그래서 불가능은 없다는 말을 하고 영웅이라 하지 않는가.

 굵은 비로 2시간 만에 도착한 오리손 산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고대하면서 제일 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른 새벽 출발하느라 배고픈 사람들에게 야채수프나 커피, 뭐든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확 트인 경관이 주는 희열감은 보너스이다.


점심 식사만 작은 가방에 담고 큰 배낭을 동키 배달 서비스에 맡기는 바람에 준비해 간 장갑, 패딩을 입을 수 없어 손이 어는 줄 알았다.

어찌나 손에 감각이 없는지 따뜻한 컵에 손을 녹이느라 커피가 식어버렸다.

 비가 더 거칠어지자 프랑스 여성의 큰소리가 들렸다.


"론세스바에스까지 점점 더 악천후가 예상됩니다. 무리하지 말고 택시가 1인당 80유로이니 신청해 주세요!


불어를 몰라도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모두들 씩 웃으며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이 먼 곳에 어렵게 온 순례꾼들을 무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이내 운무가 가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산 언덕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 힘든 길을 자기만의 속도로 걸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가끔 비가 잦아들면 운무가 솜사탕처럼 산봉우리를 감쌌다. 지금까지 살아 온 세상은 사라지고 고행을 자처한 사람들은 밝게 웃거나 흥분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이 주는 선물을 즐겼다.


서두르던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뒤에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부엔 카미노! 뷰티풀! 퍼펙트! 파이팅! '


 이곳에 함께 걷는다는 것만으로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어 갔다.

 우리나라 산처럼 바위나 계곡길이 아닌 굽이굽이 걷기 좋은 길이다. 길옆으로 엄청난 말이나 양들을 방목하고 동물들은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목에 매달린 방물들이 풍경소리처럼 온 산을 메아리치며 평안함을 주었다.

저 높이 푸드트럭이 보인다. 사람들은 지나치지 못하고 무거운 배낭을 집어던지며 줄을 섰다. 간단한 간식을 팔고 있었는데 한국어 인사가 눈에 들어왔다.


"영상에서 보던 그 유명한 푸드트럭 할아버지다!"


 사람들은 푸드 트럭 할아버지를 연예인처럼 대했고 그 역시 위트 있는 모습으로 사진에 응대했다.

 트럭 할아버지는 금방 한국인을 알아보고 한국어 인사를 했다. 하긴 푸드트럭 20여 명 손님 중 한국인이 7명이었다. 트럭에 그려진 어설프지만 재미있는 지도를 보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점심 식사만 작은 가방에 담고 큰 배낭을 동키 배달 서비스에 맡기는 바람에 준비해 간 장갑, 패딩을 입을 수없어 손이 어는 줄 알았다.


 계속되는 비로 기온이 낮아져서 평소 먹지 않았던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 정말 꿀맛이었다.


 어제처럼 새벽 비가 멈추어 해가 비추기를 기대했지만 오후 4시 론세스바에스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비가 그치지 않았다.

 푸드트럭을 지나자 자갈과 흙의 내리막길과 고사리 수풀과 이끼가 가득하여 어둡고 음습한 숲길이 이어졌다.


숨이 차고 미끄러지기 딱 좋은 힘든 길이다.

첫날이라 평소 걷는 대로 걸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정말 잘 걷는다고 한 마디씩 하며 어떻게 준비를 했느냐며 묻는다. 나는 첫날이라 속도를 내지 않고 조심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이 정말 많아 우리는 서로 놀란다.


"힘내세요?"

"정말 잘 걸으시네요?"


"오늘 정말 힘들어요. 이런 날 걷기는 처음이에요!"


 나에게 잘 걷는 비결을 묻길래 그동안 한국에서 걷기 연습한 것을 말했다. 그들은 좋은 장비만 준비하였지 체력 준비 없이 온 것이다.


 3월 하루 10,000보, 4월 13,000보, 5월 15,000보, 6월 18,000보 걸으며 연습하고 8월 2주 동안 배낭 메고 15km씩 한강 연습한 것까지 이야기하였다.


 그러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지난 삶이 생각났다.


'잘 한 거지, 그래서 그나마 이런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몸이 힘들었던 일들, 마음이 더 힘들었던 슬픔들, 사람이 힘들었던 아픔들---'

 한국인들은 대부분 나처럼 큰 배낭은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여 가볍게 걸으면서도 힘들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굉장히 큰 배낭을 메고 판초도 없이 걷으며 즐거워했다.


 산티아고 걷기는 그렇게 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 가벼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아, 인간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금술사를 쓴 파울루 코엘류가 생각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진지하고 간절한 모습들에서 성찰한 '순례자'라는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오후 4시 드디어 론세스 바에스 수도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비에 젖지 않은 것은 3겹 싼 비닐 지퍼 안의 여권과 순례자 수첩, 현금, 보조배터리뿐이었다. 핸드폰 전원은 0% 꺼져 있었다.


 진흙에 빠진 생쥐 같은 모습을 저 웅장하고 멋진 수도원이 맞아주었다.

지금까지 평생 걸었던 수많은 길 중 최고이다.


와, 드디어 해냈다!'

꿈은 이루어진다!

도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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